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떼와 사투를 벌인 한밤 자전거여행

[주말 자전거여행 23]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보는 야경

등록 2010.07.10 10:59수정 2010.07.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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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에서 내려다본 한강 야경. 바로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강변북로, 멀리 보이는 다리는 성수대교다. ⓒ 성낙선


일요일(4일) 저녁 식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식구들이 모두 놀란다. 주말 내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다 늦은 저녁에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도 금요일 밤도 아니고 토요일 밤도 아닌, 일요일 밤에. 식구들이 모두 밥을 먹다 말고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갑자기 뒤통수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나를 쳐다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금요일에는 비가 왔다. 무진장 쏟아졌다. 이번 주에는 애초 도심 야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부터 기회를 엿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날 저녁엔 자전거 손잡이도 잡아보지 못하고 종쳤다. 토요일 밤에는 주말을 맞은 몸이 그날이 쉬는 날인 줄 먼저 알고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온몸이 찌뿌듯했다. 소파에 가자미 꼴로 붙어서 집사람 눈치 보느라 정말 내 두 눈마저 가자미처럼 한 쪽으로 쏠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 일요일 저녁, 마침내 큰 뜻이라도 세운 것처럼 분연히 일어설 생각이었는데 그게 핀트가 잘못 맞았다. 그러니까 그게 적어도 오후 3, 4시경에는 집을 나섰어야 했던 거다. 그런데 저녁밥까지 다 챙겨 먹고 나서 남들 다 편히 쉴 시간에 느닷없이 한밤 자전거여행을 떠나겠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번 뱉은 말 다시 주워 삼킬 수도 없고 결연히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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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자전거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앞에 보이는 다리가 용비교. ⓒ 성낙선


한밤 자전거여행을 떠날 생각을 한 이유는 이렇다. 요 며칠 한낮 기온이 무던히도 높았다. 30℃를 훌쩍 뛰어넘은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여행 도중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다니 정말 힘드시겠다." 대답할 힘도 없는데 자꾸 물었다. 그럴 때마다 묻는 사람 성의를 봐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내 나름 웃으면서 말하려고 애썼다. "너무 덥다. 죽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 살벌했던지 아니면 내 얼굴이 진짜 죽을 것 같아 보였던지, 나 말고는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건 남들 보기에도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구나'하고. 한두 번은 호기심과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두세 번을 반복할 때는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에 자전거여행을 떠난 이유

내가 한밤 자전거여행을 계획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더위만 피할 수 있어도 자전거여행이 더없이 유쾌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밤에 자전거여행을 하기로 한 데는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래 전부터 서울의 밤 풍경이 보고 싶었다. 그 밤에 서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당연히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으로서, 한밤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또 어떤 풍경일까 궁금했다. 분명 색다른 멋과 즐거움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미리 털어놓자면, 그 짐작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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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어둠 속 남산 위에 빛을 두르고 서 있는 남산타워 ⓒ 성낙선


저녁을 먹고 나서 바로 집을 나선다. 오늘의 목적지는 응봉산이다. 응봉산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해발 81m의 낮은 산으로, 한밤에 한강과 남산을 바라다보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야경뿐만이 아니라, 봄에는 산 전체가 노란 개나리로 덮이는 장관을 연출해 매스컴에 봄 풍경 단골 명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응봉산은 한때 암석 채취장이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 한쪽 면에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에 가면 한밤에 절벽을 기어오르는 유별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집을 나선 때가 해가 떨어지기 한 시간 전이다. 더위는 한풀 가라앉은 상태다. 그런데도 후텁지근한 느낌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아마도 한낮에 아스팔트가 품고 있던 지열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쾌적하다. 이미 해가 기운 까닭에 굳이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아서 좋다.

땡볕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자외선차단제 때문에 피부가 번들거리지 않아서 좋다. 첫 느낌은 그런 대로 괜찮다. 비록 일요일 저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전거 타고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한낮에 부는 바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더 맑고 깨끗한 느낌이다. 이대로 주말을 마감했으면 꽤 아쉬웠을 것이다.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 소문난 서울의 야경

도로를 타고 청계천 고산자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 40분경. 이제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청계천 고산자교부터는 하류 쪽으로 잘 닦인 자전거도로다.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러 나온 시민들이 꼬리를 잇는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거나 족구를 하는 사람들의 몸동작이 꽤 활기차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이었다면, 그렇게 힘찬 경기를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청계천을 지나 응봉산 밑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8시 무렵. 해가 지기 바로 직전이다. 강가에 어스름이 깔린다. 응봉산에 오르기 전에 일단 용비교까지 달려 올라가 서둘러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서 멀리 어둠에 묻히는 응봉산을 카메라로 찍기 위해서다. 용비교 아래 강을 건너는 인도교가 있다. 인도교를 건너서는 지나간 봄에 개나리가 활짝 핀 응봉산을 올려다보던 자리에 선다. 고대로 어둠에 묻힌 검은 응봉산에 한 송이 하얀 꽃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팔각정에 초점을 맞춘다. 한낮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산뜻한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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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응봉산. 정상에 팔각정이 불을 밝히고 있다. ⓒ 성낙선


응봉산 오르는 길
응봉교 아래에서 나들목을 통과한다. 나들목을 나오면 왼쪽으로 응봉역(중앙선)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나들목을 나와 바로 직진해서 앞에 보이는 언덕 끝까지 올라간다. 도로를 달리지 말고, 도로 왼쪽 인도를 타고 올라가는 게 좋다. 언덕 위에서 좌회전한다. 그 다음 계속 직진. 암벽공원 표지판과 파리바게트 빵집 앞에서 다시 좌회전한 다음 계속 직진. 그 길 끝에서 우회전하면 팔각정까지 올라가는 비탈길이다. 비탈길에 꽤 가파른 구간이 있다.

