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빈소, 인터뷰하면 왠지 욕먹을 분위기"

[취재후기] 비극적 죽음에 기자들도 빈소 생중계 대신 '자중취재'

등록 2010.03.30 12:59수정 2010.03.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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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기자들이 최진영씨의 장례식장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다. ⓒ 홍현진



"조문객이 왔는데 왜 기자들이 인터뷰를 안 해?"


선배 기자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했다. 29일 오후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입구. 고 최진영씨의 장례식 취재를 위해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모였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조문을 위해 수시로 장례식 입구에 들어섰다. 평소 같았으면 기자들이 그야말로 '벌떼같이' 몰려들어 인터뷰를 했을 터. 그런데 이날은 이상했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만 터질 뿐 조문객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이 없었다.

TV에서나 많이 봤지 장례식장 취재는 처음인지라, 다른 기자들에게 물어봤다. 혹시 인터뷰 하면 안 되는 '룰' 같은 거라도 생긴 거냐고 아니면 유가족 측에서 조문객 인터뷰를 통제하는 거냐고.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왠지 질문하면 욕 먹을 분위기잖아요. 어차피 질문해봤자 대답하는 것도 똑같고."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 비난 받은 '빈소 생중계'

언젠가 한 케이블 방송에서 거의 하루 종일 빈소의 모습과 조문객 인터뷰를 생중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누군가는 차분한 목소리로 추모의 뜻을 전했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피했다.


최근 몇 년간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지면서 그들의 죽음 못지않게 누가 빈소를 찾았으며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가 언론의 큰 관심거리였다. 조문객들의 모습은 '빈소 표정'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그리고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유명 연예인들이 온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문객들의 모습이 좋은 '꺼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문하러 온 연예인들에게 마치 시상식 혹은 결혼식에 왔을 때처럼 '포토라인'에서 플래시를 터트리고 '한 말씀'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태도는 누리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날도 고 최진영씨 관련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 이번엔 제발 기자들 좀 장례식장 앞에서 문상 온 연예인들한테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이런 질문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동료가 죽었는데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도대체(문예찬)."

이전과는 사뭇 달랐던 장례식장 취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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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사망한 고 최진영씨 빈소를 찾은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 조성민씨 ⓒ 최윤석


하지만 이날 장례식장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유가족의 요청으로 빈소의 모습은 일부 취재진에게만, 그것도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공개됐다. 고 최진영씨가 사망한 지 약7시간이 지나서야 기자들은 최씨의 영정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만큼 취재환경이 제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날은 조문객 인터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례식 입구로 들어왔던 조문객들은 다른 문을 통해 귀가했지만 그들을 붙잡고 인터뷰하는 언론도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영자, 이소라, 엄정화, 빽가, 손현주, 조연우, 유지태, 김효진... 이날 장례식장을 찾은 연예인들의 상당수는 2008년 10월 고 최진실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사람들과 겹친다. 그뿐인가. 고 최진실씨와 '절친'이었던 이영자, 이소라, 엄정화씨는 같은 해 9월 정선희씨의 남편인 고 안재환씨의 장례식장에서도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중한 사람들을 연이어 잃은 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두 명의 자식을 모두 하늘로 보낸 유가족들에게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들은 최진실씨의 죽음 이후에도 친권분쟁, 유골함 도난이라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왠지 질문하면 욕먹을 분위기"는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질문하면 욕먹을 분위기"

오후 10시가 되자 고 최진영씨의 소속사인 엠클라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이경규 대표가 기자들 앞에 나와 보도자료를 읽어 내려갔다. 서울법의원의 시체검안서에 따르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경부 압박에 따른 질식사, 즉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그 외에 기타 신체 외상은 없었다.

소속사 측은 사망 전 최씨에게 우울증 증세는 전혀 없었고 연예계 복귀에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복귀에 대한 부담감, 집안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으로 인해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인이 된 누나에 대한 그리움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장 입구에 설치된 TV를 통해 나오는 뉴스에서는 고 최진실씨와 최진영씨 남매를 '비운의 남매'라 부르고 있었다. 자료화면에서는 두 남매가 다정하게 어묵을 먹고 있었다. 한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일어난 잇따른 비극 속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수습기자의 '순진함'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차분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진영 #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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