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시장님, '노상방담' 약속 지켜보겠어요

[동행인터뷰 후기] 성남시민이 이재명 시장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

등록 2010.06.16 11:48수정 2010.06.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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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개하던 지난 5월의 어느 날, 벚꽃놀이나 하자며 분당 중앙공원을 산책하던 중 꽃놀이 나온 인파들 속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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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 당선자. ⓒ 권우성

"성남시장 후보 이재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선수'답지는 못했다. 다소 어정쩡해 보이는 표정과 몸짓으로 유권자를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못하는 그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한 건 오히려 나였다.

"이번에는 꼭 당선되세요. 찍어 드릴게요."

인사도 악수도 명함도 거절하는 냉담한 유권자들의 무리 속에서 문득 만난 지지자가 당황스러웠던지 그는 힘 있게 내 손을 잡았고 밝게 웃으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만개한 벚꽃을 즐기며 걷다보니 이번엔 한 여인이 허리를 숙여 깊게 인사를 한다. '어디서 본 아줌마인가?' 생각을 하려는 순간 그쪽에서 먼저 자신을 소개한다.

"저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안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만개한 벚꽃을 즐기기 위해 공원을 가득 매운 시민들이 내뿜는 열기만큼이나 각 당 후보자의 선거운동 열기도 뜨거웠다. 후보자로서는 한 곳에서 많은 유권자를 만나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꽃중년'으로 보이는 그가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선거에서 벌써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이재명 후보. 그가 출마했던 분당갑 선거구에 살면서 나는 두 번이나 그에게 표를 줬다. 이번 6·2 지방선거가 소위 말하는 삼세번인 셈이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세번의 기회를 그가 잡을 수 있을까. 솔직히 투표를 하고 와서도 뭔가 아쉬운 생각에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 선거 역시 경쟁 후보에 비해 학벌과 정치적 배경에서 훨씬 떨어지는 후보였던 이재명 변호사. 내가 그를 지지한 것은 학벌과 배경을 떠나, 안정지향 보수편향이라는 분당에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네 아줌마들 대부분은 이재명 후보를 그저 잘 생기고 친절하며 똑똑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로맨스그레이를 연상시키는 반백의 머리와 적당한 살집이 잡힌 몸매, 중년치고는 동안으로 보이게 하는 고운피부(?)까지…. 겉모습만 보아서는 파란만장했던 그의 과거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선 후 그에게 대해 궁금해 하는 주변사람들에게 그가 살아온 굴곡진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하! 그래서 시 청사를 판다는 말도 할 수 있었구나."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호화청사를 매각하겠다는 의지를 쉽게 연결시켜버리는 아줌마들의 논리(?)를 이해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만난 많은 성남시민들은 이재명 당선자가 당선 일성으로 낸 '시청사 매각'에 대해 적잖이 놀라면서도 내심 반가워하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화청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 역시 그리 편치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리한 호화청사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던 이번 지방선거. 그러다보니 청사매각이라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깜짝 선물(?)을 들고 나온 당선자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당선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재명 당선자 인터뷰라고? 우리도 가면 안 될까? 우리도 성남시민인데 같이 가자."

이재명 당선자가 후보자 시절 늘 말했던 것처럼 시민들은 어느새 '길에서 만난 이웃'처럼 그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지난 두 번의 낙선을 실패가 아닌 '밑거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싶다. 이미 그는 시민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가질 건 다 가진 부러운 남자, 이재명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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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 당선자 인터뷰가 14일 오후 경기도 성남 구 시청사에서 <오마이뉴스> 정치팀장 김영균 기자와 김혜원 시민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오마이TV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그는 우리가 말하는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왔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갈 나이에 이미 공장노동자였던 그. 어린시절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입고 장애판정까지 받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사법고시까지 패스해 변호사가 되었으니 한편으론 '독한'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살아온 굴곡진 지난날이 그의 삶에서 여유와 이해, 포용과 아량을 빼앗았다면 원칙 있고 담대한 지도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정을 펼치기는 어려울 터. 그에게 자녀 교육에 대해 물어 본 것도 내심 그런 면을 떠보고 싶었던 때문이다.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아빠들의 경우 자식에게도 자신의 삶과 같은 완벽함을 요구하기 쉽다. 스스로에 대한 야망이 큰 것처럼 자식 욕심도 그만큼 커서 자식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자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기에 더욱 궁금했다.

