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전두환 덕에 난 윤선애를 만났다

전설적 민중가수 윤선애 콘서트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

등록 2010.03.15 15:04수정 2010.03.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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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애 콘서트 포스터 ⓒ 윤선애 공연 추진단


삶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가끔은 쉬어갈 때가 있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이지만, 고단한 삶속에서 잠시 잊어버렸던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면, 마음이 설렌다. 나의 젊음과 인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주말 토요일(13일) 해가 저물 무렵, 서울 조계사로 그를 만나러 갔다. 내가 만나는 그, 아니 그녀는 조계사 안 공연장인 '한국불교역사문화회관' 앞의 포스터에 걸려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라고.


마침 저 멀리 순천 송광사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가르치고 떠난 법정 스님도 다비식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1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 항상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은 왜 이리도 일찍 우리를 떠나는 것일까.

나는 그녀를 만나면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윤선애씨, 그동안 잘 지냈지요. 오랜만이네요." 물론, 나는 그녀에게 이런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당황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녀는 나를 본 적이 없고, 나도 그녀를 단지 노래를 통해서만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는 그녀를 만나면, 마치 친한 친구라도 되는 듯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정의, 햇살 같은 민주와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에서 같이 했으니.

어둠이 온 세상을 감싸고 있는 듯 깜깜한 무대에서 옹달 샘물처럼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라는 노래였다. 80년대 전설적인 민중가수인 윤선애가 13일 조계사에서 펼친 18년 만의 공연은, 이렇게 <소녀의 꿈>과 함께 시작되었다. '소녀의 꿈'은 80년대 당시 윤선애의 꿈이자,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소녀의 꿈'과 '소년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녀가, 내가, 우리 모두가 맞닥뜨린 것은 '꽃'이 아니라 전두환이었고, 광주였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바뀌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 여기에 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군)' 전두환으로 인해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길에서 김광석도 안치환도 그리고 윤선애도 만났다.


80년대는 암울했고, 우리는 방황했다. 전두환과 광주는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히틀러와 안네 프랑크였다. 개인이 시대를 바꾸기도 하지만, 시대가 개인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김산과 체 게바라라고 그런 고난의 길을 가고 싶었겠는가. 그들은 역사가 부르는 길을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았을 뿐이다.

25년 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던 그 노래의 주인공

그녀를 대중들 앞에 노래 부르는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바로 80년대의 '시대'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동아리 선배가 "<민주>라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단다. 그녀는 총학생회 발대식에서 <민주>라는 노래를 불렀고, 본격적으로 민중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는 그 때 우리에게 '햇살이고, 불꽃이고, 꽃바람'이었다.

나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대중들의 민주화 열망에 놀란 전두환이 일제의 '문화정치'를 본 떠 대학교 총학생회의 부활을 용인하던 시절, 가녀린 여학생이 부르던 그 노래는 왠지 그 당시에도 슬프고 애절하면서, 마치 진격의 나팔소리처럼 웅장한 함성이자 비장한 구호였다. 볼가강물 위로 흐르는 <스텐카라친>처럼 다가왔던 그 노래를 바로 그녀가 불렀단다. 나는 오늘 콘서트에 와서야 25년 전의 쿵쾅거리던 심장의 비밀을 알았다.

그녀는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는 <민주>를 다시 불렀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는 <스텐카라친>이다. 누구나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이들 노래는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을 줄 몰랐다"고 했다. 지난 92년 대학로에서의 단독공연 "윤선애씨, 어디 가세요?" 이후 18년 만의 대중과의 만남에 대한 그녀의 느낌이다. 자신의 앞날을 알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마치 인생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살아가는 시나리오라면, 오히려 끔찍하지 않을까. 그녀는 인생의 이런 불가측성 때문에, 오늘 향기로운 누나 같은 <낭만아줌마>로 우리에게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윤선애, 그녀는 그래도 오랫동안 시대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학교를 졸업한 뒤 나름의 행복을 찾아 일터로 사회 속으로 뿔뿔이 밀려들어갈 때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노동의 현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패 <메아리>든 <새벽>이든 그녀는 <저 평등의 땅에>, <그날이 오면>, <민들레처럼>,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를 불렀다. 우리가 고단한 삶속에서 80년대의 시대정신을 잊어갈 무렵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나타나 맑고 고운 목소리로 우리의 나태함을 일깨워 주었다. "일어나라!"고.

