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젠 찔레순 먹어도 키 안 클 텐데"

초안산 숲체험프로그램에 따라가다

등록 2010.04.30 11:40수정 2010.04.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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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까운 곳에 해발 115.4미터의 초안산이 있다.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는 야산이다. 완만한 구릉의 산이라서 특별한 차림이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동네 마실 가듯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또 조선시대 분묘군이 있어서 일부 구역은 사적지로도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내시들의 무덤과 몰락한 양반가 사람들이나 일반 빈한했던 사람들의 분묘다. 돌보는 후손들이 없다 보니 봉분도 세월에 깎이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만치 낮아졌다. 흙무덤이 되어 버린 봉분의 흔적 옆에서도 사람들은 거부감이 없다. 산의 일부가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 초등학교 교사인 지인이 '초안산 숲체험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누구든지 참여해도 되니 같이 가자고 한다. 그이는 반 아이들과 함께 간다고 했다. 이날 '숲체험프로그램'은 근처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올망졸망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몇 파트를 나누어 각각 인솔자 교사를 따랐다. 주로 초등생을 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왔다. 나도 혼자 가기가 멋쩍어서 마침 집에 있던 대학생 작은 아이를 구슬려 같이 갔다. 처음에는 초등생들의 뒤를 줄래줄래 쫓으려니 조금 머쓱했다. 하지만 나무들과 야생화들의 이름, 특성을 듣다보니 재미가 있어서 오히려 질문을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딸은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수첩에 적고...... 딸도 의외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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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초안산 숲체험프로그램 ⓒ 박금옥

아이들과 함께한 초안산 숲체험프로그램 ⓒ 박금옥

"산에는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또 지금은 동물들의 짝짓기 시기이기도 하니 큰소리를 내어 놀라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숲에서 눈에 띄게 빨갛고 예쁜 꽃들은 독이 있을 경우가 있으니 함부로 만지거나 먹으면 안 됩니다."

 

인솔교사는 풀을 뽑거나 꽃을 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생물의 성장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자연생태학습장 안에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것은 눈으로 구경만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여기 저기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찾아서 설명에 들어간다. 분묘군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양지바른 곳에 제비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퀴즈입니다. 제비꽃의 종류가 몇 개일까요?"

 

제비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딱 한 종류 밖에 모르고 있는데 50종류나 된단다.


봄에 미루나무, 사시나무, 버드나무, 수원은사시나무들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물을 잔뜩 머금게 되는 어린 나무줄기를 살살 비비면 나무 대궁과 껍질이 분리된다. 그러면 대궁을 쏙 빼고 입에 댈 곳을 살짝 칼로 다듬어 불면 피리가 되는 거다. 또 강아지풀과 보리잎 풀로는 풀피리도 불 수 있다. 잡초처럼 나와 있는 풀잎 하나씩을 뽑아 들고 양쪽 엄지손가락 사이에 끼고 팽팽히 해서 부니 소리가 난다. 잎의 크기가 다르니 소리도 다르다. 아이들도 실습을 해보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같이 하느라 잠깐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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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풀피리 불기 힘드네. ⓒ 박금옥

어휴! 풀피리 불기 힘드네. ⓒ 박금옥

갈퀴덩쿨은 줄기에 까실까실한 가시가 있어서 옷 같은 곳에 잘 붙는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세워 놓고는 옷에다 코디를 해준다. 선생님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식용의 산초나무는 여름 산속에서 응급처치 모기약이다. 잎을 으깨어 바르면 향 때문에 모기나 벌레들이 달라붙지 못한다고 한다.


인솔교사는 이런 여러 가지 체험에 대해 나무, 꽃, 풀의 생장에 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만 하고 있다는 것을 또 주지시킨다. 예전에 우리들은 산과 들을 벗 삼아 뛰놀았다.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고 제비꽃으로 씨름 놀이도 하고 놀다가 배고프면 꽃잎도 따먹었다. 찔레꽃의 새순을 껍질 벗겨 먹으며 놀았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놀아도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조건 '꺾지 마라', '따지 마라', '건들지 마라', '눈으로만 구경해라'..... 아이들이 갑자기 불쌍해 보였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자연에 와서도 온전히 자연과 어울려 지지 않는 조건들이 너무 많다.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것도 배워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예전을 생각하면 안타깝긴 하다.


며칠 전에 길거리 도로에 심겨져 있던 홑잎나무(화살나무)의 새순을 따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 나무의 새순을 먹는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왜 따시냐고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데 할머니는 경계심을 드러내셨다. 무분별한 체취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 일상화가 되다보니 그 분도 내가 비난하기 위해 묻는 줄 아셨나보다.

