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뒹구는 사람 뼈 방치...대전 동구청장의 직무유기

[取중眞담] 산내 집단희생지 안내판 설치, 땅값 하락 때문에 또 외면

등록 2010.04.06 14:33수정 2010.04.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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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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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위닝턴 기자가 목격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의 처참한 모습. 대충 덮은 흙 위로 희생자 다리가 드러나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위닝턴 기자가 목격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의 처참한 모습. 대충 덮은 흙 위로 희생자 다리가 드러나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여기저기에 사람 뼈·치아 흩어져...유해매장지 방치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서히 땅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살점과 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냄새는 목구멍까지 스며 들어와 그 후 며칠 동안이나 그 냄새를 느껴야 했다. 커다란 죽음의 구덩이를 따라 창백한 손, 발, 무릎, 팔꿈치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 총알에 맞아 깨진 머리들이 땅 위로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위닝턴 기자의 증언록,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의 한 대목이다.

 

당시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들 수 천여 명이 영문도 모른 채 군경에 의해 총살됐다. 총살이 끝난 후 흙마저 대충 덮어 손과 발, 머리까지 삐죽이 드러났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2010년 4월. 대전 산내 골령골은 어떤 모습일까? 겉보기에는 봄을 맞고 있는 평범한 다른 들녘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주변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움찔움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땅 위로 사람의 뼈가 조각난 채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치아가 흩어져 있기도 하다. 간간히 A1 탄피도 눈에 띈다. 60년 전 위닝턴 기자가 땅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던 살점은 온데 간데없지만 그 뼈가 남아 이곳이 죽음의 구덩이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드러난 사람의 뼈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발족해 유해발굴을 시도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삽 한번 뜨지 못했다. 유해가 매장된 땅 주인들이 토지사용허가를 불허한 때문이다. 한 토지소유주는 "유골이 드러날 경우 땅값이 떨어진다"며 유해매장지를 포함, 인근 소유 임야까지 터무니없는 가격에 모두 매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밭갈이와 도로공사, 하천공사로 드러난 유골은 곳곳으로 흩어져 삭아 없어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나서 유해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관할 구청에 건축허가 등 개발허가를 불허할 것을 요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관할구청은 유해매장지 한복판에 건축허가를 내줬고, 시민단체 명의의 안내판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급기야 진실화해위원회가 긴급처방에 나섰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더 이상의 유해 훼손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 방안으로 현장에 유해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하고 대전시(시장 박성효)를 통해 대전동구청(구청장 이장우)에 관련 예산을 지원했다.

 

대전동구청, "땅값 떨어진다"며 안내판 안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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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집단희생지에서 드러난 피학살자의 유해로 보이는 두개골. 현장에서는 유골 훼손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대전동구청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지원하는 안내판 설치사업마저 외면하고 있다. ⓒ 심규상

대전 산내집단희생지에서 드러난 피학살자의 유해로 보이는 두개골. 현장에서는 유골 훼손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대전동구청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지원하는 안내판 설치사업마저 외면하고 있다. ⓒ 심규상

하지만 대전시와 대전동구청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지원한 예산을 거부했다. 지가 하락 등 지역주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많아 안내판을 세우지 않기로 했단다. 유가족들은 낙담했다. 그러면서도 대전시와 관할 구청을 방문해 안내판이라도 세워 조금이나마 현장 훼손을 막아달라고 애원하고 호소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원회는 올해에도 관할 구청에 안내판 설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전동구청은 올해 또다시 예산을 거부했다. 담당 공무원의 답변은 싸늘했다.

 

"지가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많아 세울 수 없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입장만 고려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담당공무원은 "구청장님도 안내판을 세우지 않기로 한 이같은 이유에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인지 지난 2000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0년째 대전시장과 관할 동구청장은 단 한 번도 위령제에 참석하거나 그 흔한 조화 한번 보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안내판을 사유지에 세워달라는 것도 아니다. 유가족들은 오히려 사유지를 피해 도로변이나 하천 부지 등에 세워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의 행정기관 어디에도 6·25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유해를 처리하는 곳이 없다. 일례로 지난 2001년 산내 골령골에서 공사 도중 한국전쟁 당시 집단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드러난 유해의 수습과 안장절차를 대전시청에 문의했지만 관할 구청과 협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할 대전 동구청은 경찰서에, 경찰은 다시 검찰에 처리를 떠넘겼다. 할 수 없이 유가족들은 당시 드러난 유해를 골령골 땅속에 다시 파묻어야 했다.

 

그냥 삭아 없어지도록 내버려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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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드러나 나뒹글고 있는 '사람의 뼈' ⓒ 심규상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드러나 나뒹글고 있는 '사람의 뼈' ⓒ 심규상

결과적으로 산내 골령골에 묻혀 있는 집단 희생자들의 유해는 드러나서는 안 된다. 드러나더라도 공설묘역 등에 안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현장에서 이리저리 채이고 뒹굴다 삭아 없어지는 것만이 허용될 뿐이다. 

 

이장우 대전 동구청장은 지난 선거에서 대전 최연소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됐다. 1987년 민주화 열풍이 거세던 때에 대학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고, 국회 비서관 및 정책보좌관을 경험했다. 대학 행정학과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하다. 정말 이 청장은 지가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여론을 들어 주는 일이 반백년 이어온 역사적 상흔을 치유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국회 보좌관시절에도, 대학 교수를 하던 때에도 같은 가치판단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지.  

 

나뒹구는 '사람의 뼈'를 방치하고 현장훼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인 안내판 설치마저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관할 행정기관의 직무 유기라는 생각이 지나친 걸까?

 

대전 산내집단희생지에는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제주 4·3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등 7000여 명(최소 3000명)이 집단학살 후 암매장된 곳으로 유해매장 구덩이만 8개소에 이른다.

#대전형무소 #대전 산내 #대전동구청 #집단희생지 #골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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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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