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위해 법과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나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레드먼 / 조효제 역

등록 2010.07.08 18:06수정 2010.07.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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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서평 코너를 통해, '인권을 옹호하자'는 선언을 넘어서는 어떤 정교하고 체계적인 인권이론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인권에 대한 고급 이론서인 <인권의 대전환>은 우리 인권목록에 아주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의 저자 프레드먼은 철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의 여러 이론적 성과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이를 다양한 인권사례들을 통해 실증하면서, 종합적인 인권이론체계를 정초해낸다.

 

일종의 인권거대이론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논리로 잘 정돈되어 있고, 자칫 현학적일 수 있는 이론들이 구체적인 사례들과 잘 결합되어 있는 데다가, 번역서라는 사실을 자주 잊게 만들어주는 정확하면서도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 술술 넘어간다. 책을 읽다 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종합적 인권이론서"가 될 것이라는 역자의 상찬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 

 

크게 보면 이 책은 두 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인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법(사법부)의 역할'이다. 먼저, 저자는 1장과 2장에서 여러 인권 관련 이론들을 활용하여, 국가가 인권보장을 위한 적극적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국가의 의무는 인권침해금지라는 소극적 의무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인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 책의 상세한 논증은 조만간 관련 논의에서 중요한 이론적 준거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또 다른 논제는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부의 역할이다. 저자는 인권이 잘 보장되어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다수파기관인 입법/ 행정부와는 다른 사법부 고유의 조직적 위상과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는 사법절차가 경제·사회적 권력 유무와 무관하게 당사자가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심의를 위한 포럼"이고,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수결의 논리가 지배하는 '의회'에 비해 당사자들이 독립된 법관 앞에서 1대1로 대결을 벌이는 '법원'이 더욱 민주적인 공간일 수 있다고 전제하는 듯하다. 하지만 경직되고 형식적인 소송절차, 상호적대적 당사자주의, 폐쇄적인 법논리 등에 의해서 진행되는 사법절차가 과연 민주적 심의의 무대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법체계는 그 어느 체계보다 자기완결성이 강하다. 그래서 법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사회적 요소들의 총결집체인 '인권'이념의 다채로운 면모들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며, 실제로 많은 소송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본래 주장이 법논리에 의해서 함부로 재단되고 (법)형식화된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법 또는 사법부가 인권에 순기능할 거라고 막연히 전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권과 법의 관계는 쉽게 이론화하기 어려운 논점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법과 인권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접속했다. 법은 권위주의 정권의 시절에는 지배체제의 도구로 활용되었지만, 그 시절 이른바 '인권'변호사들은 법이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며 사법부에 인권보장을 호소하는 법정 투쟁을 실천했다. 또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실현되고 합법공간이 확보된 이후 시민운동에서는 공익소송이나 입법운동 등의 방법을 통해 법을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더욱 활발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이명박 정부는 '법질서 확립'을 기치로 내걸면서 인권을 후퇴시켰고, 이 과정에서 법(소송)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실제로 불법시위, 불법파업, 정책비판 등에 대해, 정부가 손해배상소송이나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일이 급속도로 늘었다. '사법부'를 통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무력화시키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축시키겠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그 어느 집단보다 '보수적'이었던 사법부가 이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인권과 법의 관계는 불과 10여년의 세월 동안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다.

 

물론 법이 인권의 실현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자명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근대시민혁명의 목표와 인권선언의 핵심이 바로 '법'을 통한 인권의 보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법을 적극적으로 인권운동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가다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법을 만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비사법적 메커니즘도 인권보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국가·사법부·국가인권위원회·시민사회가 인권보장을 위해 '상승작용'(synergy)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례들을 활용되어 나름의 인권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은 법, 국가, 인권을 둘러싼 우리의 논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논의를 우리 시민사회와 국가의 역사적 상황과 연계시켜 토론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 서평은 [시민과 세계] 2010년 상반기호에 실린 서평을 수정/요약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홍성수씨는 현재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7.08 18:0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홍성수씨는 현재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대전환 - 인권 공화국을 위한 법과 국가의 역할

샌드라 프레드먼 지음, 조효제 옮김,
교양인, 2009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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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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