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경쟁하니, 경쟁하기 위해 사니?

은평구 대안학교, <은평씨앗학교> 10기 입학식 풍경

등록 2010.03.12 16:45수정 2010.03.1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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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아침.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은평씨앗학교 10기 입학식이 있었다. 은평씨앗학교는 1980년에 은평구에서 '은평야학'으로 출발한 비영리 민간단체다. 야학은 2001년부터 서울시의 '학교 밖 청소년의 자기길 찾기' 정책 사업을 통해 청소년 대안학교로 새로이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학교가 은평청소년야학이었던 시절부터 이런저런 모습으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10기 입학식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청소년 대안학교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번째 신입생을 맞았다.

올해 신입생은 모두 네 명이다. 작년에는 남자아이들만 있었는데 올해는 짝이라도 맞춘 듯 남자 아이 둘, 여자 아이 둘이 함께 공부하게 됐다. 은평씨앗학교는 올해 신입생 네 명을 포함해도 학생 수가 열 명 정도이다. 작은 학교다. 서울시엔 이렇게 작은 대안학교들이 여럿 있는데, 은평구에서는 은평씨앗학교가 유일하다. 은평구는 다른 구에 비해서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대안학교가 많지 않은 건 아쉽다.

정부는 왜 작은 학교를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혹은 부모님이 대안학교를 찾는 이유는 뭘까? 물어 볼 것도 없이 '대안 교육'을 원하기 때문이다. 틀에 박혀있는 경쟁위주 공교육을 거부한 사람들이 대안학교를 찾는다. 그런데 많은 대안학교가 국가에서 학력인정을 받지 못한다. 대안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이것을 교육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다. 

일부 대안학교는 정식 인정을 받고 학교 대접을 받지만 은평씨앗학교를 비롯해서 많은 대안학교들이 불법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건 서울시가 이런 불법교육단체에 매년 지원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이런 단체를 정식 학교로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탈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설로서 보조금을 조금씩 주고 있는 거다.

작은 대안학교가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규모가 작다는 것 때문이다. 학교 규모가 작으면 학생 수가 적다. 번듯한 학교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작은 대안학교들은 은평씨앗학교처럼 다른 건물에 세를 지불하고 공간을 이용한다.


국가에선 전용 건물 없이 운영하는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교라는 개념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무슨 가치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공부한 학생들은 필요한 경우 모두 검정고시를 통해서 학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생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인증 받지 못한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학생 취급도 안 해줬다. 정식 학생증이 있어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학생 요금을 낼 수 있는 교통카드를 살 수 있는데 대안학교가 정식 학교로 인증을 못 받으니 학생증도 효력이 없어서 이 아이들은 학생이지만 어른 요금을 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이런 관행은 2004년에 '청소년증'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서 청소년들에게 카드를 발급하면서 일부 개선되었다. 

하지만 '학생증'과 '청소년증'은 엄연히 다르다. '청소년증'을 갖고 다니는 청소년은 대안학교를 다니더라도 학생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여전하다. 국가는 작은 대안학교를 학교로 인정을 하지 않으니까 거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학생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거다.

그래도 사람들이 대안학교를 찾는 경우는 점점 늘고 있다.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공교육은 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 의견이 항상 우선이다. 그리고 요즘엔 아이들 스스로 공교육을 거부하고 대안학교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은평씨앗학교는 중등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중학생 나이 아이들이 지원한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자기가 스스로 원해서 대안교육을 선택한다는 건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다.

정부는 대안교육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서점에 가보면 최근 들어 유럽 대안교육에 대한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쪽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안교육은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 앞으로 할 일도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처럼 쌓여있다. 대안교육 심포지엄을 보면, 여전히 '대안교육'이라는 개념 자체를 두고도 갖가지 의견들이 많을 정도다. 이런 게 한낱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나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안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힘겹게 노력하는 교사들이 많다. 대안교육을 지원하는 어른들, 학부모님들이 많고 아이들도 대안교육을 새롭게 보고 있다. 이제는 국가 정책이 좀 변해 줘야할 차례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더라도 이러한 작은 대안학교에 대해 국가적으로 학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기준에 학교 규모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내년부터 작은 대안학교에는 그나마 주던 지원금도 중단하겠다고 한다. 국가로부터 인증 받지 못한 단체는 솎아내고 국가에 협력하는 곳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책과 딱 맞는다. 그러면서 교과부는 지난 해 대안학교도 등급을 매겨야 한다면서 각 학교에 일괄적으로 등급을 매겼다. 당연히 은평씨앗학교를 비롯해서 작은 대안학교들은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았다. 

등급의 기준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학교 건물이 없고 학생 수가 적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안에서 무얼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보지 않았다. 학생부터 학교까지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는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은 아쉽다. 학생수와 학교의 규모가 교육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면 대안교육은 아예 생겨날 필요도 없었을 거다. 부디 학교 규모나 학생 수 보다는 대안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봐주었으면 한다.

새들은 언제부터 나는 법을 배웠을까?

은평씨앗학교 10기 입학식은 이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는 교사가 만든 교가를 기타반주에 맞춰 다 함께 부르면서 순서를 마쳤다. 이 노래는, "새들은 언제부터 나는 법을 배웠을까……."로 시작한다. 훨훨 나는 새들은 누구에게 나는 법을 배웠을까? 새가 나는 법에도 등급을 매길까? 새들은 좀 더 멋지게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거나 비싼 과외를 받지 않는다. 새들은 더 빨리 날기 위한 경쟁도 없다.

새들은 처음에 잘 날기 위한 모험과 용기가 필요하다. 어른새들은 바로 그런 것을 가르친다. 어른새들이 아이 새들에게 원하는 건 자유롭게 날아올라서 스스로 먹이 잡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다. 새들의 세계에 생존을 위한 경쟁은 있지만 경쟁을 위한 생존은 없다.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은 아이들에게 경쟁을 위해 생존하라 한다.

자라는 아이들은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날 필요는 없다. 더 많은 먹이를 모으거나 남이 가진 먹이를 착취하는 걸 가르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3월 9일에는 아이들이 또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를 쳤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면 당장 징계를 받기 때문에 교사들이나 학생들도 시험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게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서울신문, 3.10, "힘 잃은 일제고사 반대투쟁") 

아이들에게 참다운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아이들이 열 명 남짓한 작은 학교는 이보다 열 배, 스무 배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정식 학교'보다 용기 있다. 부디 이런 작은 학교들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현실 속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이 용기 있는 한 걸음들을 계속 내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10기 입학식을 마치고 은평씨앗학교 열번째 입학식을 마치고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은평씨앗학교는 학생만 배우고 교사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배우고 가르치는 가치를 추구한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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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심기 입학식 중에 신입생이 화분에 씨앗을 심는 순서가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씨앗을 심어서 학기동안 스스로 키운다. 아이들은 씨앗이 자라는 것을 보며 자신도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낀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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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 부르기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다함께 입학식 마지막 순서로 축가를 합창한다. 새들은 언제부터 나는법을 배웠을까? 아이들은 이제 은평씨앗학교에 다니면서 경쟁과 승부보다는 배려와 함께 나눔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윤성근


#대안학교 #대안교육 #은평씨앗학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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