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보다 진실의 힘이 세다!

천암함과 4대강과 세종시와 스폰서 검사 파문을 보면서

등록 2010.04.29 11:03수정 2010.04.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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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역사는 각 시대별로 사회적 담론을 형성했던 '쟁점들의 연결고리(chain)'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은 쟁점의 진화과정이었으며, 쟁점의 출현과 해결방향에 따라 인류문명의 전개방향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 사회의 사회적 논제로 부상한 바 있는 '천암함 침몰 사고', '세종시 수정안' 그리고 '4대강 사업', '비정규직 법 개정', '미디어법 개정', '무상 급식' ,' 스폰서 검사' 등과 관련한 여러 쟁점들은 한국 사회의 역사와 미래를 채우는 내용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논쟁과정이 효율적이며 생산적이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상호간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 동일한 쟁점이라도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 그리고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쟁점의 모습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논란이 되었던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침은, 각 개인들의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라, 더 나아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도 부동산 보유 규모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한 종부세가 이른바 징벌적 과세인지, 아니면 조세정의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수단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논란 역시 같은 차원에서 얼마든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고 있는 한, 이해관계에 따른 이익집단의 출현과 의사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만일 수많은 사회적 쟁점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면 철저한 독재사회이거나 공상적 유토피아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다양한 입장과 시각이 공존하고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는 대립과 갈등을 숙명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사회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회적 담론과 여론의 형성과정에서 입장과 시각이 다른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시각이 다른 상대편을 설득하는 이성적 의사소통 방법으로서의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정립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논쟁을 위한 열정과 참여의식, 경청을 위한 인내심, 여론에 대한 양보와 합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다양성이 보장된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통합이 가능할까? 통합은 이질적 대상 간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이질적 대상 간의 공존을 의미한다. 이해관계가 맞서는 제반세력의 등장으로 급속히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입장과 시각이 다른 상대방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입장과 시각이 다른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를 구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훨씬 용이하다.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유추적 해석을 통해, 우리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입장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토론은 다원적 민주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토론과 민주주의는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은 모두 인간의 성장을 도모하고 증진시킨다는 근본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토론(논쟁)은 변화(change)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며, 논쟁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에 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그 변화와 관련하여 올바른 판단,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논쟁은 언제부턴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기술'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과 같은 책의 제목은 우리 사회 토론 문화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논쟁이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기술로 변질되는 순간, 말은 날카로운 무기로 변하기 십상이다. 더 큰 문제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해서 상대를 설득시키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폭력적인 수준의 말 몇 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거나 입장과 시각이 다른 쪽을 매도하는 경향이 매우 빈번해 졌다는 데 있다.

 

최근 전교조 가입 교사 명단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해 논란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판결을 아예 무시하면서 법원의 판결이 정치와 국회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반발하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될 법하다. 법원의 판결이 불만이면 상급심의 판단을 구하면 될 것이고 항소를 하고 헌재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했다니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심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법원의 관련 판결을 '조폭판결'이라고 했다는 같은 당 정두언 의원의 발언은 그 자신의 발언이야말로 조폭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권력에 취하면 대체로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경향을 보이는 게 우리 정치인들이기는 하지만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천주교 사제단을 향해 사제들의 뇌구조가 궁금하다고 했다는 보수단체 사람들의 뇌구조야말로 진정 궁금하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말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쪽 사람들에게 내용을 충분히 알려서 설득하도록 지시하면서도 결국 홍보가 부족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래서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정부 차원에서 4대강 홍보에 가용 예산을 모조리 쏟아 붓고 있는 모양이다. 선거 기간 중에는 관련 홍보를 자제하도록 한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서도 항의를 전달하겠다는 게 국토부의 방침이라고 하니 일의 우선 순위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천암함 침몰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에 대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정도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관련,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가장 큰 적은 근거없는 억측과 날조된 유언비어 유포였다"고 한 모양이다. 누가 유언비어를 날조했다는 말인지 실체를 밝히면서 말해야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진실에 대해 가림막을 하고 270미터 밖에서 지켜보도록 한데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검사들의 스폰서 관련 추문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일 운운한 것은 참으로 대통령 답지 못한 소치이다. 그러니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와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 지는 것이다. 이 모든 논란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것을 공론의 장을 통해 충분할 만큼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토론은 생략되거나 형식적인 모양이 되고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한 채 홍보가 부족했음을 탓하기만 하는 형국이다. 새삼 말하지만 설득이나 홍보가 아니라 진실의 힘이 더욱 세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알기는 알까?

2010.04.29 11:03 ⓒ 2010 OhmyNews
#4대강 #세종시 #천암함 #홍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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