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는 골목고양이

[골목길 사진찍기 13] 골목집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등록 2010.05.29 13:51수정 2010.05.2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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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이루어진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골목사람입니다. 골목사람한테서 밥을 얻어 먹든 스스로 밥을 찾아 먹든, 골목동네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는 골목고양이입니다. 골목에서 나란히 지내기에 골목개입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골목새이고 골목참새이며 골목비둘기입니다.

 

골목마다 피어나는 꽃은 골목꽃입니다. 골목집 담벼락에 뿌리를 내린 꽃은 담꽃입니다. 때때로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넝쿨꽃이 있고, 전깃줄에 알알이 드리운 호박이나 수세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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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꽃. ⓒ 최종규

담꽃. ⓒ 최종규

 

골목꽃을 들여다볼 때마다 '난 이렇게 알뜰히 심어 가꾸지 못하는데'하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골목집마다 이른봄부터 한겨울까지 백 가지가 넘는 꽃과 푸성귀를 기르고 있는데, 아마 당신들은 몇 가지나 심어서 가꾸거나 기르는지를 헤아려 보지 않았을 테지요. 참말 고 작은 꽃그릇마다 번갈아 피고 지는 꽃 가짓수를 세면 대단히 많습니다. 게다가 씨앗을 알뜰히 받아 놓고 이웃끼리 주고받으니까 언뜻 스치는 눈길로 보기에는 "몇 가지 없잖아?" 할는지 모르나, 나날이 꾸준히 지켜보고 있으면 달마다 철마다 새로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물이 참으로 많습니다. 스스로 심어 가꾸는 풀과 꽃이 있고, 이곳저곳에서 씨앗이 흩날리며 뿌리내리는 풀과 꽃이 있습니다.

 

마당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 큰 집이 아니기에 마당 또한 조그맣습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집 조그마한 마당을 아기자기하게 돌봅니다. 왜냐하면 이 골목집들은 돈으로 사고파는 집이 아니라 당신들 손때와 다리품과 긴 나날이 사랑과 웃음과 눈물로 뒤섞이며 이루어진 집이기 때문입니다. 빈틈없이 다 만들어져 있거나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 집이 아니라, 당신들 스스로 하나씩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싶던 자리에 어느새 머위가 돋았고, 머위가 진다 싶더니 금낭화가 가득하며, 금낭화가 저문다 싶더니 바야흐로 꽃다지와 매발톱과 함박꽃이 흐드러집니다. 사이사이 둥글레가 작은 꽃을 피웠고, 둘레에 수수꽃다리가 가득했는데, 이제부터는 숱한 여름꽃이 뒤를 잇습니다. 복숭아 꽃잎과 살구 꽃잎이 떨어졌던 자리를 감자꽃과 고추꽃이 이어받으며, 이윽고 해바라기며 장미며 도라지며 알록달록 채울 테지요. 그러고 보니 이즈음 골목마다 붓꽃과 애기똥풀이 흐드러져 있습니다.

 

눈여겨보려는 사람한테는 하나하나 잘 보이고, 눈여겨볼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것 아닐 풀포기요 꽃송이입니다. 아마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수수한 이야기와 삶 또한 눈여겨보려 해야 보이고, 사랑하고자 해야 사랑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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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61. 인천 동구 화수1동. 2010.5.26.13:52 + F10, 1/80초

낮잠을 즐기고 있던 골목고양이가 부시시 일어나더니 자리를 옮깁니다. 저 혼자 골목을 조용히 지나쳤다면 그예 잠든 채 가만히 있거나 눈만 살짝 떴다가 감았을 테지만, 고양이를 본 아이가 "야옹! 야옹!" 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고양이 곁으로 다가서겠다며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몹시 졸리고 귀찮았을 골목고양이는 느릿느릿 다른 자리로 가다가 뒤를 슬쩍 한 번 돌아보더니 한동안 우리 식구를 구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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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62.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5.27.12:58 + F18, 1/80초

짐을 싣든 사람을 싣든 기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로서는 기차길 옆에 붓꽃을 심어 가꿀 까닭이 없습니다. 기차에 탄 사람은 어쩌다 한 번쯤 고개를 돌려 흘끗 바라보고는 그칩니다. 기차에 타지 않으며 동네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철길 둘레 빈터에 촘촘하게 텃밭을 일구거나 꽃을 심어 가꿉니다. 해가 잘 든다며 빨래를 널어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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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63.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26.13:43 + F10, 1/80초

골목동네에 도시가스가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에서는 도시가스가 아주 마땅하다고 여길 터이나 작고 작은 골목집이 맞닿은 동네에서는 아직 도시가스 없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어도 사람들은 오순도순 잘 살았고, 도시가스 없던 담벼락에 줄을 드리워 빨래를 널었습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온다고 더 잘 살지는 않는데, 어쨌든 이 도시가스가 이어진 줄마다 빨래 몇 점 드리워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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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64. 인천 동구 송림1동. 2010.5.28.16:32 + F8, 1/80초

담벼락에 씨가 닿았고 뿌리가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담꽃입니다. 마땅한 흙이 없을 뿐더러 흙기운을 만날 수 없는 담벼락인데, 이 담벼락에서 노란 꽃을 피우는 담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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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65. 인천 동구 송림3동. 2010.5.11.14:32 + F14, 1/80초

크다고 해서 좋은 집이 아니고, 작다고 해서 나쁜 집이 아닙니다. 볕 잘 들어 겨울엔 따스하고 여름엔 시원한 가운데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지내는 웃음꽃과 눈물꽃이 어우러질 때에 바야흐로 살 만한 보금자리입니다. 질그릇 하나 놓고 꽃그릇 하나 마련하면서 햇볕 드리우는 자리에 빨래줄 몇 걸치면서 곁에는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만한 마당 하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는 터전이 됩니다. 골목집이 태어나고 골목길이 이어지며 골목동네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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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지만, 바라보는 자리가 어디이든 내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사랑 싣는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지만, 바라보는 자리가 어디이든 내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사랑 싣는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9 13:51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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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골목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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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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