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해남여행 ③] 땅끝으로 가다

등록 2010.03.20 16:31수정 2010.03.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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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땅끝마을... ⓒ 이명화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에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애린/김지하)

땅끝,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다. 바라보면, 생각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길이 열리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기도로 새벽을 깨우며 시작한 하루. 간밤에 손님처럼 오시던 비는 가고 없는데 구름이 뒤덮고 있다. 땅끝으로 향하는 길이다. 시골길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잘 닦인 도로 양 옆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풋보리와 마늘이 초록으로 들녘을 물들이고 있어 회색빛 일색인 흐린 날에 수채화처럼 색깔을 입혀주어 위로가 된다. 얼마쯤 가다보니 바다가 보인다. 우린 왼쪽 편엔 바다를 끼고 또 다른 한쪽엔 들녘과 먼 산을 끼고 땅끝으로 달린다. 완도와 해남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다시 왼쪽 길로 접어든다. 해남 앞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는 길에서 달마산이 마주 보이고 광활하게 펼쳐진 땅 곳곳엔 작은 마을들이 평화롭게 이웃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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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이른 아침의 마늘 밭... ⓒ 이명화


마늘, 보리로 들녘은 생기를 입었다. 이른 아침부터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마늘밭에 엎드리고 있는 농부들이 보인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경치 좋은 길 시작'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고 경사가 높아진 길로 간다. 바다가 바로 옆에 있다. 맑은 날이면 다도해가 쪽빛 바다에 수놓고 있는 것이 선명할 텐데 아쉽다. 희미하게 드러나 보일 뿐이다. 얼마쯤 갔을까.

바다 끝으로 쑥 나와 있는 땅끝마을, 그리고 땅끝 탑이 멀리서 보인다. 오전 10시 2분이다. 땅끝 마을에 도착한다. 여기는 땅끝,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오버! 어디 타전이라도 할 데 없을까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땅끝마을에 내가 당도한 것이다. 땅끝, 육지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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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으로 가는 길...광활한 들녘...이따금 나타나는 작은 마을 마을들... ⓒ 이명화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땅끝마을은 위도상 북위 34도 17분 21초로 '토말(土末)'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원래는 갈두였다 한다. 칡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산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 후 2008년 행정명 변경을 통해 현재는 땅끝마을로 바뀌었다. 마을 서쪽으로는 갈두산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통호마을이 이어진다. 마을 앞으로는 남해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바다 위로는 보길도와 노화도, 흑일도, 백일도, 장구도 고깔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나 여기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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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마을...땅끝 전망대 앞에서... ⓒ 이명화


많은 관광객과 여행객이 찾기 때문인지 땅끝마을은 모텔, 민박, 횟집, 식당, 상점 등 온통 상가건물 간판들로 채워져 있다. 땅끝마을이라는 어감이 주는 시골정취가 물씬 묻어날 줄 알았는데 마을은 현대식 건물들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땅끝 전망대가 높이 솟아 있는 산 끝으로 구불구불 경사 높은 길을 따라 올라간다.

팔각정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깐 바다를 본 뒤, 산 오른쪽 귀퉁이에 난 계단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간다. 전망대가 있는 산꼭대기에 이르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깃발처럼 높이 나부낀다. 흔들어댄다. 머리카락이 바다 속 해초처럼 나부낀다. 잠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조차 몸이 흔들려서 쉽지 않다. 겨우 중심을 잡는다. 정말 땅끝이다.

바로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멀리 다도해가 수놓고 있다. 내가 땅끝에 섰구나. 땅끝까지 드디어 왔구나. 땅끝은 땅의 끝이면서 또한 시작점이다. 끝으로 와서 끝에서 시작하는 곳이고, 끝에 와서 버릴 것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곳이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있는 사람... 새로 시작하기를 갈망하는 사람... 땅끝으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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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모노레일이 보이고... ⓒ 이명화


이제 와서 특별히 정리할 것도 버리지 못해 힘겨워하는 것도 갈등도 없지만... 언젠가 꼭 한 번은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 땅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나름대로 얻고 싶었던 것일까. 전망대 앞에서 바다를 보고, 땅끝마을을 내려다보는데 거친 바람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전망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층층마다 조망할 수 있고 또 땅끝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붙어 있다. 보길도와 노화도, 넙도, 흑일도, 백일도로 향하는 페리호가 출발하는 땅끝마을 선착장이 마을끄트머리에 보이고 노란 색의 모노레일카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도 조망된다. 땅끝은 국토순례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땅끝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도보로 걸어서 순례하는 이들의 첫 시발지... 매년 이곳엔 국토순례단이 육지의 최남단 땅끝을 찾아 국토순례의 첫발을 내딛는 곳이다. 땅끝을 상징하는 땅끝탑 앞에서 잊고자 하는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찾는 이곳 땅끝을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모두들 땅끝탑과 땅끝전망대와 주변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이곳에 버리러 왔을까.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여기 섰을까. 여기 땅끝에 와서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을 내딛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가끔 땅끝에 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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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뒤로 하고...다시 되돌아오는 길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땅끝 전망대...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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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에서 돌아오는 길에... ⓒ 이명화


