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아름다운 나라를 망가뜨렸나

[책읽기가 즐겁다 365] 뤽 폴리에,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등록 2010.06.03 11:57수정 2010.06.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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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 글 : 뤽 폴리에

 ├ 옮긴이 : 안수연

 └ 책값 : 9000원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요, 공산주의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돈이 없고서는 살아갈 길이 없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여기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소득이 꽤 높은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이 제법 높은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국민소득은 높을지라도 복지와 문화와 교육은 꽤 뒤처진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번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들여다보면 적잖은 후보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걸고 있었습니다. '무상급식'은 정치 후보자가 공약으로 내세울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이런 마땅히 나라가 할 일을 나라가 마땅히 안 하면서 정치 후보자들이 선거철마다 공약으로 되풀이해서 내놓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이면서 공업국이요, 토목국입니다. 공장이 온 나라에 넘치는 한편, 숱한 토목공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너무 우악스러운 이름이라 여겼는지 사라진 '경부운하'와 '경인운하' 토목공사는 저마다 '4대강 사업'과 '아라뱃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갈아타고 끝도 모르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농업국이 아닙니다. 농업을 북돋우지 않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환경을 살리는 유기농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아니, 유기농을 북돋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온통 도시에 바글바글 모여들어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유기농' 곡식으로 먹여살릴 수 없습니다. 흔한 말로 '남녘땅에서 쏟아지는 음식물쓰레기 부피'는 '북녘땅 사람들을 모두 먹여살리고 아주 많이 남을 만큼 되는 부피'라 할 만큼 남녘땅에서는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버리는 먹을거리가 많습니다.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훌륭한 유기농 곡식을 일군다 하더라도 버려지는 쓰레기가 잔뜩잔뜩 있으니 농사짓는 보람이 없을 뿐 아니라 참된 농사를 지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치꾼 공약으로 '무상급식'은 마땅히 이루어질 수 있으나, '친환경' 무상급식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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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에코리브르

겉그림. ⓒ 에코리브르

.. 19세기에 나우루는 여전히 야자나무로 뒤덮인 땅이었다 … 나우루인들은 대개 해변에서 하는 여러 가지 놀이와 즐겁게 낚시하기를 좋아했다. 저녁이 되면 나우루인들은 함께 음식을 먹고 불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  (26, 33쪽)

 

자본주의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쁘다면 어떤 '주의'를 섬기든 착하지 않고 참답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들이 나쁩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섬기든 사회주의를 섬기든 공산주의를 섬기든 민주주의를 섬기든 독재정권을 섬기든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갈 수 있으면 나쁠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우두머리란 사람이 백 살까지 살며 백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간다면 우두머리가 누구이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일본 배우 미야자와 리에라는 분이 한창 젊고 사랑받으며 일하던 어느 날, 일본 총리가 마련한 잔치에 초대되어 가 있던 자리에서 "난 일본 총리가 누구인지 몰라요"라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는데, 대통령 이름을 모르든 시장이나 구청장 이름을 모르든 군수나 면장을 이름을 모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뿌리내린 동네에서 아름다이 살아가고 있으면 넉넉합니다. 좋은 정치꾼이 있건 몹쓸 정치꾼이 있건 우리 동네를 우리 힘과 슬기로 알뜰살뜰 가꾸고 있으면 넉넉합니다. 신동엽 님 시 〈산문시〉에 나오듯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할 일이 너무 없어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꽂고 시인한테 찾아가 술 한잔 마시자고 굽신거릴 수 있도록 우리들은 '정치 생각'이 아닌 '삶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말썽거리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사람이 말썽거리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한들 이 제도를 다루는 사람이 말썽거리이니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엉망이 되며 교육이 흔들립니다. 아무리 몹쓸 제도로 짓눌려 있다 한들 이 제도에 허덕이거나 휩쓸리지 않으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사랑스레 살아가고 있으면 착하고 참된 훌륭한 일꾼이 태어납니다.

 

.. 인산염은 1907년에 채굴되기 시작했다 … 20세기 초 몇 해 동안 나우루는 노천 광산이나 다름없었고, 모두가 이익을 챙겼다. 영국인들은 채굴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인들은 여전히 섬을 지배하면서 채굴 이익에 대한 배당금을 받았다 … 인광석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농업 발전을 가져오지만, 전시에는 폭발물 제조에도 쓰였다. 태평양 지역은 2차 세계대전의 전략지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1948년, 나우루인들은 인산염 채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그 총수입에서 고작 2퍼센트만을 받았다 ..  (31, 36, 41쪽)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유럽(서구)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평화로운 태평양 섬나라 삶을 보여주는 작은 책입니다. 평화로이 살아가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식민지를 넓히려는 꿈'을 키운 유럽사람 때문에 평화에 금이 갑니다. 그 뒤로는 '돈을 얻으려는 꿈'을 키우던 또다른 유럽사람과 일본사람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평화에 얼룩이 집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동안 당신들을 해코지하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총칼과 술과 돈 때문에 스스로 평화를 허물고 맙니다.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이라는 책은 온누리 사람들이 나우루공화국에서 콩고물을 빼앗아 먹으면서 나우루공화국 몇 천 사람들을 엉망진창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란 얼마나 끔찍한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가여우며, 나눔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슬픈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나우루공화국 사람들은 흰둥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당신들 나라를 이룬 '인산염'을 캐면서 당신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렇게 당신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거머쥐었습니다. 고작 1만조차 안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에서 1억이 넘는 사람들 나라보다 커다란 돈을 움켜쥐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 한 번 놀리지 않으며 놀고먹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근심걱정 없이 '쓰고 버리는' 삶을 서른 해 동안 넘실넘실 펼치다가 폭삭 주저앉습니다. 돈으로 뜨고 돈으로 내려앉습니다.

