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주례 선 아버지는 저뿐일 걸요?"

[인터뷰] 한국 사회과학서점 1호 '인서점' 대표 심범섭씨

등록 2010.04.02 11:02수정 2010.04.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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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점 아저씨' 심범섭 대표와 막내아들 심재법(30)씨. 재법씨는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 노동세상

'인서점 아저씨' 심범섭 대표와 막내아들 심재법(30)씨. 재법씨는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 노동세상

 

책읽기는 시대를 닮는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의 책읽기는 '투쟁'이었다. 바른 말 한 마디 때문에 잡혀가던 시기, 수많은 이들이 말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모든 것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지식도 저항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도.

 

200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의 책읽기는 '실용'이 되었다. 경쟁에 치이는 각박한 현실은 고민하는 힘 대신 경쟁력을 요구했다. 자기계발, 경제, 어학서적이 신들린 듯 팔려나가는 사이, 한때 140여 개가 넘었던 사회과학 서점은 현재 6개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있다. 1982년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사회과학 서점 '인서점'이다. 사고력보다 토익점수를 높이 쳐 주는 시기,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있는 인서점 안에는 지금 무엇이 있을까.

 

수배자 주례 1순위 '인서점 아저씨'

 

대표 심범섭(66)씨는 본명보다 '인서점 아저씨'로 불려 왔다. 80년 광주항쟁 이후, 군부의 통제는 사람들의 신뢰와 소통까지 가로막았다. 그런 때 간 크게도(?) 처음으로'사회과학'서점이란 간판을 단 인서점은 작은 해방구였다. 동시에 학생운동의 소통 거점이었다.

 

사회과학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80년대 초, 대학생들은 이곳에서 광민(동녘의 전신), 창비, 한길사 등이 낸 약간의 '이데올로기 서적'이나 외국에서 들여온 책, 방송국 자료 등을 구해 돌려보곤 했다. 구하기 힘든 자료들이 오갔고, 당시 첨단장비였던 복사기로 문건과 '삐라'를 복사해 퍼뜨릴 수 있었다. 서점 책꽂이를 잡아당기면 비밀스레 열리던 세 평 남짓한 쪽방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정보와 울분을 나누었고 말없이 작별했다.

 

"그 당시 운동이라는 건 언어라기보단 열망이었어요. 새벽 두 시쯤 학생들이 찾아오면 커튼 치고 같이 라면에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울고,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인간, 민중, 역사에 대한 열정어린 대화들이 책 열 권보다 더 좋은 지식을 키워주는 토양이었죠. 이별의 기억도 참 많았어요. 여기서 삐라 100장 만들어 아침에 갖고 나간 학생이 그날 밤 TV에 잡혀가는 모습이 나오고….

 

건대항쟁 때도, 전교조 출범 때도 그의 공간은 학생과 수배자들에게 늘 열려 있었다.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주례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600쌍의 주례를 섰어요. 주로 수배자니까 숨어서 결혼했고, 하객도 비밀리에 접선(?)해서 한밤중에 봉고차 타고 참석했죠. 한 번은 경상도 산꼭대기에서 했는데 신랑 부모님이 안 오신 거야. 의절하겠다는 의미였죠. 그 자리에서 우리 부부가 신랑을 양아들로 해서 결혼식을 치르자고 했어요. 멍석 깔아놓고 입양식 먼저 하고, 일어나서 주례 서고. 아들 주례 선 아버지는 저뿐일 거예요.(웃음) 그래도 결혼 후에 애 둘 낳아 남편 부모님께 찾아가니까 지금은 잘해주신대요. 그 애들 둘이 벌써 고등학교에 들어갔네요."

 

시대를 넘고 새 길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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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대 후문에 자리 잡은 인서점. ⓒ 노동세상

서울 건대 후문에 자리 잡은 인서점. ⓒ 노동세상

1987년 전후로 사회과학 서적 출판과 유통이 활발해졌으나 탄압은 여전했다. 인서점은 특히 그러했다. 국내 최초로 첨단 도청장치가 서점 안에서 발견되었다. 1994년에는 '불온서적' 출판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간첩 혐의를 쓰고 대공분실로 끌려가기도 했다.

 

"도망도 다니고 시골로 이사도 갔죠. 동네 이장을 통해서 헌병대가 매일 감시했어요. 그때 책임 있게 사는 사람이라면 다 겪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은 징역 사는데 저는 오히려 책 팔면서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서 미안할 정도였죠. 많이 잡혀갔지만, 골치아파한 건 경찰들이었죠. 인맥은 많지만 다 서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고, 여타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학연, 지연이 딱히 없었던 거죠. 그러니 엮을 데도 없고. 조사해도 걸리는 거 없고. 그래 내가 그랬어요. '김일성 회고록 내가 팔았다.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책장사가 이득 보고 파는 게 무슨 문제냐. 또 당신들이 회고록을 궁금하게 만드니까 자꾸 출판하고 팔게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대꾸를 못하더라고.(웃음)"  

 

1995년과 2005년, 두 번의 폐점 위기를 넘기며 간판은 '사회과학'서점에서 '문화과학'서점으로, 이어 '문화사랑방'으로 바뀌었다. "열정과 긴장이 사라지자 진보진영은 허약해졌어요. 또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성취했으니 이젠 다른 배고픔을 채워야 했죠. 그런데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하니 외면당한 거죠. 사회과학 책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많이 나왔지만 잘 안 팔리기 시작했죠." 그 때 그는 '문화'를 주장했다.