새로운 시작이든, 마지막 갈무리이든 땅끝에 서 보는 것, 그래서 자신의 삶을 거리를 두고 보며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생각하며 옷깃을 다시 여미는 시간이 가끔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땅끝이 비록 물리적인 거리인 이곳이 아니라도 말이다. 나는 먼 길을 달려와 이곳 땅끝으로 왔다. 나는 이제 땅끝에서 티끌 같고 부질없는 것들을 땅끝 바람에 날려버리고 다시 삶 속으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해남 땅끝마을 주변엔 가 볼 곳도 많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 삶 속으로 깊이 발을 내딛는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굽은 길에서 곧게 뻗은 길로 이어진다. 땅끝을 뒤에 두고 다시 삶 속으로 간다. 이일을 어쩌나, 내가 바람에 날려버리고 오리라 생각했던 것들, 공력이 불탈 때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욕심들, 불티같은 것들이 어느새 다시 자라고 있다.

풋보리가 자라듯 자꾸만 돋아나고 있다. 그래서 우린 매일, 매 순간마다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마음을 돌봐야 하나보다. 보리밭엔 초록빛 보리가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풋보리 가득 펼쳐져 있고 풋마늘 밭에도 초록물이 들어있어 이렇게 흐린 날 색깔을 입혀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코스(1시간 소요):모노레일-땅끝탑-전망대-전망대주차장-사거리갈림길-자갈밭삼거리-땅끝탑-맴섬
2코스(2시간 30분 소요):모노레일-땅끝탑-전망대-전망대주차장-땅끝관광호텔-오토캠핑장-갈산마을-자갈밭삼거리-땅끝탑-맴섬
*땅끝 전망대 관람료:1인당 1,000원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이용
서서울IC-목포(4시간)-영산강방조제
금호방조제-산이면-해남읍(5시간 소요
서서울IC-목포-영암-독천-해남읍(5시간 소요)
경부 호남고속도로
양재IC-광산IC(4시간)-나주-영암-해남(5시간 소요)
KTX: 서울-목포:1일 5회 왕복(2시간 58분 소요)
고속버스 이용
서울-해남:1일 7회 왕복(5시간 30분)
서울-목포:1일 24회 왕복(4시간 30분)
부산-해남:1일 4회 왕복(5시간 20분)
광주-해남 직통:06:00~20:30(1시간 20분)
목포-해남 첫차:05:30~21:00(50분)

*해남읍-땅끝 직행버스(50분 소요)/1일 19회 운행
해납읍-땅끝 완행버스(1시간 소요)/1일 16회 운행


덧붙이는 글 1코스(1시간 소요):모노레일-땅끝탑-전망대-전망대주차장-사거리갈림길-자갈밭삼거리-땅끝탑-맴섬
2코스(2시간 30분 소요):모노레일-땅끝탑-전망대-전망대주차장-땅끝관광호텔-오토캠핑장-갈산마을-자갈밭삼거리-땅끝탑-맴섬
*땅끝 전망대 관람료:1인당 1,000원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이용
서서울IC-목포(4시간)-영산강방조제
금호방조제-산이면-해남읍(5시간 소요
서서울IC-목포-영암-독천-해남읍(5시간 소요)
경부 호남고속도로
양재IC-광산IC(4시간)-나주-영암-해남(5시간 소요)
KTX: 서울-목포:1일 5회 왕복(2시간 58분 소요)
고속버스 이용
서울-해남:1일 7회 왕복(5시간 30분)
서울-목포:1일 24회 왕복(4시간 30분)
부산-해남:1일 4회 왕복(5시간 20분)
광주-해남 직통:06:00~20:30(1시간 20분)
목포-해남 첫차:05:30~21:00(50분)

*해남읍-땅끝 직행버스(50분 소요)/1일 19회 운행
해납읍-땅끝 완행버스(1시간 소요)/1일 16회 운행
#땅끝마을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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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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