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치마,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해내다

[주말 자전거여행 5] 난지한강공원에서 행주대교까지

등록 2010.03.12 09:59수정 2010.03.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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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한강공원. 잔디광장 곁을 지나가는 자전거 ⓒ 성낙선


날이 많이 풀리긴 풀린 모양이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날(3월 6일), 한강 둔치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쪽엔 복수초를 비롯해, 홍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한강에 아직 그런 꽃소식은 없다. 그 대신 자전거도로 위로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줄줄이 지나간다. 날이 풀리길 기다렸다가, 마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양상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온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자전거를 탄 아들과 아버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속도 경쟁을 한다. 아들은 '씩씩' 대고 아버지는 '허허' 웃는다. 그 옆으로 2인승 자전거를 탄 젊은 남녀 한 쌍이 지나간다. 남자는 열심히 페달을 밟는데, 뒤에 앉은 여자는 살짝 다리를 들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가다 남자가 무슨 볼멘소리를 했는지 여자가 까르르 웃는다. 서울의 봄소식은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먼저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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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한강공원 야영장 근처를 지나가는 2인승 자전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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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한강공원 이색자전거 체험장. 쇼핑카트를 끄는 자전거, 바퀴가 사각인 자전거도 보인다. ⓒ 성낙선


흙먼지 풀풀 나던 구부렁길이 '자전거도로'로 변신

난지한강공원의 자전거도로는 폭이 꽤 넓은 편이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뒤섞여 달려도 정체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그만큼 사고 위험도 낮다. 가던 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멈춰 서는 일만 없다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공원 중간 중간 쉬어갈 만한 공간이 꽤 된다. 때때로 자전거를 세워두고 강가로 내려가 볼 만하다. 산책로가 강가에 바투 붙어 있다.

난지한강공원이 끝나는 지점인 가양대교 아래에 '자전거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그동안 가양대교를 통해 난지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이 부근에서 한강으로 내려가려면 예전에는 성산대교나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공원 쪽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수고를 덜게 됐다. 엘리베이터 공간이 자전거 2, 3대는 거뜬히 들어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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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가양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자전거도로. 왼쪽은 국궁장. ⓒ 성낙선


가양대교를 지나면 너른 풀밭 사이로 난 자전거도로다. 이 길은 예전엔 흙먼지 풀풀 나는 구부렁길이었다. 요철이 심하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금방 흙탕길로 변하곤 해서, 꽤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이 이제는 일부 구간을 남겨두고 말끔한 자전거도로로 변신했다.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는 전보다 훨씬 더 편해졌다.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그래도 이 지역은 아직 대부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땅으로 남아 있다. 한강 둔치의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한강 시민공원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시멘트나 철로 만든 구조물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자전거도로와 강가에 접한 습지공원을 제외하면, 누렇게 시들다 못해 검게 썩어가는 풀잎들로 가득한 땅이다. 황량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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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이 둥지를 튼 덕양산.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방화대교 진출입로. ⓒ 성낙선



그 들판 중간에 철도 교량 공사를 하는 구간이 나오고, 그 구간을 지나면 멀리 방화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오른쪽에 평지 위로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 행주산성이 둥지를 튼 덕양산이다. 방화대교 아래서 올려다보는 행주산성은 절벽 위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다. 그 앞을 흐르는 창릉천이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절벽 높이 산성이 있었을 곳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왜 이 산성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연적인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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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장군 동상. 그 뒤로 전투에 참여한 관군, 의병, 승병, 여성 등 4개의 부조물이 서 있다. ⓒ 성낙선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민초들, '행주치마'의 등장

행주산성 입구인 '대첩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권율 장군 동상이 보인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최고 사령관이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당연하다. 마침 태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동상이 더욱 빛이 난다. 정면으로 눈뜨고 올려다보기 힘들다. 하지만 권율을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 건 태양이 아니다. 동상 뒤로 반원형의 부조물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 장군 휘하 2300명의 조선군이 3만 명의 왜군을 맞아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건, 그 부조물 속에 새겨진 이름 없는 영웅들 때문이다.

행주대첩은 '관군' 외에 '승병'과 '의병', 그리고 '여성'까지 동원한 총력전이었다. 부조물 속에서는 각각의 군상 조각과 그 군상의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성'이다. 부조물은 '여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군은 산성 위에서 화포와 강궁을 쏘고 적을 막았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됨에 따라 포탄과 화살이 다하고 돌마저 떨어지게 되자,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주어 돌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녀자들의 호국에의 의지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하여 그 후부터 "행주치마"라는 말이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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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도. 왜군의 조총에 돌과 창, 검, 활로 맞서고 있는 조선군. 조선군은 흙으로 성을 쌓고 성 밖에 목책을 둘러 방어했다. ⓒ 고양시


당시 왜군은 명나라의 참전 후 퇴각을 거듭해 서울에 집결해 있었다. 그에 따라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행주산성이 왜군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했다. 왜군으로선 당연히 행주산성에 진을 친 조선군이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왜군이 행주산성을 겹겹이 둘러싼 게, 1593년(선조 26) 2월 12일이다.