윤선애도, 김광석도, 우리 모두를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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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선애 ⓒ 윤선애 팬카페

그녀는 이날 노래 <일어나>를 부르면서, 80년대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 김광석을 저 별에서 이 별로 다시 불러왔다. 지난 92년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 가수로 온 김광석은 그 때 "윤선애님의 콘서트가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는 더 큰 무대가 되기를 바랐다"고 했단다. 김광석과 안치환은 모두 윤선애와 함께 <새벽>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노래를 불렀던 음악의 동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맨발의 디바' 이은미도 20주년 콘서트에서 김광석과의 인연을 얘기하며 <서른 즈음에>를 불러 그를 추모했다. 김광석은 이름 없는 가난한 가수들의 오빠이자 친구이며 마음의 후원자이기도 했나 보다. 김광석이 살아생전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할 때 '그만 살까'하는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살아봐야 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는 노래가 <일어나>다.

<일어나>에 이어 그녀가 부른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는, 김광석과 지난 시절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80년대 젊은이들에 대한 위로다. 그 때 차마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다시 만나게 되면 그냥 "나를 안아줘요"라는 그녀의 애절함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살아온 삶에서 나오는 시대의 공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처럼 흐려지는 '80년대'의 모든 세대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받은 수많은 상처를 누군가로부터 치유 받아야 한다. 그녀도, 김광석도, 나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이 필요하다. 우리를 그냥 안아주세요. 지나간 세월을 일일이 말하려면 너무 거추장스럽고, 비겁하잖아요.

2010년 3월,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서로를 포옹하면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와 대중의 삶, 남북의 화해가 많이 후퇴하고 있다고 다들 걱정이다. 전두환의 시대도 지나왔는데, 이 정도의 시련이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창문을 열어젖히면 정말로 추운 겨울이 가고, 어느덧 봄비에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만날 날 있겠죠, <낭만할머니>

그녀가 잠시 쉬는 동안 원더걸스의 '선예'보다 새벽의 '선애'를 더 좋아한다는 윤선애 팬클럽인 남성7인조 중창단이 나오고, 2부에는 내가 좋아하는 <불행아>라는 노래를 만든 작곡가 김의철도 나와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김의철에 대해 자신이 음악적으로 방황할 때, "제가 자신 있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준 스승"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인생을 틈틈이 이야기하면서, <부용산>과 <내가 너를 지켜 주리라>,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노래 속에는 그녀의 삶이, 시대의 아픔이 들어 있어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부른 <그날이 오면>은 이상하게도 희망보다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시대의 상황이 노래에 투영됐나 보다. '그날'은 우리에게 정말 오는 것일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더 많은 노래를 불러야 '그날'은 오는 것일까.

18년 만에 그녀와 함께 했던, 두 시간에 걸친 즐거웠던 80년대의 시대 이야기는 마치 순간처럼 빨리 흘러갔다. '윤선애 팬클럽'이 주최한 이날 공연은 80년대를 함께 살아왔던 우리들의 짧았던 마실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추억의 여행이자, 미래로 가는 희망의 여행이었다. 시대의 외침과 마음의 소리로 부르는 그녀와 노래가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원래 인생에서 즐거움은 짧고, 고통은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오래 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전통악기를 연주하던 70대 할아버지는 "인생에서 즐거운 시간은 30%이고, 슬픔이 70%"라며 "인생의 짧은 즐거움을 연장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우리 시대는 지금 더 많은 노래를, 더 많은 그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윤선애씨, 어디 가세요?"라며 먼 훗날,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우리의 짧았던 젊음과 기다림이 헛된 꿈이 아니었으니.

그때는 <낭만아줌마>가 아니라 <낭만할머니>라도 좋다. 장이모의 영화<인생>처럼,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요. 언젠가 그 질기고 질길 것 같던 고통과 고난마저 지쳐버리면, 우리가 꿈꾸는 그날이 오겠지요.
#윤선애 #김광석 #메아리 #새벽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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