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창조와 탄생의 비밀을 잊었을까

[신간] 마크 레비 <낮>

등록 2010.06.08 09:22수정 2010.06.0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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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겉표지 ⓒ 열림원

▲ <낮> 겉표지 ⓒ 열림원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최초의 인간은 언제 생겨났을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의문들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우주는 약 150억년 전에 '빅뱅'이라 불리는 대폭발로 형성되었고, 최초의 인간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고 '루시'라고 이름 붙여진 300만년 전의 여자화석일 것이다.

 

호기심이 좀더 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빅뱅이 터지던 순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빅뱅 이전의 시공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루시 이전에 그러니까 300만년 이전에는 인간이 없었는지도 함께 궁금해진다.

 

마크 레비의 2009년 작품 <낮>에는 남성 천체물리학자 아드리안과 여성 인류학자 키이라가 등장한다. 이들은 바로 위의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아드리안은 칠레의 고원에서 망원안테나와 씨름하고 있고 키이라는 에티오피아의 오모 계곡에서 루시보다 오래된 인간의 화석을 찾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있다. 아드리안은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을까 상상하고, 키이라는 '최초의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고민한다.

 

비밀을 찾아가는 두 명의 학자

 

최초의 인간을 정의할 때 직립여부보다는 감정과 이성이 있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나무나 돌을 썼던 사람일까,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던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보다 우월한 어떤 힘의 존재를 믿고 겸손함을 깨달은 사람일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인류학이 아닌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도 포함될 것이다.

 

키이라도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에티오피아에서 최초의 인간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의 힘은 키이라의 편이 아니었나 보다. 에티오피아에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오고 그것은 키이라의 발굴현장을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키이라는 아프리카를 떠나서 프랑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파리의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언니와 재회하고 언니의 주선으로 은퇴한 노교수 이보리를 만난다. 이보리는 키이라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에 관심을 갖는다.

 

그 목걸이는 아프리카에 있을 때 한 원주민으로 부터 받은 것으로 검은 흑단처럼 생긴 조각이 달려있다. 이보리는 그 조각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조사와 실험을 해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방사성연대측정법을 적용시켜도 이 조각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가 불분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남미에 있던 아드리안도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영국으로 돌아온다. 아드리안과 키이라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한 프로젝트 심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연구방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함께 키이라의 목걸이에도 주목하게 된다.

 

이때부터 주위에서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누군가가 키이라의 언니 집에 몰래 들어와서 발칵 뒤집어 놓는가 하면, 키이라와 아드리안은 차량으로 위협적인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목걸이의 조각 때문이다. 모종의 세력이 그 조각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목걸이의 조각에는 어떤 힘이 담겨 있을까

 

어떤 지식은 인간을 위험하게 만든다. 불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작품 속의 한 등장인물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주 탄생의 첫 순간이, 한 인간의 삶의 첫 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태아는 자궁속에 있을 때 탄생과 창조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밖으로 나와서 첫 숨을 터뜨리는 순간 모든 것을 망각한다. 그 순간 메신저가 찾아와서 태아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망각과 침묵의 주문을 외운다. 입술과 코 사이의 움푹 파인 곳이 바로 그 손가락 자국이라는 것이다.

 

왜 창조의 비밀을 잊게 했을까. 그 비밀을 알고나면 인간이 신처럼 행동할까봐 그랬을 수도 있다. 탄생의 과정을 알고나면 삶을 더이상 존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창조가 간단한 것이라면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래서 우리 삶의 첫 순간이 영원히 지워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아드리안은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라는 질문도 함께 던진다. 작가 마크 레비는 <낮>에 이어지는 후속편으로 <밤>도 발표했다. 낮의 끝은 밤이고 밤의 끝은 새벽이니, 새벽의 시작에 대한 아드리안의 호기심도 <밤>에서 채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낮> 1, 2. 마크 레비 지음 / 강미란 옮김. 열림원 펴냄.

2010.06.08 09:2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낮> 1, 2. 마크 레비 지음 / 강미란 옮김. 열림원 펴냄.

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열림원, 2010


#마크 레비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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