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마다 다른 삶자락 이야기

[골목길 사진찍기 19] 골목집 대문을 바라보면

등록 2010.06.09 16:45수정 2010.06.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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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에는 똑같은 집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모든 집이 다르게 생겼고, 다 다르게 생긴 집에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꾸립니다.


아파트숲에는 똑같은 집만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모든 집이 똑같이 생겼고, 평수가 조금 다를 뿐, 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은 집에서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길이 없는 삶을 꾸립니다.

처음부터 무슨 계획을 세우며 지은 집으로 이루어진 골목동네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가면 사람이든 저마다 제 깜냥과 주제에 걸맞게 집을 지어 차근차근 이루어진 골목동네입니다. 적은 평수이든 넓은 평수이든 집임자 삶과 식구들에 따라 하나하나 가다듬고 추스르며 꾸리는 살림집이 모이며 이루어지는 골목동네입니다.

처음부터 무슨 계획을 세우며 지은 집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숲입니다. 아파트숲에는 이 아파트를 장만하든 전세나 월세로 빌리든 돈이 어느 만큼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들어올 수 없도록 짜 놓았습니다. 건설회사부터 돈에 따라 집을 짓고, 집임자가 되는 사람들 또한 돈에 따라 평수를 맞추어 집을 장만하여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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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대문인 집이란 한 군데도 없는 골목동네입니다. 같은 사자문고리라도 동네마다 집마다 자취와 자국이 다릅니다. ⓒ 최종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에 따라 집을 짓거나 얻으며 깃들어 살아가는 골목동네 골목집인 만큼, 골목동네 골목집 모양새는 저마다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모양새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삶무늬를 아로새기고, 저마다 다른 삶무늬에 따라 집살림뿐 아니라 대문 모양새마저 다릅니다.

다 다르다는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아파트숲이지만, 다 같은 집에서 실내장식만 조금 바꾸어 무언가 다르다고 하는 삶을 깊이 감추며 살아가는 매무새로 머물고, 다 똑같은 집 얼개에 다 똑같은 대문 모양과 크기로 지냅니다.


아파트에 깃들어 지낸다고 모두 똑같을 수는 없으나, 아파트 살림살이를 들여다볼 때에는 무엇이 다른지 알아낼 길이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까닭에 아파트숲에서는 '내 집을 내 나름대로' 꾸미고 살아가는 맛이나 멋이 있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는 꾀죄죄하다느니 낡았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쉰 해이든 예순 해이든 일흔 해이든 넉넉히 살아내는 골목집이지만, 아파트 가운데 쉰 해 넘게 버티는 집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니, 마흔 해를 넘긴 아파트라면 몹시 드물며, 서른 해를 웃도는 아파트조차 몇 군데 없습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동안 여느 살림집 손자국이라든지 손때라든지 손길이 깃들거나 머물 틈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자국이 남거나 손때가 서린다거나 손길이 깃든 골목집이 더 빼어나거나 훨씬 훌륭하거나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저, 골목동네 골목집에는 이 집에서 살아냈고 살아가는 사람들 손품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면서 오래오래 이어갈 뿐입니다.

나이가 들은 뒤에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골목동네 골목집이요, 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어버이인 나 스스로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남긴 자취를 헤아리며 내 아이한테 지난날을 곱새기도록 보여줄 수 있는 골목동네 골목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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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91.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3.31.14:17 + F5.6 + 1/50초
골목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나무문에 갖가지 판박이를 붙여놓았습니다. 아이들 짓궂은 놀음놀이라 여기며 벗길 수 있지만, 그냥 그대로 두면서 아이들이 크는 동안 저희가 해 놓은 옛날 자취를 돌아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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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92. 인천 중구 송학동3가. 2010.6.7.11:11 + F6.1, 1/80초
꽤 가멸찬 집 큼직하고 투박한 문고리가 나란히 있습니다. 가면 집일수록 문고리는 큼직하고, 가멸찬 집이 되면 문고리는 훨씬 큼직하며 무겁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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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93. 인천 남구 숭의2동. 2010.4.25.15:13 + F9, 1/80초
처음에는 좋은 뜻 담은 한자를 하나 박은 문고리를 애써 달던 골목집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문고리는 어느새 떨어집니다. 문고리가 떨어지더라도 대문은 그대로이고, 세월 흐름에 따라 누름단추가 문에 붙고, 인터폰까지 문에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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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94. 인천 동구 송림2동. 2010.5.2.16:00 + F9, 1/80초
처음 집을 지을 때에는 대문 두 짝 아귀가 잘 맞았겠지요. 스무 해 마흔 해 예순 해를 묵는 동안 문짝 한쪽 아귀가 틀릴 뿐 아니라, 문고리도 떨어지고 문고리를 받치는 손잡이마저 떨어지고 맙니다. 어쩌면 누군가 몰래 떼어 갔을 수 있습니다. 짓궂은 이웃집 동무가 뽑았을 수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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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95. 인천 중구 전동. 2010.6.8.14:42 + F8, 1/60초
쇠로 만든 대문은 틈틈이 방수페인트를 새로 발라 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나무문보다 튼튼하고 야무지다고 해서 달아 놓은 쇠문일 텐데, 나중에 페인트를 발라 놓고 보면 나무문만한 멋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골목집 담벼락을 따라 가득가득 피어난 담풀이 피어낸 자그마한 꽃송이가 잔치를 이루면서, 골목집 문이며 담이며 새로운 빛이 뿜어나도록 이끌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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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드물게, 아주 작은 사자머리 문고리를 달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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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꽃그릇을 벌이고 개 한 마리 키우는 집 문고리와 대문 느낌은 이 집 나름대로 새로우며 다르기까지 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골목길 #인천골목길 #사진찍기 #골목마실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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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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