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 속의 탱고(36)

애처로운 공격

등록 2010.07.03 20:09수정 2010.07.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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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 ⓒ 일러스트 - 조을영

▲ 반복 . ⓒ 일러스트 - 조을영

36. 애처로운 공격
 
아가씨는 어깨에 가방을 매고 걸어가고 있었고, 뒤에서 수근대던 무리들 중 하나가 불쑥 앞으로 나오더니 대뜸 말했다.
 
"저기, 시간있어요?"
 
항상 열댓 명이 뭉쳐서 다니는 그 무리들엔 40대 아줌마와 실직한 30대 중반의 총각도 끼어있었고, 군에 다녀와서 다시 입시를 치루어서 부모가 바라는 대학에 가보려는 얼뜨기 스물 중반도 있었다.
 
'빨간 하이힐'은 지난 번처럼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들 이 당황스런 닭장 같은 학원에 처박혀서 자신이 헤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입시를 위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 헤매고 있었대요. 그 불안감은 나이든 사람끼리 꽁꽁 뭉치자로 일관하게 됐고요. 하지만 그들 역시 어찌해야 이 당황스런 상황에 대처할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누군가 강하게 이 흔들림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화면에선 스물 중반의 남자 하나가 친구를 한 쪽에 세워두고 아가씨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디서 얻어입은 듯한 유행 지난 낡은 바지와 다 늘어진 티셔츠, 시커먼 운동화에 실실거리는 표정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할일 없는 놈팽이라서 시간이나 죽치러 여기왔지'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듯이 보였다.
 
'빨간 하이힐'은 가볍게 한숨을 쉬곤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 애는 단번에 시간 없다고 거절했죠. 하지만 그 옆에 선 녀석이 며칠 전에 똑같은 수법으로 시간 있냐고 접근을 했던 터에 거절 당한게 부끄러웠는지 그 아가씨를 바로 쳐다보질 못하고 한쪽 구석에 뻘쭘히 서 있는 걸 보니 좀 안돼 보였대요. '이 애들도 어디 숨쉴 곳이 없어서 이곳으로 숨어 들어왔나 보다' 싶었다더군요.
 
하지만 세상은 날로 힘들어지고 취업문은 좁아지고 있는 이 판국을 타개하고자 공부한답시고 학원에 와서는 여자나 추근거리는 걸 보니 정말 큰일 날 인간들이다 싶더래요.그래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간없다고 짧게 대답했죠. 그러자  얼뜨기는 기가 폭 죽어서 울먹거리며 '시간이 없어요?' 하더래요.
 
그래서 맘이 안 된 이 애가 좀 측은해서 말투를 약간 부드럽게 하여 '자신은 너무 바쁘다. 그러니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알아듣게 말을 했다죠. 그러자 이 멍청한 자식이 어떻게 알아들었냐면 '지금은 바쁘니까 다음에 시간 내보자'이렇게 받아들인 거에요. 그리곤 옆에 선 친구 녀석에게 기세등등하게 웃어보이며 '이젠 됐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죠. 그리곤 어깨를 쫙 펴고 기세등등해 지더니, 급히 돌아서서 가는 그 애의 뒤통수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쳐요.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 좋다, 싫다를 말해 주셔야죠."
 
그러자 어이가 없어지고 황당해진 애가 이렇게 말하죠.
 
"아까 그 말이 싫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나서 며칠 뒤에 이 자식의 복수가 시작되는 거죠. 자습실에서 애를 향해서 종이비행기를 막 집어던지며 주의를 끌어보려고 하고, 그게 안되니까 지나가는 애를 발을 걸어서 넘어뜨리려고도 하고.
 
그 와중에 친구 놈이란 녀석은 슬그머니 옆에 와서 엄청 어려운 수학 문제를 좀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죠. 나중에 그 무리들이 말하길, 그건 그 애를 향한 일종의 테스트인 셈이었다고 해요. 보기엔 공부를 잘하는 것 같고, 게다가 그 무렵에 학원 급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확대 해석해서 그 놈들은 결심을 한 거죠.
 
