프랑스 유학생들이 먹었던 '똥찌개'가 뭐야

프랑스어가 한국인을 만났을때

등록 2010.03.08 11:14수정 2010.03.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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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이곳 프랑스로 유학을 오기 직전, 엄마의 수첩에 전화통화시 나를 바꾸어 달라는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발음나는대로 적어 놓고 왔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그리운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가 방해되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엄마 수첩에다 적어놓은 글은 "Je voudrais parler à Mademoiselle Park"이었다. 한국말로 하자면 "박양하고 통화할 수 있기를 원하는데요"인데, 저 꼬부랑 글씨 밑에다가 소리나는대로 "저 부드레 빠흘레 아 마드모아젤 박"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는 낯선 땅으로 떠나 왔고, 다행히도 처음 한 달간은 한국인들이 사는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을 것 같고, 한 2주가 지난 뒤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엄마와 전화 통화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어학을 병행하며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고 한국을 다니러 갔다. 엄마는 내가 수첩에 적어 놓은 한국 발음 불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 엄마가 프랑스로 전화를 했을때 어린 아이가 받았다고 한다. 느닷없는 돌발 상황, 이런 경우까지는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이와는 통화가 어렵다고 생각하셨는지 급기야 답답한 마음에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로 "어른 바까라" 했다는 것, 그랬더니 어른을 바꾸더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동생들과 나는 배를 잡고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어른이 받기에 엄마 표현에 의하면, "아뜨레 부뜨레 마드모아젤 박"이라고 하니 "그런 사람 없다"고 하는 것을 느낌으로 알수 있었고, 그제서야 전화번호를 잘못 눌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야 하지만, 때로는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울 엄마였다.

프랑스어와 한국인이 만나 이곳에서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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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김치찌개 ⓒ 송춘희


특히 예전 이곳 유학생들 사이에는 한때 "똥찌개"가 유행했었다. "우리 똥찌개 끓여먹자" 하는 말이 있었는데, 김치와 참치가 어우러진 얼큰한 참치 찌개를 유학생들은 "똥찌개"라고 불렀으니, 참치가 불어로 thon이다. 발음은 "똥"이라고 한다. 불어와 한국어의 묘한[?] 어울림이 빚어낸 이름이다.

다른 지방은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나 자랐던 대구에서는 어린아이에게 과자 사준다는 말을 "까까 사줄께"라고 했었다. 우는 아이 달래기 위해서 "울지마, 엄마가 까까 사가지고 온대, 까까 사려갈까?라고, 과자의 어린아이 명칭으로 통했던 이 "까까"라는 발음이 이곳에서는 화장실에서의 큰볼일로 통한다. 과자의 까까와 화장실의 까까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다.

여성들보다는 한국 남성들이 이곳에 유학와서 불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아마 남성들의 언어 감각이 여성들보다는 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도 경상도 남자들이 특히 더 힘들어 한다고 들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불어를 하는 남성들이 많아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담배 한대만 주세요" 불어판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억양 버전으로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던 때가 있었다.

이곳에서 20년을 살고 있으니 당연히 생활화 되어 있는 불어이건만,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게, 요, 불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은 알지만 유학왔을 때의 도전 정신은 이미 물건너 간듯하고 편한 우리나라 말이 좋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모국어이기에 본능적으로 나오는데 비해 불어는 생각을 해야만 된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부분은 때로는 직감적으로 나오기는 해도,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는 1시간 정도 불어하고 나면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오곤 한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인들과 사귀며, 프랑스 사회를 깊이 느껴보도록 해야지하면 할 말은 없지만,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지 타성에 젖었나 보다. 때로는 이곳이 한국인지 프랑스인지 구분이 잘 안 될 때도 있다.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둘째 딸의 친한 친구인 멜루완은 베트남인이다. 자주 둘째 딸과 어울리는 멜루완의 모습이 비슷한 아시아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나도 모르게 그아이에게 한국말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아이 또한 나의 한국말을 알아 듣는지 응한다.

물론 간단한 말들이다. "멜루완, 가자" 하면 따라오고, 어떤때는 음악학교에서 아는 한국 엄마를 만났기에, 딸아이에게 "인사드려야지" 하면 옆에 있던 멜루완이 먼저 알아듣고 그엄마에게 "Bonjour[안녕하세요]" 한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멜루완이 눈치가 빠른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의 주책스러움으로 딸을 곤란하게 한 적이 있었다. 멜루완이 우리집에 놀러 왔을때, 나는 그날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어린 두 아이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소녀시대의 Gee.

"지지지지 베이비베이비베이비"

아이들이 듣던 노래였고, 지난 여름 한국갔을 때 조카가 춤과 함께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봤던 터라 이 구절만 입에 붙어 자연스럽게 나왔다. 문득 딸이 "엄마!" 하고는 웃으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지지"라고 하면 어린 아이들이 성기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런 난감한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멜루완 앞에서 음까지 붙여 흥얼댔으니 딸은 얼마나 당황했을지. "멜루완 앞에서 그런 노래를 하면 어떡해?"라고 한다.

멜루완은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씩 웃고 있었다. "어머나, 어떡하면 좋으니?" 나 또한 당황해서 흥얼거림을 멈추고 나니 그상황이 너무 웃겨 다들 큰 소리로 웃었던 적이 있다.

단순히 짧은 단어 하나 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낭만적인 언어로 통했던 불어, 예전에 알랑들롱이 특유의 굵직한 멋진 음성으로 노래했던 "파홀레 파홀레[parlez, parlez]" 들을 때에 다가왔던 그윽한 불어의 느낌과 지금의 나의 현실의 한 부분이 된 불어는 너무 다르다.

불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언어가 아닌 나의 현실이고, 생활의 한부분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불어를 회피하고픈 마음을 변명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실은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실은 글입니다
#프랑스어 #유학생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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