 

.. 자기 땅에서 나는 인산염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들판에 양분을 제공하는 동안, 나우루는 부서지고 구멍이 난 자국 땅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 나우루 지도자들의 행태는 유명 스타들의 변덕과 비슷했으며, 장관들은 때로 자기네 금고와 국고를 혼동하기도 했다 …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없었는데, 어느 가족이건 정부에 한 발씩은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독립 이후 나우루가 이리저리 뒤얽힌 여러 건의 해외 투자와 결실을 맺지 못한 프로젝트 때문에 얼마나 손실을 입었는지 확인할 길은 거의 없다. 사실 돈은 결코 나우루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제대로 그런 손실을 계산해 본 적도 없었다. 일부 오스트레일리아 전문가들은 누적 손실액이 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섬에 사는 거주민이 7000명을 조금 넘는데 말이다 ..  (65, 69,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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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가득하던 선거는 끝났습니다. 자, 이제는 우리한테 '어떤 민주주의'가 찾아오도록 우리들 눈길과 손길을 모아야 할까요. ⓒ 최종규

골목마다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가득하던 선거는 끝났습니다. 자, 이제는 우리한테 '어떤 민주주의'가 찾아오도록 우리들 눈길과 손길을 모아야 할까요. ⓒ 최종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시장이 바뀝니다. 예전 시장님은 지난 여덟 해에 걸쳐 인천땅 모든 곳을 '재개발-재정비-도시정화'라는 이름을 붙여 갈아엎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갈아엎으며 2014년에는 아시안게임을 치른다 하고, 갯벌을 메운 땅에 151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있는 한편, 우리 나라에서 동대문운동장보다 역사가 깊던 가장 오래된 야구장(건물 나이는 동대문운동장이 더 많았으나 역사는 동대문운동장보다 깊던)을 손쉽게 허문 데다가, 앞으로는 더 큰 돈을 들여 아파트숲을 일구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시장이 되신 분이 유세를 하면서 우리한테 나누어 준 공약자료집을 들춥니다. 이분은 30조 원을 들여 참된 재개발을 하겠다고 밝힙니다(예전 시장님은 10조 원을 들여 당신이 밀어붙이던 재개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시장님은 예전 시장님이 내세운 '뉴타운'은 모두 엉터리라 하면서 당신은 '웰타운'을 세우겠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2024년에 인천에서 올림픽을 치르도록 하겠다고 붙입니다.

 

예전 시장님은 '문학월드컵축구장' 하나만 갖고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이끌어 냈습니다. 다른 모든 경기장은 새로 짓는다고 하면서 2014년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다고 밝혀 왔습니다. 다가오는 2014년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경기장이 다 만들어지면, 경기를 치른 뒤에는 이 경기장들이 쓰일 데 거의 없이 놀고 있을 테니까, 2024년에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노릇이겠지요. 그러면 2024년 올림픽을 내다보며 인천과 부산이 서로 다툼질을 해야 할까 궁금하군요.

 

.. 나우루에서는 당뇨가 위험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으며, 이 병의 근원은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돈이다. 인산염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었으며, 집에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고 차로만 움직이는 등 신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채 30년도 안 돼 나우루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 한 편 빌리면 그만인데, 굳이 다 같이 모여 전통 축제를 준비하는 데 누가 관심이나 있었겠어요?" ..  (143,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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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선거공보물에 담겼던 숱한 공약 가운데 '아름다운' 공약만 한두 가지 알뜰히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최종규

두툼한 선거공보물에 담겼던 숱한 공약 가운데 '아름다운' 공약만 한두 가지 알뜰히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최종규

 

운동경기장 하나를 짓는 데에는 수천 억원이 듭니다. 운동경기장 몇 개를 짓고 큰 세계경기대회를 치르면 일자리라든지 홍보관광이라든지 무어무어니 하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바로 자본주의 이야기입니다.

 

운동경기장 하나를 지을 돈이면 '무상급식'뿐 아니라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세계경기대회를 치를 운동장을 짓는 어마어마한 돈이라면 인천이라는 도시 하나뿐 아니라 나라를 통틀어 무상급식과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이루고 남습니다. 급식과 교육과 복지를 나라돈으로 아름다이 뒷배하는 동안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애써 돈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일을 이루고 좋은 꿈을 이루며 좋은 삶을 이룹니다.

 

우리 나라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반드시 돈으로만 모든 일을 꾸리려 한다든지, 더 커다란 돈을 쏟아부어 뭔가를 꾀한다든지 해야만 하지 않습니다. 돈에서 홀가분하면서 자본주의를 펼칠 수 있고,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돈이 없이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도록 할 수 있으며, 돈벌이 아닌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살찌울 수 있습니다.

 

.. 두바이는 겉으로 보기에 낙원이나 다름없다. 돈, 호화 관광, 그리고 거대한 규모 … 돈에 압도당한 나우루인들은 결코 자신들의 땅과 문화를 보존할 줄 몰랐다 ..  (172∼173쪽)

 

평화로운 섬나라 나우루는 대통령이 없던 지난날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사랑스러운 섬나라 나우루는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없던 지난날 더없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살기 좋은 섬나라 나우루는 공장이고 회사이고 학교이고 없던 지난날 그지없이 살기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섬나라 나우루는 돈이 없던 지난날 해맑게 아름다웠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며 국회의원이 있으며 공장과 회사와 학교가 수두룩하고 돈 또한 넘치도록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얼마나 평화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살기 좋거나 아름다운 나라일는지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

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2010


#책읽기 #환경책 #나우루 #지방선거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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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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