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섬돌 틈 꽃 한 송이

[인천 골목길마실 83] 골목에 피어나는 꽃송이

등록 2010.04.29 14:42수정 2010.04.2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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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인천 서구 가좌동과 석남동 골목을 돌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숭의3동을 거쳤습니다. 큰길로는 다니고 싶지 않아, 늘 샛골목을 요리조리 누비며 다니고 있습니다. 큰길로 자전거를 달리면 훨씬 빨리 다닐 수 있지만, 몇 분 더 빨리 달린다고 해서 제 삶이 한결 나아진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몇 분이라는 시간이 아깝다면 애써 손빨래를 할 까닭이 없고, 남들처럼 자가용을 안 몰 까닭이란 없습니다. 빨래기계뿐 아니라 냉장고를 안 쓸 까닭이 없을 테고, 아이를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넣지 않고 집에서 함께 살아가며 돌볼 까닭이 없겠지요.

일부러 느리게 꾸리는 삶은 아닙니다. 더 느린 삶이나 더 빠른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저한테 가장 알맞춤할 삶을 바랍니다. 때로는 빠르게 달리고 때로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며 때로는 뒷걸음을 합니다. 때에 따라 다르고 곳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며 자전거 페달을 참 느리게 밟으며 숭의3동 골목길 한 곳을 지날 무렵, 오른쪽으로 언뜻 스치는 보라빛을 느끼며 자전거를 멈추었습니다. "응, 뭘까?" 하고 뒤돌아봅니다. 아. 골목길 섬돌 한켠에 뿌리내리고 있던 풀섶에서 꽃이 피어나 있습니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천천히 다가섭니다. 매발톱꽃입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온통 매발톱꽃입니다.

참 용하고 대단하다고 느끼며 꽃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들여다봅니다. 골목에서 피어나며 골목을 밝히는 작은 꽃송이 하나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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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섬돌에서 뿌리를 내린 매발톱꽃.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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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 앞에 마련한 작은 꽃밭에서 한두 송이 피던 매발톱이 씨를 뿌려 이 틈 저 틈 섬돌 사이사이에서 꽃망울을 틔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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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는 이곳에서 꽃 핀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그냥저냥 그저 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올봄에 이 풀섶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는 이제까지 이 풀이름 하나 제대로 몰랐음을 깨닫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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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이 매발톱이 꽃을 피우나 하고 하나하나 따라 들어가니, 막다른 골목 안쪽 집 앞에 조그맣게 마련한 꽃밭이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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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올려세우면 매발톱이고 뭐고 조용히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리고 재개발 계획을 세운 사람이나 아파트 공사를 맡는 사람이나 이 동네에 매발톱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봄기운 듬뿍 나누었음을 헤아릴 사람은 없겠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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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 조그마한 꽃밭 옆에 난 구멍 틈바구니에도 매발톱이 고개를 내밉니다. 참으로 대단한 목숨을 선보이는 풀 한 포기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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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자리에도 매발톱은 피어납니다. 민들레가 골목길 빈 틈바구니에 소복하게 피어난 모습은 흔히 보았으나, 매발톱이 골목길 가득 구석구석 피어난 모습은 여태껏 처음 보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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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꽃이 함초롬히 피어난 매발톱을 밤새 몰래 파 간답니다. 그런데 이 골목길에서는 곳곳에 매발톱이 저절로 자라고 있어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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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 마실을 하며 곱게 자라고 피어난 꽃을 찍을 때마다 "거, 뭐 하세요?" 하는 소리를 늘 듣습니다. 왜냐하면 예쁘게 피운 꽃을 함부로 파 가는가 싶어 걱정스럽고 짜증스럽기 때문입니다. 꽃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모두들 굳었던 얼굴이 활짝 피면서 어느새 "그 꽃들이 참 예쁘지요? 여기에도 이런 꽃이 있어요." 하면서 제가 알아보지 못한 다른 꽃을 알려주시곤 합니다. 이 꽃들이 어여쁘다면 꽃씨를 받아서 심으면 될 텐데, 꽃씨를 받을 마음이나 느긋함은 없는 우리들 도시사람인가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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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람이 손을 대지 않을 때에 자연은 비로소 자연다움을 되찾으면서 아름다움을 베푸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돈을 들여 꽃잔치를 열거나 꽃길을 뚫는다 하여도, 자연이 스스로 일구는 꽃내음을 따를 수 없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꽃 #골목길 #인천골목길 #매발톱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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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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