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변 시장 오후 다섯시의 기적

[시] 아름다운 파시 풍경

등록 2010.04.04 16:54수정 2010.04.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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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 반 잎 반 그렇게  
시나브로 하늘 하늘 
생선비늘처럼 떨어지는 
왁자한 경상도 사투리의
남천 해변 시장에 친구따라
싱싱한 어물장 보러 왔네.


재생타이어 뜯어서 만든 것일까.
허리까지 오는 고무 옷을 
입을 것인지 둥둥 붕대처럼 감은 것인지
잘 구별이 안되는 
앉은뱅이 늙은 사내는 

레일 달린 뗏목 좌판에
빨래 집게, 방부제,
이태리 타올, 수세미 따위
가득 싣고서 파시를
홍해처럼 가르는 모세처럼 나타났네.

구렛나루가 긴 모세 닮는 사내는
어느 해 뺑소니 차에 다리를 잃었다네.
그 억장 무너지는 사연 들은 뒤로는, 
며칠 씩 나타나지 않으면
가슴 조마하며 그를 기다리는 
좌판 상인 할머니들이 많다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면,
그 뒤를 천천히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내가 쩍 파시를 가르고 지나가면
시장 바구니 든 아낙들과 아이들은
마치 창세기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느릿느릿 파시 속을 거북이 헤엄치듯이 걸어갔네.

검은 고무줄로 꽁꽁 묶은
낡은 카셋트 딸린 목제 라디오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가
노을이 물듵인 하늘을 찬송가처럼 은은하게 울리고,


웅성웅성 고무 함지에 퍼득거리는
장어를 담은 기장 할매, 요동치는 미꾸라지를 
대야에 담아 가지고 나온 하동댁
땅으로 풀쩍 뛰어내린 징그러운 문어를
떡두꺼비 같은 손바닥으로
날름 날름 대야에 담으면 또
폴쩍 뛰어내린 문어의 징그러운 몸짓에
한 바탕 파시는 시끄러운 소요가 일어났네.

그래도 좌판상 할머니들 그저 
앉은 뱅이 사내가 거룩한 모세가 
지나가듯이 고무 함지 이고 들고
양옆으로 물러서서
그가 이끄는 파시의 오후 다섯시 
지나가길 기다릴뿐이라네.

꽃 반 잎 반 시나브로
생선비늘처럼 떨어지는
남천동 해변 시장에 봄이 오면
파시가 쩍 하루에 한 차례씩 갈라지는 바람에

어부지리의 떠리미 많이 생겨

풍성하게 웃으며 
어물장을 볼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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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적처럼 ⓒ 영화, 모세의 기적

#파시 #해변 시장 #모세 #비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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