'저 애하고 사귀면 대학 입학은 문제 없다'고요. 그래서 지들 무리에 끼워넣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애가 말려들지 않으니 나중엔 미워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이리저리 주변에 거짓말을 하죠. 도둑년이다. 바보다 하면서 그 애를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죠. 하지만 이 애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할일만 계속해요. 마음 속엔 열망 사냥꾼에게 물린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죠.
 
하지만 참 불쌍하고 안 된 일이 일어나죠.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니 아무도 없는 복도에 그 무리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막 째려봐요. 단체로 서서 그 애 하나를 째려보면서 기를 죽이려고요. 게다가 그 계단을 지나야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데 계단을 막어선 상태로요. 더구나 그때는 이미 4월이 중반이나 지나가서 한창 바쁘게 공부할 시기였는데도 그러고 있더란 거에요.
 
좀 우습지 않아요? 최소 스물 하나는 넘은 나이, 그리고 나이 서른 중반의 실직남,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실직녀, 심지어 40대의 주부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애들 틈에서 그 짓거리를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 애는 뭣보담 나이든 아줌마와 그 실직 남녀를 안쓰럽게 바라봤대요. 그들이 나이 먹어서 대학시험을 다시 쳐서 남보기에 번듯한 직업을 갖고자 공부하러 왔지만 바뀐 입시로 헤매느라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 여실히 눈에 보였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절대 혼자로 남기가 싫었던 거죠. 비록 철없는 망나니들일 망정 이 애들의 비위를 거스리지 말고 그 단체에 매달려 있고 싶었던 거죠.
 
우습죠? 그리고 인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도 같구요. 물론 그들도 집안에서는 '왕따', '이지매'라는 단어를 혐오하며 고고하게 규율에 맞게 살아가라고 자신의 가족들과 어린 동생들에게 강조하겠죠.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은 대범한 어른이 아니라 한 마리의 약한 짐승에 불과했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우선 이 공간에서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한 예감이었던 거죠.
 
화면에선 아가씨의 시선이 나이 든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표현하듯 카메라는 그들 하나하나를 비추었다. 하지만 철이 없었던지 그 두 여자는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모른 채 애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기 바빴다. 그 순간 실직남은 아가씨의 무언의 의미를 읽었는지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비실거리며 애들 틈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안 할래. 지나가게 비켜줘라' 이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을 이야기와 화면을 응시하던 중에 안내원이 끼어들었다.
 
"하여간 기본이 안된 인간들이 반드시 있는 법이지. 우리 사회가 기본만 잘됐어도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자 옆에 앉았던 멜레나가 슬그머니 안내원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꾸했다.
 
"물론 저기 나온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이 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본성이 바뀌어지는가를 이해할 수는 있겠지. 물론 저 자식들 기본이 안됐어. 겁쟁이 늙은 남녀도 똑같고... 나는 저것들 짓거리엔 반대해요. 그래서 말야, 내가 참 궁금했던 건데... 기본이란 건 어떻게 갖춰야 하는 거죠? 상황에 따라서 멋대로 변하는 게 인간인데 남 보기 좋자고 내가 손해 봐가면서 기본을 갖춰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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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 ⓒ 일러스트 - 조을영

▲ 해질 무렵 . ⓒ 일러스트 - 조을영

그러자 안내원은 내심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인상이 굳어졌다. 이에 황급히 '빨간 하이힐'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토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난 참이었어요. 그 날은 그 무리들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요. 공부도 안하는 것들이 그날은 단체로 자리를 비웠길래 뭔 일이 있나보다 하고 가벼이 여기고 그 애는 가방을 챙기고 계단을 내려왔어요."
 
그리고 우린 화면으로 이어지는 영상을 보았다. 
 
남들이 다 내려가고 가장 마지막으로 그 애가 강의실 문을 나섰을때 계단 아랫쪽에서 '온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분주하게 화다닥하는 소리가 울리며 그 녀석들이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
 
<계속>
#판타지소설 #중간문학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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