 

"홑잎나무 몰라? 새순은 따서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어, 위의 새순을 따도 금방 또 자라"라고 자연의 이치를 말씀 하신다. 그것까지 묻지 않았는데 미리 말막음을 하셨다. 예전에는 나물을 캐면 그대로 내식구들의 먹을거리였다. 요즘은 시장에 내놓아 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함부로 나물을 체취하지 말라고 늘 경계하는 뉴스들을 접한다. 그래도 봄이면 들판 여기저기에서 봉지든 여인네들의 구부린 등허리를 보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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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옷에 갈퀴덩쿨로 코디도 하고, 예쁘게 해줘라. ⓒ 박금옥

선생님 옷에 갈퀴덩쿨로 코디도 하고, 예쁘게 해줘라. ⓒ 박금옥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적송과 리기다 소나무, 잣나무의 차이점도 배우고 아까시나무(아카시아)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나무란다. 걷다 보니 곳곳에 찔레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지금도 찔레나무를 보면 입안에 찔레순의 향긋함이 살아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맛을 본다. 아직은 새순이 크게 자라지 않았다. 순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딸에게 먹으라고 줬더니 정말 먹는 것이냐고 믿지를 못한다. 엄마 어렸을 때는 많이 먹던 것이었다며 먼저 먹으니 마지못해 입으로 가져간다.

 

맛을 본 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살강살강 씹힐 때 나오는 물과 함께 입안에 번지는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풀향을 누군들 싫어할까 싶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고 과자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인솔교사가 찔레순은 성장 호르몬이 있어서 좋은 것이라고 말해준다. 딸이 "어쩌누! 울 엄마 이렇게 드셔도 이제는 키가 크지 않을 텐데"하며 키 작은 제 엄마를 놀려서 째려 주었다. 둘이서 한 줄기씩 잎에 넣고 같은 맛을 느끼며 걸으니 설명이 필요 없는 세대공감이 절로 된다.


죽은 나무 한그루가 또 한시대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은 나무는 곤충들이 번식하기 좋은 집이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가끔 곤충들의 번데기가 발견되면, 그것을 소주 안주 삼아 구워 먹었다고 한다. 단백질 공급이 절대 부족했던 시절의 얘기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웩, 우웩" 한다. "어, 이놈들 봐라. 너희들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번데기 먹잖아" 함께 듣던 어른들 모두는 "정말 그렇네"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그것과는 다르다면 도리질을 한다. 그렇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두어 시간을 놀이하듯 생태체험학습을 마쳤다. 지인은 반 아이들과 함께 쑥을 뜯어서 떡을 해 먹기로 했다면서 도와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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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큼 캤는가 보자. ⓒ 박금옥

얼마큼 캤는가 보자.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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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캐는 것이 아니라 쑥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구하는 모습 같다. ⓒ 박금옥

쑥을 캐는 것이 아니라 쑥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구하는 모습 같다. ⓒ 박금옥

산 밑이라서 쑥이 많이 자라지는 않았다. 남자아이들만 왔었는데 처음에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투덜댄다.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뜯으라고 하니 재밌어 한다. 쑥을 연구하듯 머리를 맞대고 열심이다. 한 십여 분을 뜯고(사실 아이들이 모두 할 수는 없다. 과정을 알게 하는 정도다. 나머지는 어른들 몫이다)가자고 하니, 처음과는 달리 싫단다. 자기반 아이들이 먹을 것이니 더 뜯어야 한단다. 나눔의 공동체 교육을 교실에서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삶속에서 저절로 익혀가는 것만큼 하랴 싶다. 아이들은 줄래줄래 쫓아다녔던 시간보다는 무언가 직접 했다는 것이 더 뿌듯했나 보다. 반 친구들에게 쏟아 놓을 무용담이 생겼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오히려 더 하자는 성화에 딸도 나도, 아이들의 담임도 다시 무릎을 구부리고 쑥을 뜯었다.


가끔 야생화 체험교실을 따라 다녀보지만 볼 때뿐이고 돌아서면 잊게 된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알게 된 풀이나 나무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래서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 중요하다. 병아리꽃, 씨름꽃, 제비꽃, 장수꽃, 냉이꽃, 꽃다지꽃, 종지나물(서양제비꽃) 꽃마리, 수원 은사시나무, 양지꽃, 산초나무, 찔레꽃, 개나리....... 새들과 나무 숲속 길, 그리고 이야기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마음에 담기고 무용담으로 남을 것은 뭐라 해도 딸과 함께 도란도란 거린 시간이었다. 딸도 그럴까?

2010.04.30 11:40 ⓒ 2010 OhmyNews
#초안산 #숲체험 #쑥캐기 #찔레순 #풀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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