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작은 일꾼, 작은 사람, 작은 마음

[책읽기가 즐겁다 347]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로 책마실 다니는 까닭

등록 2010.03.27 15:04수정 2010.03.27 15:04
0
원고료로 응원
작은 책방 <풀무질>을 기리면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큰일꾼 은종복 님이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이후, 2010)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은종복 님은 책방 <풀무질>을 1993년 4월 1일에 이어받았고, 책방 <풀무질>은 1985년 여름에 문을 연 곳입니다. 오는 4월 1일,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책방 <풀무질>에서는, 큰일꾼 은종복 님이 낸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를 놓고 '책 기림잔치'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4월 1일 낮부터 조촐하게 축하잔치가 열리니, 작은 책방 <풀무질>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즐겁게 나들이하면서 책 하나 기쁘게 장만하고 '작은 책방 <풀무질>이 내는 작은 목소리'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작은 책방 작은 목소리를 담은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를 기리는 뜻으로, 모두 네 꼭지로 기림글을 적바림하고자 합니다.


① 작은 책방, 작은 일꾼, 작은 사람, 작은 마음
② 사진으로 보는 <풀무질> 발자취
③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는 어떤 책?
④ 4월 1일 기림잔치 소식과 '풀벌레' 한 마디

a

책방 <풀무질> 일꾼이 써낸 책. ⓒ 최종규


 ① 작은 책방, 작은 일꾼, 작은 사람, 작은 마음

얼마 앞서, 서울 노고산동에 자리한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시간의 빛>(강운구 글·사진/문학동네 펴냄, 2004)이라는 책을 장만해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전철길에서 읽었습니다. 2004년에 18000원이라는 값을 달고 나온 256쪽짜리 작은 책인데, 2004년에 처음 나왔을 무렵에는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 들어 새책방 책시렁에서 만지작거리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 뒤 여섯 해가 지난 2010년에 헤아리더라도 18000원이라는 책값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헌책방에서 만났기에 조금 눅은 값으로 장만할 수 있었는데, 2008년에 나온 <거대 공룡과 맞짱뜨기>(김지연 글·사진/눈빛 펴냄,2008)라는 168쪽짜리 사진책이 15000원임을 돌아본다면 이래저래 <시간의 빛>은 헌책으로 살 때에도 머뭇머뭇할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담은 알맹이가 저한테 아름답거나 알차다고 느낀다면 책값이 18000원이 아닌 28000원이더라도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800쪽에 이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반 고흐 글·그림/아트북스 펴냄,2009)는 책값이 26000원입니다. 글 부피도 부피이지만 반 고흐 님 소묘와 그림이 퍽 많이 들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는 책은 <시간의 빛>과 견주면 고작 팔천 원을 더 얹으면 장만할 수 있습니다. 책을 무게나 부피나 쪽수나 돈셈으로 장만하는 일이란 없지만, 책방마실을 하면서 주머니를 열 때에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 아깝다는 느낌이랄까요?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랄까요?

눈밭이 아닌 눈나라가 된 판이라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은 몹시 더디고 손님은 더없이 들어찼습니다. 여느 날 출퇴근 때에도 지옥철인 '인천-서울 전철'길인데, 눈나라인 요 며칠 전철길은 지옥철을 한껏 넘어서는 불지옥철이라 할 만합니다. 이렇게 찡기고 밀리고 눌리면서 <시간의 빛>을 움켜쥐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안간힘이라고 할는지, 찌푸려지는 이맛살을 반반하게 펴고 싶은 몸부림이라고 할는지, 저마다 발버둥치듯 옆사람을 밀고 어깨로 쑤시면서 제자리를 조금이라도 넓히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써 손에 쥔 강운구 님 책은 그리 맛깔스럽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그렁저렁 찍은 사진과 이렁저렁 적바림한 글이 모인 책일 뿐, 가슴을 흔들거나 싸아하게 울리는 멋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인천을 나서며 손애 쥐었던 <문명의 산책자>(이케자와 나쓰키 글/산책자 펴냄,2009)라는 책도 지루하기만 할 뿐, 내 넋이나 얼을 건드리는 몸짓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겨울에 장만한 <서울, 북촌에서>(김유경 글, 하지권 사진/민음인 펴냄, 2009)라는 책도 맨숭맨숭했습니다. 모래 한 줌짜리 이야기로 이렇게 그럴싸하게 책을 엮어낸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지난해에 나온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곽아람 글/아트북스 펴냄,2009)라는 책도 저로서는 나무가 아깝다고 느낀 책입니다. 왜 이런 책을 애써 나무를 베고 물을 쓰고 석유를 들이면서 펴내야 할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책을 엮은 분이나 글을 쓴 분이나 이렇게 얕은 이야기로 우리한테 무슨 울림과 뭉클함을 선사하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작은 책방 <풀무질>은 작게작게 꾸리면서 '작지 않은' 도시락을 꾸리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최종규