응봉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시 다리를 건너 응봉교 쪽으로 되돌아 올라가야 한다. 응봉산 오르는 길에 언덕이 제법 가파르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오르는 데도 숨이 가쁘다. 다행히 산이 높지 않아 견딜 만하다. 산 정상에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역시 듣던 대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동부간선도로가 보이고, 좀 더 멀리로는 강변북로가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는 남산이 올려다보인다. 서울 시내가 마치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인다. 덩달아 내 눈도 반짝인다. 도시 구석구석에 빛나는 '장식'이 트리에 거는 알전구 따위에 비할 건 아니다.

산 정상에 부는 바람은 왜 또 그렇게 시원하던지, 에어컨이 따로 없다. 산을 오르느라 온몸 뜨겁게 상승한 열기가 산 정상에 올라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히 내려앉는다. 숨을 가라앉히고 흥겨운 마음으로 삼각대를 펼친다. 그런데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쉽지 않다. 노출은 물론이고,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물이 명료하지 않아 구도를 맞추기도 어렵다. 자연히 미간이 찌푸려진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정신을 집중해 보는 것도 드물다. 손가락이 조금만 흔들려도 사진의 윤곽이 흐려진다. 한 컷 한 컷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른다. 그때마다 카메라 액정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야경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이대로 이날의 여행을 마무리했다면 참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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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정상 팔각정. 사진을 찍는 사람들. ⓒ 성낙선


땀냄새 맡고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모기떼들

언제부터인지, 다리와 팔 여기저기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뭔가가 계속 얼굴 주위로 날아든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모기다. 모기들이 떼거리로 달라붙고 있다. 사진을 찍는 데 정신을 파느라, 그 사이 모기떼가 달라붙는 걸 알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매순간 사선에 올라선 사격 선수처럼 '과녁'에 집중해야 하는데 참 난감하다.

응봉산 정상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이다. 그리고 산책을 나온 주민도 꽤 된다. 그런데 유독 나한테 모기들이 달려드는 걸 보면, 내 몸에서 배어나오는 소금기가 모기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대책 없이 모기한테 물리는 일을 반복한다. 대충 찍고 내려가자니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없고, 욕심껏 찍고 내려가자니 모기떼가 너무 극성이다. 결국 내가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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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아래 소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 성낙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계천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한 육중한 체구의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노란 가로등 아래 벌러덩 누워 있는 거다. 어둠 속을 걸어다녀도 모기떼가 쉼 없이 달라붙는 판에 어떻게 저처럼 밝은 불빛 아래, 어떻게 저처럼 천연덕스럽게 누워 있을 수 있는가? 의아하다. 온몸에 쇠가죽이라도 걸친 것인가? 의문이다.

한밤, 청계천과 응봉산에는 한여름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하나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한밤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나중에 모기를 피해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위를 피해 떠나는 한밤 자전거여행, 모기를 피할 방법만 있다면 더없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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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야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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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오르는 길. 시계 방향으로 1) 응봉교. 다리 오른쪽으로 응봉역으로 나가는 나들목이 있다. 2) 나들목. 3) 나들목을 나와 언덕 위에서 좌회전 한 다음에 나타나는 암벽공원 입구(왼쪽으로 직진). 4) 주택가 끝에서 우회전. 계속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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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산책로. 밤 12시가 지난 시각. ⓒ 성낙선

마스크 : 여름에는 공기 중에 날벌레들이 꽤 많이 날아다닌다. 밤에 자전거를 탈 때는 이 날벌레들과 부딪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때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약국에서 파는 마스크로는 영 구색이 맞지 않는다. 좀 멋을 부리고 싶다면 스포츠용 마스크라고 할 수 있는 '버프'를 사용하는 게 좋다.

고글 : 역시 날벌레 침투 방지용이다. 때로는 이 날벌레들이 눈 안에까지 침투한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조금 낫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집에 돌아가 눈꼬리에서 처참한 시신으로 남아 있는 날벌레를 보고 싶지 않으면 스포츠용 고글을 써야 한다. 물론 렌즈에 색이 너무 진하게 들어간 것은 피한다.

전조등 : 자전거 핸들에 부착할 수 있는 형태의 전조등을 자전거판매점에서 구입한다. 전조등은 앞에서 마주 달려오는 자전거나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려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앞에 널려 있는 장애물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조등 각도를 조정하는 데 특히 주의해야 한다. 각도를 너무 높이 올리면, 앞서 달려오는 사람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 자전거도로에서 이 문제 때문에 가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험한 꼴 보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후미등 : 후미등은 물론, 뒤따라오는 자동차나 자전거에게 내 존재와 위치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모기퇴치용OO :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향기를 뿜어 모기가 달라붙는 걸 방지하는 손목 밴드 같은 것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실 모기떼의 습격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는 긴팔 소매옷이나 긴바지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응봉산 #자전거여행 #서울 야경 #팔각정 #고산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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