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비늘을 벗는 어머니

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이나 꾼다

등록 2010.03.21 16:36수정 2010.03.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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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입은 지 이틀밖에 안 된 밤색 바지가 거의 하얗게 비늘로 덮여버렸다. 어머니에게 이게 대체 뭐냐고 하니 당연히 모른다고 하신다. 피부가 가렵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다 ⓒ 김수복


어머니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목욕을 하자고 하면 아무런 싫다는 의사 표현도 없이 옷 벗을 자세를 취하신다. 이런 어머니에게서 나는 기이한 낭패를 느끼곤 한다. 예전에 그토록 안 한다고, 무슨 놈의 목욕을 또 하느냐고 싫다고 뿌리치며 돌아서던 시절의 어머니가 은근히 그리워진다. 그때는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느냐"고 짜증도 곧잘 부리곤 했었다. 그런데 순순히 그러자고, 알아서 하라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내맡기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큰 아득함을 만난다.


뿐만이 아니다. 매일매일 한 움큼씩의 비늘이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비듬인가 했지만 비듬은 절대 아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간간이 내리는 첫눈처럼, 하얀 것이 스며 나오고, 옷에서 떨어지고, 공기의 흐름을 따라서 날리기도 한다.

이리저리 몸을 뒤채면서 자고 난 뒤의 방바닥에는 늦가을 아침의 무서리처럼 허옇게 비늘이 깔려 있다.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보면 의자에 백반가루를 뿌려놓은 듯이 하얀 비늘이 보인다. 이 비늘은 어디에 있다가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한때 물고기 아니 새였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 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어쨌든 나로서는 아주 낯선 어머니의 이 비늘이 나를 숨막히게 하고, 초조하게 하고, 그리고 뭐라고 마구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지게 한다. 대체 어머니의 몸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지금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머니의 비늘을 의식한 뒤로 부쩍 들고는 한다. 예전에도 드물지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보고는 했었다. 내가 만일 내일이나 모레쯤 어떤 사고로 급사를 한다면 나는 그대로 끝나는 것일까 하는 상상들, 그런 상상의 끝에는 언제나 천국이다 윤회다 하는 단어와 결속되는 종교가 끼어들면서 맥이 빠졌다.

그럴 때마다 종교에 관한 설익은 상식이나 지식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종교에서 강조하는 상식이나 지식이 내게 없었다면 내 상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훨훨 자유롭게 끝도 없이 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종교가 나를 작고 옹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불만이었다.


내가 나를 못 났다고 생각하는 시간만큼 괴로운 순간이 또 있을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서 종교라는 이름의 설익은 상식과 지식을 갖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과 불만의 시간이 참 괴롭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인가부터 그런 의문과 불만이 나를 떠나고 있었다. 종교란 그 어떤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을 한다 해도 결국은 고독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고 하는 내 나름의 종교관이 서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어도 외롭고 둘이 있어도 외롭다. 어떤 때는 혼자 있으면 덜 외롭고 둘이 있을 때 더 외롭기도 하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어떤 때는 죽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떨기도 한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것,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다고 나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그것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비교적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잘 살았다. 그 어떤 심각한 의문도 근원적인 질문으로 괴로워하는 일도 없이 낙낙하게 그야말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나 자신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자신만만하게, 그 어떤 명예나 부나 권위에도 허리를 굽힌다거나 고개를 수그리는 일 없이, 알 수도 없는 미래 같은 것에 발목 잡히는 일 없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가끔은 연애도 하면서 아무런 불만이 없이 살아 왔다.

나쁘게 말하자면 개인주의자요, 좋게 말하자면 자유주의라고나 할 내 삶의 이러한 태도에 어쩌면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라도 하듯이,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충고라도 하듯이 어머니는 이즈음 날마다 한 웅큼씩의 비늘을 벗어놓는 방식으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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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를 빨기 전에 뒤집어서 털털 털어내야 하는데 그럴 때 허공을 날리는 비늘이 마치 눈꽃 같다. ⓒ 김수복


처음에는 뭐 그저 그런 것이려니 여겼다. 연로한 분에게서는 피부 각질도 있고 뭐 그럴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날마다 열심히 쓸어내기나 했고, 빨래를 할 때는 옷을 일단 마당으로 가져가서 있는 힘껏 털어내기나 했다. 지금까지 방을 쓸 때마다 나오는, 빨래를 하자고 옷을 벗길 때마다 나오는 어머니의 비늘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면 아마 쌀자루로 한 개는 족히 될 것이다.

가끔은 어머니의 육체가 이렇게 비늘로 조금씩 떨어져서 내 손에 의해 버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머니를 버리고 있는 것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아, 이제부터는 모아야겠구나, 버려서는 안 되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틀 정도 모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모아서 병에 담아놓고 보니 뭔가 너무 아득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니다. 이런 것은 이렇게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버리고 나니 이게 또 뭔가 죄를 지은 느낌이 되는 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심사인 채로 어머니의 비늘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입에 넣어 맛을 보기도 하고, 손으로 살살 비벼보기도 했다. 허물을 벗거나, 변태를 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비늘과 대비해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그것은 일반적인 피부 각질도 아니고 비듬 종류도 아니라는 확실한 결론에 이르렀다.

보통 피부 각질은 비교적 딱딱하면서 날카로운 느낌이 있는데 반해 어머니의 몸에서 나온 그것은 부드럽고 연약하다는 느낌이었다. 머리에서 나오는 비듬 종류 또한 손으로 비비면 미끈한 느낌과 함께 손으로 달라붙는 데 반해 어머니의 그것은 손에 잘 붙지도 않고 느물거린다는 느낌도 없었다. 대체로 봐서 건조한 느낌의 그것은 새의 겨드랑이나 날갯죽지, 깃털 사이사이, 혹은 다리 부분을 만지면 손에 묻어 나오는 비늘을 연상케 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지금 새가 되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새였던 것인가. 이런 동화 같은 생각에 젖어 있다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아아 그래, 어쩌면 목욕을 자주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던 목욕을 사흘로 줄이고, 그래도 효험(?)이 없어 이틀에 한 번꼴로 단축해 보기도 했지만 비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목욕을 하고 난 뒤에 그 양이 더 많아진다는 느낌조차도 있었다.

혹시 쑥물로 목욕을 해서 그런가 하는 의문도 물론 가져보았다. 쑥뿐만 아니라 오데코롱이며 애플민트 같은 허브 말린 것을 우려낸 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범인(?)이라면 나는 왜 멀쩡한가. 나 또한 어머니의 목욕물과 성분이 같은 물을 쓰는데 나는 왜 비늘이 없는가 말이다.

옷을 죄다 벗어 던지고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몇 번이었던가. 어디에 있느냐, 비늘은. 그렇게 달래듯이 속삭이며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안 보인다. 찾을 수가 없다. 없지는 않을 텐데 왜 안 보이는가. 나는 무엇이 얼마나 모자라서 아직도 비늘이 안 보이는가.

어머니는 대체 과거에 무엇이었기에 그토록 많은 비늘을 갖고 있었는가.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는 대체 지금 무엇이 되어가고 있기에 그토록 많은 비늘을 벗어내고 있는 것인가. 혹시, 혹시 어머니는 어느 날 홀연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숨 막히는 의문 속에서 겨울은 이제 완연히 물러나고 봄이 온다. 봄이 왔다. 날씨가 풀리면 풀릴수록 어머니의 비늘은 그 양이 늘어간다. 그렇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비늘 #치매 #동화 같은 상상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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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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