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 개념이 부활하는 시대, 빨갱이의 삶을 읽다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담은 <나는 공산주의자다>

등록 2010.05.11 13:45수정 2010.05.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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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참사 이후 이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안보정국'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섬뜩하다. 얼마 전 한 보수신문은 사설에서 "북을 주적으로 재설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북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체계적으로 사회에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뿔 달린 도깨비, 으르렁거리는 이리떼의 모습을 북한에 씌우는 것. 아버지는 나에게 물어보신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렇게 옛날로 돌아가는 2010년에 <나는 공산주의자다>(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보리출판사)라는 책은, 그것도 만화로 나온 이 책은 시대착오적이라 보일 수도 있다. 36년간 수감되어 있었던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의 삶을 담은 이 책은 그 '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영철 선생은 이야기한다. 더 이상 그 어떤 전쟁도 안 된다고. 그래서 이 책은 현재적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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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출판사

<나는 공산주의다>는 허영철 선생의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를 박건웅 작가가 만화로 옮긴 책이다. 허영철 선생은 남파 간첩으로 검거되어서 지난 36년간 수감되어 있었던, 빨갱이 중에서도 골수 '빨갱이'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장기수인 넬슨 만델라가 감옥살이를 한 기간(27년)도 허영철 선생에 비하면 9년이나 짧다.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딱지는 정치적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인간화된 악마'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담담하게 말한다. 남파 간첩으로, 비전향 장기수로, 골수 빨갱이로 뒤덮인 무시무시함 아래에 있는 인간 허영철의 삶을 봐야 한다고. 비인간화된 '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허영철을 봐야 한다고. 그래서 이 책은 위인전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전선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이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적'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었던, 또 다른 '우리'의 역사를 말이다.

허영철 선생은 일제 시대 부안지역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작농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수탈이 심해지자 돈을 벌어오겠다며 만주로, 북해도로 떠났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계속되었고, 이에 맞서 맨 앞에서 항의해보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군홧발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맑스주의 서적들, 그중에서도 특히 <공산당 선언>이 젊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노동이 더러운 것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결국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것.

그러나 해방 후 돌아온 조국의 모습은 그가 그렸던 세상과는 달랐다.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고, 미군정의 정책은 또 다른 점령의 연장이었다.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인 활동에 참여하던 허영철은 남로당에 가입하게 되고, 이후 한국전쟁 시기 부안의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정전협정이 맺어지기 이전 북으로 넘어간 허영철은 이후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파간첩으로 뽑혀서 남한으로 다시 내려온다. 제대로 된 '간첩' 활동도 시작하기 전에 잡힌 그는 간첩미수로 구속되고, 서른여섯에 들어간 감옥 문을 결국 일흔두 살에나 나올 수 있었다.


'건국 신화'의 반대편에 가려진 역사

허영철 선생과 연배가 비슷하신 내 할머니는 해방 이후 이야기가 나오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신다. 그 시절 똑똑했던 사람들 다 죽거나 북으로 갔다고. 조금이라고 정부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 학살과 부역자 처벌 등으로 남한은 멸균실 수준으로 '정화'되었다. 아직 뜨거운 총구 앞에서 살려면 그저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위대한 '건국' 신화의 맨얼굴이다.

허영철 선생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교육받아온 '건국 신화'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불편함을 마냥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품고 이해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 역사에 대한 온전한 비판과 극복의 근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해방 직후 허영철과 같은 이들은 좌익 활동에 참여했는가? 무엇이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에게 사회비판적인 의식을 갖게 하였는가? 남파간첩이라는 죄명 속에 가려진, 인간 허영철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북에서 보낸 4년의 시간 이후 자신이 스스로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말한다.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개혁적인 정책을 집행해나갔다. 남한은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친일 관련 인적 청산을 북한은 바로 집행하고, 당시 민중이 가장 열망했던 토지개혁을 실시해나갔다. 젊은 허영철의 마음을 가져간 것은, 기나긴 고문과 투옥 속에서도 그의 신념을 지탱해준 것은 바로 이 경험이다. 억압받고, 착취를 당하던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

그도 인간인지라, 이후 북한의 독재와 타락을 인정하지는 못한다.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버티게 했던 그 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한 국가'로서 북한의 현실이 결결한 노인의 삶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가 여전히 품고 있는 이상은 통일, 그것도 평화통일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해 남한과 북한의 공조가 더욱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의 삶이 이러한 그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

주적 운운하며 과감한 응징, 합당한 보복을 외치는 이들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노근리 이야기>, 제주 4‧3항쟁을 담은 <홍이 이야기>를 그린 박건웅 작가의 그림으로 탄생한 이 '만화책'은 충분히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한 책이기에 높으신 양반들인 그들이 들고 다녀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 읽은 후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이 역사를 이해한다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래도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나는 공산주의자>라는 책이 이렇게 서점을 통해 팔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면 곧바로 연행된다. 공산주의보다 1인 시위가 더 무서운 정권이다. 신부님들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명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열었다. 허영철 선생은 출소 후에도 보호감찰관에게 늘 이 질문을 들어야 했다. "남한이 좋나요? 북한이 좋나요?"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체제 우위는 군사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통해서 드러난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1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보리, 2010


#허영철 #박건웅 #나는 공산주의자다 #보리출판사 #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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