그렇지만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책입니다. 저한테 아쉬웠던 책이라 하여 모든 사람한테 아쉬울 책은 아닙니다. 저한테는 슬프고 안쓰러운 책이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반갑고 고마울 책일 수 있습니다.

저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곳을 드나들지 않을 뿐더러, 이곳에서 책을 사는 일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교보문고에서 사진책을 사곤 했지만, 서울 혜화동에 <이음책방>이 생긴 뒤로는 <이음책방>을 날 잡고 찾아가서 사진책을 삽니다. 여느 인문책은 서울 명륜동 <풀무질> 나들이를 하면서 삽니다.

제가 살아가는 인천에는 <대한서림>이라는 큰 책방이 있는데 가끔 이곳에서도 책을 사기는 하지만, 제 삶터인 골목동네에는 작은 책방이 없기에, 서울로 볼일을 보러 나오는 길에 따로 명륜동을 찾아가 책마실을 함께 즐깁니다.

바쁘다 하고 먹고 살기에 힘겹다 하면서 제 둘레 사람들은 책을 들추는 삶자락하고 멀어집니다. 동네책방에 느긋하게 책마실을 하는 일은 드물고(동네책방이 거의 모두 씨가 말랐으니까요), 책을 사더라도 인터넷을 켜고 알라딘이니 인터파크니 예스이십사이니 하는 데에서 점수를 쌓고 에누리받은 값으로 삽니다.

새책을 사든 헌책을 사든 으레 인터넷을 켜서 몇 가지 '내가 바라는 책 몇 가지'만 알아보고 '가장 싸게 파는 데'를 찾아서 삽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비싸게 파는 데'라 할 작은 책방인 <풀무질>을 찾고 <이음책방>을 찾습니다. 책에 적힌 값을 온돈 치르고 사들입니다. 12000원이 찍힌 책은 12000원을 치릅니다. 25000원이 박힌 책은 25000원을 치릅니다. 나라밖 두툼한 사진책은 6만 원도 치르고 9만 원도 치릅니다.

있는 그대로 책값을 치르며 요즈음 물건값을 어림합니다. 책마다 붙은 값을 돌아보면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값을 어떻게 느끼는가'를 살갗으로 받아들입니다. 책 하나는 알맹이로 담아낸 이야기로도 아름다워야 하겠고, 쥐어들어 펼칠 때 손으로 느낄 종이결로도 아름다워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줄거리를 써내는 사람부터 아름다운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좋은 줄거리를 좋은 판으로 엮어 놓는 사람 또한 아름다운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다루고 나르고 파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골고루 아름다운 삶이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리하여, 마지막 자리에서 책값을 치르며 펼쳐 읽는 사람들한테도 아름다운 삶이 이어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a

2007년 6월에 새 보금자리로 옮긴 <풀무질>. 제법 널찍한 자리에 책들 또한 넉넉하게 꽂혔습니다. ⓒ 최종규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말로 담아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말을 아름다운 책으로 빚어 놓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손길로 다루어 아름다운 책방에 갖추어 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눈길로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고 아름다운 마음에 담아 놓습니다.

작다고 해서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인문책을 지키는 곧은 다리품이요 길이기에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따스하고 넉넉히 껴안는 품을 잊거나 잃지 않기에 아름답습니다. 책방 <풀무질>은 저한테 아름다운 책쉼터입니다. 책방 <풀무질>은 저처럼 두 다리와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즐거운 책만남터입니다.

책방 <풀무질>은 저와 같이 기저귀 빨래 좋아하고 텔레비전 안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한테 고마운 책배움터입니다. 책방 <풀무질>은 글쓰고 사진찍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좋은 책나눔터입니다. 스무 해를 살아낸 땀방울로 새로운 스무 해를 살아내리라 믿습니다.

a

작은 책방 <풀무질>은 작은 목소리로 세상을 말하고 밝히려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풀무질 #책읽기 #삶읽기 #인문사회과학책방 #작은책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