 

"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면 감동을 주고 사람을 움직일 만한 얘기가 있어야죠. 단순한 지식은 무서운 무기예요. 그걸 문화와 철학으로 제어해 선하게 쓰는 게 중요하죠."

 

지금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감동을 주는 '내용'을 채워야 해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친구들 간의 다정한 대화 같은 토론을 많이 했으면 해요. 삶의 현장 속에서. 지금 간판 '문화사랑방'은 그런 의미예요."

 

책과 함께 희망을 실어나르네

 

인서점의 재산은 책이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른다. 함께 울고 웃던 수많은 이들, 그가 주례를 선 600쌍의 부부들, 음해를 무릅쓰고 그의 간첩 혐의를 벗겨준 판사, 경찰들을 막아준 신문기자… 언제 어디서든 인서점을 아끼고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영난으로 인해 두 번이나 닫은 서점 문을 열어준 것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가 생활고를 감수하며 인서점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대 동문들이랑 학생들이 모금을 해서 1억3800만 원인가 걷어왔어요. 지금 이 책꽂이들도 당시 학생들이 만들어 준 거예요. 이렇게 많은 정성이 깃든 곳이니만큼 인서점은 우리 역사의 두 가지 사명을 짊어진 곳이라 생각해요. 6월 항쟁 전후 수많은 청년학생, 노동자들이 사람 사는 세상을 함께 꿈꿨던 추억을 기념하는 앨범, 두 번째는 새 세상으로 가기 위해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공간이죠."

 

그에게 책이 안 팔리는 것보다 더욱 힘든 것은 짐승 같은 세상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무한 경쟁의 공간에서 청년성을 잃어버린 청년들, 침묵하는 지식인들이 슬프고 원망스럽기까지 해요. 나 하나만의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희생시킨다면 나는 성공한 건가요? 인간다움을 버리고 무슨 성공이 있겠어요?"

 

이어 그는 386세대에게 날카로운 요구를 했다.

 

"지식인들, 선배들이 먼저 새 시대를 읽는 키워드를 찾고 지금을 극복할 새 가치, 새 희망을 제시해서 청년들을 더 추동해 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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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점의 서가에는 '인서점 추천서가' 외에도 '청년건대 서가' '건대 총학생회 서가' 등이 따로 있다. 졸업한 건대 동문들이 기금을 맡겨 후배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는 취지로 만든 곳이다. ⓒ 노동세상

인서점의 서가에는 '인서점 추천서가' 외에도 '청년건대 서가' '건대 총학생회 서가' 등이 따로 있다. 졸업한 건대 동문들이 기금을 맡겨 후배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는 취지로 만든 곳이다. ⓒ 노동세상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꿈을 나누고 있다. 다음 카페 '인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주문받은 책을 즐겁게 발송하고, 회원들과 책 얘기, 세상 얘기를 나눈다. 명사를 초청해 작은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정성을 쏟고 있는 일은 '글나루'다. 그가 직접 매달 30권의 책을 읽고 그중 두 권을 서평과 함께 '글나루' 회원들에게 발송한다. 선정 기준은 여타 서점처럼 판매순위, 유명세가 아니다. 개인의 성장과 세계를 보는 인식의 성장을 돕는, '성찰력'을 갖춘 책들이다. 많이 알려진 책이 오히려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현재 90명인 회원을 500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책을 나르는 즐거움과 서점의 생존을 함께 충족할 수 있는 수치다.

 

힘들지만 인서점을 지고 가는 지게꾼이 제 역할이라는 그의 얼굴은 맑다.

 

"아름다운 세상을 가려면 아름다운 방식을 통해야 해요. 내 몫을 더 내놓고 인간성을 지키는. 우리 손주들에게도 공부나 경쟁보다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요즘은 즐거운 날도 더러 있어요. 사람들이 '이 길이 아니구나'하고 걸음을 멈추는 듯한 조짐이 보이기도 하고, 학생 두세 명이 책 읽는 모임 만든다고 찾아오기도 하고."

 

지금 인서점은 일반 서점과 별 차이 없다는 그의 말은 지나친 겸손이었다. 그곳에는 소통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다. 10~20%의 할인율, 당일 총알배송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대안을 꿈꾸는 손들이 바람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언제든 퍼져갈 것이다. 여전히 모든 것이, 책에서 시작된다.

 

* 현재 사회과학 서점은 그날이오면(서울대 앞), 풀무질(성균관대 앞), 녹두(동국대 앞), 청맥(중앙대 앞), 민사랑(청주), 인디고서원(부산)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노동세상> 3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02 11:0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노동세상> 3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서점 #사회과학서점 #심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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