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간장을 태운 그, 공짜로 보기 아깝다

내 마음 속 문화유전자를 찾을 수 있는 안성 남사당 공연

등록 2010.06.25 15:20수정 2010.06.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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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가락과 흥을 현장에서 만나 본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먹고 입는 것들에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느끼게 되는 요즘이 아니던가.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이기에 누구보다 우리의 몸에 맞기 때문이다. 우리의 놀이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이서 보고 즐기다보면 우리의 유전자 속에 녹아있던 신명이 뿜어져 나와, 어느새 너나없이 흥겨움에 취하고 만다. 더구나 고마운 것은, 그런 흥겨운 놀이판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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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공연 안성 남사당 ⓒ 한선영


안성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남사당패의 신명나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어릿광대의 넉살과 풍물패의 시원한 가락이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판이다. 남사당패의 공연을 한껏 즐기다 보면, 답답하게 쌓여있던 일상의 앙금들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듯하다. 연희자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선보이면 어릿광대가 재담과 익살로 좌중의 마음을 풀어준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농사일의 고단함을 이렇게 한판 놀이로 풀어냈었겠지 싶다. 밀고 당기며 맺힌 것은 풀어주는 조상들의 지혜가 남사당 놀이에도 남아 있는가 보다.

남사당은 우리의 오랜 역사를 통해 민중 속에서 스스로 형성, 발전된 유랑연예인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자신들의 재주를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사당패들은 연희가 허락된 마을에서 길놀이를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마을의 큰 마당으로 와서 판놀이를 벌였다. 남사당패는 바우덕이 패(혹은 개다리패), 안성 복만이 패, 이원보 패 등 여러 패거리가 있었다. 가장 끝까지 남아 있던 것은 이원보 패이고, 바우덕이 패는 일명 바우덕이로 불리우던 김암덕(金岩德)이 이끌던 사당패로 유명하다.

재주가 뛰어났던 바우덕이는 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꼭두쇠가 되어 큰 무리의 사당패를 이끌었다. 그녀는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공사때에 노역자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공으로 공사는 무사히 마쳐졌고 그 공으로 바우덕이는 옥관자까지 하사받았다고 전해진다. 대개 마을에 남사당패가 찾아들면 '사당패가 왔다'고 하던 것을, 바우덕이 패가 유명해진 뒤로는 '바우덕이다', '바우덕이가 왔다'고 하며 구경꾼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바우덕이는 뛰어난 재주꾼이자 그 시대의 스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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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반벅구 안성 남사당 ⓒ 한선영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던 남사당놀이는 1940년 전후로 남사당패들이 대부분 흩어지면서 자칫하면 역사 속으로 묻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재, 안성 주민들에 의해 안성 남사당 놀이로 부흥되고 있는 중이다. 남사당놀이는 원래 여섯 가지 놀이로 이루어진다. 풍물,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인형극)가 그것이다.

안성 남사당의 바우덕이 풍물단에서는 매주 토요일 어름, 버나, 살판, 풍물을 공연하고 있으며, 덧뵈기와 덜미는 낮 공연이 있다. 저녁 공연에는 덧뵈기와 덜미를 제외한 나머지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다. 연희자들은 연희 내용에 따라 어름산이, 버나쇠, 살판쇠 등으로 불리우고, 어릿광대 역할을 하는 '매호씨'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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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산이 안성 남사당 공연 ⓒ 한선영


놀이마당에 들어서면 어름(줄타기) 공연을 위해 높이 매어져 있는 외줄이 우선 눈길을 끈다. 3M에 달하는 높이도 놀랍거니와 체육 시간에 평균대 위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허공에서 중심을 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게다가 평균대처럼 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줄 하나이니, 살얼음 위를 걷듯 살금살금 조심해서 걸어야 할 판이다. 과연 "어름"이라고 부를 만하다.

