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랭루주는 가라, 산대희가 떴다

[공연] 전통의 의미를 묻는 <산대희-연분홍 치마 봄바람에>

등록 2010.03.15 17:13수정 2010.03.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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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희>공연 중 '봄날은 간다' 무용 꽃 이파리 휘날리듯 아름다운 정은혜 무용단의 공연 ⓒ 국립창극단 노승환


지난 14일 미만한 연둣빛 대신, 흐리고 탁한 봄비만 연일 내린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풍경을 투영하려는 것인지. 하늘은 애꿎게 잿빛 부산물만 땅에 내린다. 이럴 때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동양의 고전 <예기>의 악기편에도 '세상의 소리엔 그 시대의 정치적 미감'이 녹아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날 서울시내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한 <산대희>는 '산 모양의 구조물에서 벌이는 연희'라는 뜻이다. 전설 속 삼신산을 형상화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백가지 즐거움이 녹아있는 노래와 춤'이다. 신라 진흥왕 때(6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서양 오페라의 탄생(16세기)에 견주어도 시간적으로 한 세기가 앞선다.


국가경사와 외국 사신을 환영하기 위해 왕실에서 행해진 대표적 축제인 산대희는 야외무대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무대연희의 진화과정과 비교해볼 때 손색이 없다. 단 600명이 넘는 광대가 등장하는 만큼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기에 조선 중기 인조반정 이후 금지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소리꾼 장사익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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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희>공연 중 음유시인 장사익 장사익 선생님이 <희망가>를 부르시는 장면 ⓒ 국립창극단 노승환


이번 공연에서 주목할 점은 3가지다. 서구에선 민족국가 형성 이후 군주들은 왕립극장의 형성을 통해, 당대의 문화를 지배했다. 우리가 만약 500년 전 <산대희> 공연을 상설화 하기 위해 '연희극장'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아니 당시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모했을까? 이번 <산대희> 공연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듯하다.

두 번째, 극장공연의 진화를 다루기 위해, 어떤 요소를 삽입하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의 문제다. 전통성을 살린 우아함과 기품, 그러나 대중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음유시인 장사익은 삼베처럼 깔깔한 듯 보이지만, 유연하게 가슴을 아리는 목소리로 우리시대의 '상처'를 토하고 껴안아낸다.

그가 부른 <봄날은 간다>와 <찔레꽃> 그리고 <희망가>는 우리시대 정치적 풍경의 이면을 관통하는 슬픔을 표현했다. 들으면서 어찌나 애잔한 눈물이 흐르던지. 장사익은 꾼이다. 그의 소리는 세상을 묘사한다.


전통과 현대, 그 긴장을 애두르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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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희>공연 중 서울굿 대감놀이 중 한 대목 김혜란 명창, 관객과 만나다 ⓒ 국립창극단 노승환


아스라한 달빛아래, 한 여자가 해금을 켠다. 단 두 줄의 현에서는 우아한 기품이 쏟아지고, 여인의 우윳빛 피부만큼, 명결한 현의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관통한다. '내 마음 파랑'이란 제목의 해금연주가 끝나면 장사익의 노래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무용수들의 하늘하늘한 몸짓.

우리는 항상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 특질'이란 질문 앞에서 멈칫한다. 전문가 집단도 사실 이 질문에 어지간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그러니 무대화도 항상 어렵다. 퓨전 양식으로 모든 가무를 합하고, 비보이를 불러 풍물과 하나로 뭉친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화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답변을 유보하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민요를 부르는 김혜란 명창이 굿거리를 들고 극장 사이사이를 걸으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 편안하다. 인간문화재 김대균 선생의 줄타기 공연을 기대했건만, 무대상의 문제인지, 첫눈에 보기에도 줄타기 장치가 느슨해 보였고, 아크로바트는 평작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줄타기는 연희자의 기예도 중요하지만, 줄타기꾼과 재담꾼의 '말놀이'에도 그 눈이 머물러야 한다. 그만큼 우리 전통연희는 항상 상호작용이 넘친다. 서양의 극장무대는 철저하게 관객의 시각에 의해 규정되고 해석되지만, 우리 한국의 연희는 철저하게 '말과 행동, 바라봄'이 엮이는 세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산대희의 해석은 충실한 노선을 따랐다. 무리수를 두지않고 편안하게 갔다는 말이다.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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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희> 공연 중 비보이와 산대놀이 산대놀이와 서양의 비보이가 한국적 장단 아래 함께 춤춘다 ⓒ 국립창극단 노승환


이번 공연을 보고 난 후, 느끼는 점은 우리가 가진 전통연희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다. 서양의 극장문화와 공연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전통의 옷을 벗기고 그들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비보이와 산대놀이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건, 솔직히 좀 지겨울 정도로 잦은 연출로 인해 식상한 느낌마저 있다. 게다가 만담꾼이라 나온 이들은 적절하지 않을 만큼의 '명비어천가'를 부르기도 하고, 썰렁한 입의 재담만 펼쳐졌다.

모든 극은 관객과의 소통을 상수로 한다. 소통은 바로 그들의 호흡 수준을 공연이 받쳐줄 때 가능하다. 느림과 빠름, 격정과 우미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이유다. 공연에 거는 기대가 큰 까닭은 이번 <산대희>공연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극장식 공연으로 상설화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50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 진화의 방향"을 상상력으로 풀어냈지만, 부족한 차액분은 남는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산대희>공연이 당시 귀족과 지배계층을 위한 연희란 '존재론적 속성' 또한 시간 속에서 지웠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부분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다. 첫 술에 배부를 생각은 없다. 단절된 과거를 복원해, 상설화 하는 작업이 어디 한 두번의 시도로 이뤄지겠는가. 내가 여전히 <산대희>공연에 주목하는 이유다. 힘을 내자.
#산대희 #장사익 #충무아트홀 #전통연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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