양쪽 모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이 전투에서,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던 조선군은 부녀자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때, 앞서 설명문에서 본 것처럼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석전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국운을 건 전투에 부녀자들의 치마까지 동원해야 했던 것으로 봐서 당시 정황이 얼마나 격렬하고 처절했는지를 알 수 있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이다. '대첩(큰 승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중 전세를 바꾸는 매우 중요한 전투 중에 하나였다. 이 전투에서 부녀자를 비롯한 의병과 승병 등 민초들이 전면에 나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행주산성은 '행주(의)치마'로 상징되는 민초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위한 건 이들 민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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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방화대교. 가운데가 덕양정, 오른쪽이 대첩비각.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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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변북로와 한강 둔치. 그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 성낙선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무척 부드럽다. 전략적 요충지답게 사방이 확 트여 있어, 뭔가로 꽉 막힌 속을 달래기 좋다. 사방에 거칠 것이 없으니, 산 정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절벽 아래를 지나가는 도로며 다리 등, 세상이 아주 조막만해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산성 위에 버티고 선 조선 사람들 눈에 산성 밑에 진을 친 왜군이 좁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온난화 탓에 봄날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올해 봄은 지난 해보다 더 짧아질지도 모른다. 지난 해 봄이, 오는 듯싶더니 어느새 가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는,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여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꽃샘추위 몇 번, 황사 몇 번 맞이하고 나면, 바로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날이 좀 추운 듯싶다 해도, 이때가 봄이려니 서서히 산과 들로 나들이를 나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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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개나리. 만개할 날이 얼마 안 남은 듯. ⓒ 성낙선



어떻게 갔다 왔나?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한강 난지공원에서 방화대교까지는 자전거도로를 죽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가양대교를 지나 들판 중간에 전철 교량이 들어서고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헷갈릴 수 있다. 그 앞에서 공사 구간을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전거도로가 왼쪽으로 나 있어 헷갈릴 수 있다. 무시하고, 공사장 앞에서 오른쪽 흙길로 올라선다. 그러면 곧 이어 다시 왼쪽으로 자전거도로를 만날 수 있다.

방화대교 밑으로 천이 하나 흘러든다. 창릉천이다. 행주산성으로 올라가려면 이 천을 건너야 한다. 여기에서부터는 길이 조금 까다롭다. 방화대교 오른쪽에 천을 건널 수 있는 낮은 수중보가 하나 있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물 밖으로 드러나 있어 건너기 쉽다. 비가 내려서 보가 잠겨 있을 때는 창릉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약 1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리가 나온다.

천을 건너서 오른쪽으로 흙길을 가다 보면, 자유로로 이어지는 제방로(2차선 도로)가 나온다. 제방로를 타고 자유로 쪽으로 향하다 보면, 자유로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회전하는 길을 만난다. 그 길 끝에서, 왼쪽으로 굴다리가 나타난다. 굴다리를 지나면 다시 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원조 국수'집 옆의 샛길로 들어선다. 계속 올라가면 짧은 오르막길이 나오고, 그 오르막길 끝이 바로 행주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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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가는 길. 왼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1) 방화대교 오른쪽 수중보 2) 제방로 3) 자유로 밑 굴다리 4) 행주산성 들머리 ⓒ 성낙선


[맛집] 원조 국수
'원조 국수'집 앞에 자전거들이 여러 대 주차해 있다. 원조 국수집은 자전거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제공 받는 곳이기도 하다. 메뉴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2가지, 각각 3천원이다. 3천원이라는 싼 가격에 다른 국숫집의 1.5배 이상 되는 양으로, 자전거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곱빼기도 달라고 하면 주는데, 양이 엄청나다. 위장이 큰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시키지 않는 게 좋다. 곱빼기라고 돈을 더 받지는 않는다. 똑같이 3천원. 싸고 양만 많았으면 그냥 평범한 국숫집 중에 하나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집은 맛에서도 딴 소리 안 나오게 만든다. 주말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최근 근처에 별관을 낸 까닭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줄어들었다. 선불제다.
#행주산성 #난지한강공원 #자전거여행 #원조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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