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페튜니아·골목 직박구리·골목 금계국

[골목길 사진찍기 20]골목에서 만나는 새로운 숨결들

등록 2010.06.11 13:44수정 2010.06.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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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마실을 하면서 만나는 숱한 꽃과 나무와 목숨들한테 '골목 무엇'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무엇보다 맨 먼저 '골목 길'입니다. 그다음에 '골목 집'입니다. 골목 집에는 골목 사람이 살고, 골목 동네에서 뛰노는 골목아 이가 있으며, 골목 사람이 키우는 골목 꽃이 있습니다. ·

 

골목 꽃 곁에는 골목 나무가 있습니다. 골목 나무 둘레에는 골목 풀이 자랍니다. 골목 풀은 골목 담에 돋아나곤 하며, 골목 사이사이 깃든 골목 전봇대가 있습니다. 아직 나무 전봇대는 곳곳에 많이 살아 있습니다.

 

골목 동네에서 골목 집 이웃들이 나누어 주는 밥을 함께 먹는 골목 개와 골목 고양이가 있습니다. 인천처럼 골목 고양이가 사랑 많이 받는 곳도 드물지 않나 싶은데, 웬만한 골목 고양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골목 고양이이면서 살며시 안기는 녀석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드문드문 직박구리와 박새를 만나기에, 이들한테는 골목 직박구리와 골목 박새라는 이름을 붙여 봅니다. 늘 보는 참새와 비둘기와 갈매기한테는 골목 참새요 골목 비둘기요 골목 갈매기요 하고 불러 봅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이라 갈매기 또한 골목 갈매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어제 하루는 금계국과 페튜니아라고 하는 골목 꽃을 만났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지나쳤던 함박꽃은 이제 골목 함박꽃으로 제 마음에 아로새겼으며 김영랑 시인 글월에 나오는 '모란'은 '골목 모란'으로 머리에 새깁니다.

 

골목 문패, 골목 우체통, 골목 대문, 골목 창문, 골목 가게, 골목 교회, 골목 굴뚝, 골목 걸상, 골목 빨래, 골목 비, 골목 눈, 골목 자전거, 골목 밭···골목 동네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이웃과 목숨과 살림살이 하나하나를 포근히 껴안고 어루만지며 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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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국화 가운데 하나인 금계국 뒷모습을 금계국 눈높이에 맞추어 바라봅니다. 골목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곱고 살가이 마주하는 꽃들을 한두 송이든 여러 송이든 알뜰살뜰 돌보고 건사하며 아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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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 집 담벼락 한켠에 저 스스로 뿌리 내리며 자라나는 페튜니아를 봅니다. 어쩜 이런 작은 틈바구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운 다음 꽃까지 내놓을까요. 꽃이 피기까지 이 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담을 무너뜨릴까 걱정이라며 뽑아 버릴 수 있을 텐데, 이 담을 따라 살아가는 분들은 이 골목 꽃을 예쁘게 바라보며 살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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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여관골목 후미진 한켠이지만, 여관집마다 문간에 꽃 그릇이며 꽃밭이며 예쁘장하게 일구고 있습니다. 이 후미진 여관 골목은 동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살짝 들어와서 담배 한 개비 태우는 자리이곤 합니다. 아이와 마실을 하며 지나가다가 보면 남자 고등학생 서넛은 담배를 피우려다가 그냥 물러나고, 여자 고등학생 하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뻐끔담배를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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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 밭이 아닌 꽃 그릇에 감자를 심었군요. 감자를 이렇게도 심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런데 요 조그마한 꽃그릇에는 감자만 심지 않았습니다. 다른 푸성귀가 나란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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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 집 할매 할배가 일구는 자그마한 밭뙈기 한켠에 선 가느라단 쇠꼬챙이 위에 골목 직박구리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날갯짓을 쉽니다. 이 골목 집 할매 할배가 새 모이를 주기도 할까요. 아니면 골목 밭에서 자라나는 풀과 꽃들 씨앗을 파먹을까요. 아니면 골목밭 푸성귀를 갉아먹는 벌레를 잡아서 먹을까요. 직박구리는 골목동네에서 참새와 비둘기 못지않게 자주 만나는 골목 새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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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5월 16일. 오른쪽은 6월 10일. 하얗던 모란꽃이 어느새 지고 씨앗이 맺힙니다. ⓒ 최종규

왼쪽은 5월 16일. 오른쪽은 6월 10일. 하얗던 모란꽃이 어느새 지고 씨앗이 맺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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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에서 만난 함박꽃이기에 골목함박꽃. ⓒ 최종규

골목동네에서 만난 함박꽃이기에 골목함박꽃.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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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함박꽃은 동네마다 골골샅샅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졌어요. ⓒ 최종규

골목함박꽃은 동네마다 골골샅샅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졌어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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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을 볼 때면, 이제 막 거둔 감자를 맛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군침이 돕니다. ⓒ 최종규

감자꽃을 볼 때면, 이제 막 거둔 감자를 맛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군침이 돕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2010.06.11 13:4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골목꽃 #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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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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