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접속하면 누군가 당신을 노린다

[신간] 제프리 디버 <블루 노웨어>

등록 2010.05.17 11:08수정 2010.05.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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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노웨어> 겉표지 ⓒ 랜덤하우스

▲ <블루 노웨어> 겉표지 ⓒ 랜덤하우스

집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컴퓨터도, 직장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컴퓨터도 대부분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메일을 주고 받는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글과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온갖 쇼핑을 한다. 휴대폰 없는 세상만큼이나 인터넷 없는 세상도 상상하기 힘들다.

 

반면에 인터넷의 어두운 면도 있다. 웹 배후에 숨어 존재하는 진정한 해커들의 인터넷은 날것 그대로의 거친 곳이다. 거기서 해커들은 복잡한 명령어, 유틸리티, 경주용 자동차처럼 꾸밈없이 기능만 앙상하게 남은 통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세계 구석구석을 항해한다.

 

정부나 기업의 웹사이트를 해킹하고 고급 정보를 빼낸다. 인터넷으로 사기를 쳐서 한 밑천 잡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불법행동이 극단적이 되면 인터넷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해커가 타인의 개인 컴퓨터를 해킹해 들어가면, 글자그대로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다. 그의 주소와 휴대폰 번호는 물론이고, 그가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과 메신저로 나누었던 대화,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특정한 타인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갖고 있으면 그를 죽이는 데 그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킹으로 타인의 정보를 빼내는 해커

 

제프리 디버의 2001년 작품 <블루 노웨어>에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해커가 등장한다. 그의 닉네임은 '페이트'로 해커들의 바닥에서 '마법사'로 불릴 만큼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페이트가 자신의 실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페이트는 인터넷 세계에서 워낙 오랜 시간을 보낸 나머지 디지털 캐릭터와 실제 인간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반면에 하드 드라이브가 망가진다면 그건 대단한 비극이다.

 

페이트는 고난도의 게임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목표물을 정한다. 보안이 뛰어난 건물이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한 명을 죽이고 나면 더욱 접근하기 힘든 사람을 다음 대상으로 정한다.

 

페이트의 살인방법은 단 한 가지, 대상이 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직접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하루일정이나 생활습관 등을 철저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페이트는 상대방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범죄에 필요한 정보들을 자신의 컴퓨터로 옮긴다.

 

이런 범죄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역시 뛰어난 해킹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경찰 컴퓨터범죄수사반은 페이트를 잡기 위해서 교도소에 수감중인 와이어트 질레트를 가석방 시킨다. 20대 후반의 질레트는 연방 컴퓨터사기 및 남용죄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메인컴퓨터를 해킹해서 주요 프로그램의 원시코드를 훔쳐낸 적이 있다.

 

페이트와 마찬가지로 질레트는 해커들의 세상에서 마법사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이다. 이제 페이트와 질레트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타인의 컴퓨터를 해킹하며 사람을 죽이는 페이트를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까?

 

천재적인 두 명의 해커가 벌이는 대결

 

작품의 제목 '블루 노웨어'는 '사이버스페이스'를 대체하는 용어다. '기계세계'라고도 불리는 컴퓨터 세계를 의미한다. '블루(blue)'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노웨어(nowhere)는 그것이 실체가 없는 장소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블루 노웨어야말로 해커들의 천국이다. 그들은 자신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진 웹브라우저로 별과 별 사이까지도 여행하며 그곳을 방랑한다.

 

'해커'라는 말은 사실 칭찬이다. 혁신적인 프로그래머라는 의미다. 소프트웨어를 '해킹한다'는 말이 '프로그램을 만들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진짜 해커는 단지 자신이 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누군가의 기계에 침입한다. 호기심 문제인 것이다. 해커의 윤리에 따르면 보는 건 괜찮지만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컴퓨터를 누군가가 들여다 본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다. 해커가 자신의 컴퓨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삶 구석구석을 알아낼 수 있다면, 마음만 먹으면 재산을 훔치고 약점을 폭로하고, 심지어는 삶 자체를 파괴해버릴 수 있다면 누구든 긴장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나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살짝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블루 노웨어> 제프리 디버 지음 / 안재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10.05.17 11:0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블루 노웨어> 제프리 디버 지음 / 안재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블루 노웨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1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블루 노웨어 #제프리 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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