남사당 놀이는 연희자의 인상에 따라 놀이의 느낌도 많이 좌우되는데, 요즘의 주된 어름산이는 여고생 서주향 양이다. 그래서인지 어른 연희자의 묵직함과는 또다른 가볍고 가녀린 느낌이 많이 느껴진다. 가녀린 몸이 줄 위에서 온갖 재주를 선보이니 보는 마음이 오히려 더 아슬아슬하다. 매호씨로 나오는 이는 초등학생인 손상현 군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이답지 않은 노련한 입담에 객석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어름산이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보는 이의 마음을 잔뜩 졸여놓으면, 매호씨가 입담과 넉살로 좌중의 긴장된 마음을 걸죽하게 풀어준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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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판쇠의 앞벅구 안성 남사당 ⓒ 한선영


줄타기를 보며 덩달아 긴장되었던 근육은 뒤이어 들려오는 풍물 소리에 들썩이다 보면 절로 풀어진다. 길놀이를 하며 들어온 풍물잽이들은 무동놀이, 살판, 버나 등의 재주를 맘껏 펼쳐 놓는다. 4살 남짓한 어린 무동은 '새미'라고 하는데, 잽이의 어깨 위에 올라선 무동들이 '새미받기'를 할 때면 아찔한 생각에 눈이 질끈 감긴다.

이럴 때 등장하는 이가 살판쇠와 매호씨다. 매호씨가 짐짓 어설픈 살판으로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면 살판쇠는 멋들어지게 앞벅구, 뒤벅구를 돌며 탄성을 자아낸다. 광대는 제일이 인물치레라더니 살판쇠의 말끔한 얼굴과 매호씨의 익살맞은 얼굴도 그들의 땅재주처럼 대비가 되어 웃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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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판쇠와 매호씨 안성 남사당 ⓒ 한선영


다음은 버나돌리기이다. 이것은 앵두나무 막대기, 담뱃대 등을 이용하여 접시나 대접 등을 돌리는 것이다. 버나쇠들이 버나를 서로 높이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하늘에 비행접시 세 개가 떠 있는 듯하다. 이들의 공연에 빠져들고 있을 즈음, 다른 버나쇠가 대형 버나를 들고 들어와 재주를 선보인다.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큼직한 버나를 하늘 높이 띄우면 이번에는 비행접시가 아닌 아예 커다란 비행선이 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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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돌리기 안성 남사당 ⓒ 한선영


풍물은 풍물잽이들의 시원한 가락과 무동들의 깜찍한 손놀림, 그리고 '채상'이라 불리우는 열 두 발 상모의 현란한 움직임이 볼거리이다. 간간이 잽이들이 공중곡예를 하듯 자반뒤지기(뒤짐벅구)를 할라치면 절로 환호성이 나온다. 채상의 화려한 놀림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아릿하다.

한 마리 학이 머리 위를 선회하고 날아간 듯하고, 한 줄기 빛이 눈 앞을 스쳐간 듯하다. 풍물잽이들의 상모놀이에 눈을 빼앗기고, 무동놀이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어름산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애간장을 녹이고, 매호씨(어릿광대)의 넉살에 배꼽 잡다보면, 어느새 관객들은 풍물 장단에 으쓱거리며 남사당패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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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돌리기와 난장 안성 남사당 ⓒ 한선영


남사당패 공연의 대미는 역시 난장이다. 이제껏 수동적으로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던 관중들은 마당으로 들어와 같이 춤추며 흥을 즐긴다. 때로는 자신들이 눈여겨 보았던 잽이에게 몰려들어 인사를 건네고 사진찍기를 청한다.

그 옛날, 바우덕이가 그랬듯이 이 자리에서만큼은 바로 남사당패들이 관중들의 스타이다. 난장에서 관중들은 이미 스타가 되어 버린 잽이들을 가까이서 만나보고, 끝나가는 공연의 아쉬움을 달랜다. 무료 공연이라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남사당패의 풍물 장단에 함께 으쓱거리며 못다한 흥을 풀어낸다. 바쁜 일상에 묻혀, 혹은 현대 문명에 묻혀서 한참을 잊고 지냈던 내 몸의 문화유전자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왔던 이들조차, 돌아가는 길에 정말 대단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다음에 또 보고 싶다고 속마음을 먹게 되는 이유이다.

조상들이 그랬듯이, 남사당패들이 그랬듯이 맺힌 것은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일 일상에서 맺히고 쌓인 앙금이 있다면 흥겨운 한 판 놀이로 풀어주면 어떨까. 내가 느끼지 못하는 동안, 내 몸 속의 문화유전자는 이미 그걸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foxrain69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foxrain69
#문화유전자 #안성여행 #남사당 #바우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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