우려와는 달리 그는 오히려 너무 관심을 갖지 않아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편이란다.  고3, 고1인 두 아들이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알게 된 것 역시 최근 일이라고 한다. 자식들이 "아빠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니들은 어떻다"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살아 왔는데 선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펼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이재명 당선자. 그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듯 자식들 역시 자신의 의지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되 그것이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하며 다른 사람의 웃음 속에서 나도 기뻐하는 삶이 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공부만이 최선이라는 생각보다는 잘하는 것이 있다면 프로게이머든 댄서든 성직자든 반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아들 모두 공부를 잘 한단다.

내조에 열심인 아름다운 아내에 공부 잘하고 착한 두 아들까지. 가진 거라곤 빈약한 학벌에 초라한 배경(다른 정치인에 비해), 화려한 '언더변호사'의 싸움꾼스러운 전력이 전부 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질 건 다 가진 부러운 남자다. 소위 말하는 엄친남(잘나가는 엄마친구 남편)이었던 것이다.

지역민의 자랑으로 오래 남는 시장 되길 바란다

세 번째 선거에 나서며 아내와 깊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는 당선자. 그도 그럴 것이 결혼 후 쭉 전업주부로 살면서 집안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해왔던 아녀자가 진흙탕 같은 선거판에 뛰어 들어 겪었을 마음에 상처가 오죽했을까.

"변호사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유인물이나 들고 다니고 밤에 작전회의 하러가고 한방중에 경찰이 쳐들어 오는 가하면 구속이 되기도 하고. 남편이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 도와주러 다니기는 하지만 자존심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죠. 보는 앞에서 명함을 찢는 사람들, 빨갱이 년이라고 욕하는 사람들까지…. 아내가 힘들었어요. 아내에게는 언제나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정치인이든 정치인의 아내든 보통의 노력과 보통의 인내로 되는 것이 아닐 터. 지난 시간 쏟아 부은 노력과 인내가 없었던들 오늘의 그가 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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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 당선자. ⓒ 권우성

시장이라고 해서 보통사람에게 없는 특출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재명 당선자. 그는 시민들의 작은 민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공약에서 내세운 큰 사안도 사인이지만 무너지는 절개지나 주민편의를 생각한 구름다리 설치, 깨진 가로등의 신속한 보수와 어린이 놀이터 안전 점검, 훼손된 도로의 보수공사와 어린이성추행에 대한 예방책 등 사소하게 보이지만 주민 실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핵심을 주민의 참여와 존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또한 임기 중 자주 시간을 내어 공개된 장소에서 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듣겠다고도 했다. 길에서 시민들을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위 '노상방담'이다.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늘 같은 불만을 갖는다.

"두 손 꼭 잡고 뽑아 달라며 사정 할 땐 언제고 뽑아 놓으니 코빼기도 볼 수가 없네. 뽑아준 내가 미쳤던 거지. 다 그놈이 그놈이야."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지금까지 전혀 해본 적 없는 우리 시의 시장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그놈이 그놈이었다"라는 말이 아닌 "역시 그분이야"라는 말로 시장을 표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어느정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장으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될 이재명 당선자의 4년 후 모습은 오직 그만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늘 친근한 이웃처럼 여겨지는 멋진 시장. 퇴임 후에도 지역민의 자랑으로 오래 남을 수 있는 시장이 되는 것.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100만 성남시민의 바람일 것이다. 

이재명 당선자가 이런 지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시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재명 성남시장 #6.2지방선거 #성남시청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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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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