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가 중국단오를 훔쳤다고?

[세계유산 즐겨찾기 ⑥ 강릉단오제] 강릉단오제위원회 최종설 위원장 인터뷰

등록 2010.07.10 15:55수정 2010.10.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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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자 중국이 발칵 뒤집혔어요. 1억명 이상의 젊은 네티즌들을 비롯해 중국 여론이 '강릉단오가 중국단오를 훔쳐갔다', '왜 남의 문화를 유네스코에 등재시켰는가' 등등 거세게 몰아붙이며 문제를 제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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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설 위원장 최 위원장은 강릉의 어른으로서 단오제의 세계화에 대한 열망과 고민을 함께 털어놨다. ⓒ 최육상


강릉단오제위원회 최종설(73) 위원장은 지난 2005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2008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변경)'에 지정된 '강릉단오제'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강릉의 단오는 <고려사>에 기록된 태조 왕건과 명주(강릉)지역 호족 왕순식의 일화를 통해 1천년 이상 이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그에 비해 중국의 단오는 초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비통해 하며 자살한 것을 기린 데서 비롯돼 2천년이 넘는 것으로 본다. 중국이 '단오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은 단오 관련 행사를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는데, 정식명칭은 '용선 축제(The Dragon Boat festival)'이다. 굴원이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해 자살한 날이 음력 5월 5일로, 용선 축제는 우리의 강릉단오제와 마찬가지로 단옷날을 전후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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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 농악' 지난 3월말 '전주세계무형유산축제'에서 중국의 세계유산으로 소개됐던 '조선족 농악' 사진. ⓒ 최육상


한편, 중국은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농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도 지난해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중국이 강릉단오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본다면 '조선족의 농무'는 명백히 우리 것을 빼앗은 것이 된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문화는 문화로서 이해해야지,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성격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저희들 생각이다"고 전제했다.

최 위원장은 중국이 단오의 문화원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오가 중국에서 건너왔을지라도 단오라는 글자만 같은 것이지 내용은 분명히 다르다"면서 "이는 중국의 학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로서,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일 뿐이다"고 잘라 말했다.


최종설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단오제가 한창이던 지난달 17일 오후 2시 무렵 강릉단오문화관 내에 위치한 위원장실에서 약 3시간 동안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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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사천면 하평리에서 전해오는 '사천하평답교놀이' 모습.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최육상


"단오를 아시아 대표 문화로 만들 생각이다."

최 위원장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무보수 명예직인 단오제위원장 역할을 맡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강릉의 어른으로서 '단오제'를 국내외에 더욱 널리 알려내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런 대의명분 하에 그는 문제를 제기했던 중국의 단오까지도 포함해 단오문화를 세계화하려는 생산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단오를 아시아 대표 문화로 만들 생각입니다. 단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등 광역문화권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아시아단오축제와 단오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연 것도 그런 목적 때문이었죠. 앞으로 중국에서 한 번, 일본에서 한 번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아시아단오축제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급격한 근대화는 전통문화를 낡은 것, 버릴 것으로 치부했다. 그에 따라 수많은 전통들이 사라져갔고 전국에서 열리던 단오 행사 역시 많은 지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강릉단오제는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오며 고증을 통해 원형 복원이 가능할 만큼 면면히 이어져왔다. 강릉단오제위원회 측에 따르면, 강릉의 어르신들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중에도 단오제를 이어왔다고 고증했다. 무녀들도 중앙시장이나 남대천변, 성남동 한구석에서 소규모로나마 빼놓지 않고 단오제를 치렀다고 증언했다.

최 위원장은 강릉단오제가 명맥을 이어 온 이유를 강릉의 지형적 특수성에서 찾았다.

"강릉은 소통이 안 되는 지역이에요. 1910년에야 일제에 의해 대관령에 신작로가 생겼죠. 춘천으로 가려면 속초로 해서 진부령을 넘어가야 했고요. 지정학적 위치가 신라문화권으로 내륙과는 소통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끼리 모여 단오제를 치를 수 있었던 겁니다. 예국의 수도였던 명주군(현재 강릉시로 통합)에서 내려오던 무천(舞天)의식이 단오제와 접촉됐을 것으로 추정하고요."

"돈으로 행사를 치르려면 100억 이상이 있어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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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려시대 건축물의 모습이 남아 있는 국보 제51호 '객사문'. '객사'는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가 묵었던 숙소로서 안쪽에는 '임영관'이 있다. 객사문 뒤쪽으로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통신장비가 눈에 띈다. 전통과 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 최육상


전통문화와 현대문명은 이래저래 충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성공한 전통축제로서 명성을 떨치고는 있지만 강릉단오제 역시 이 문제를 영원히 비켜갈 수는 없을 터. 최 위원장과 함께 자리했던 김동찬 상임이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인간문화재가 바탕이 된 무형문화유산은 사라질 겁니다. 문화는 생물이에요. 전통문화가 현대문화와 접촉면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해요. 강릉단오제가 살아남은 기술은 시민들이 제각각 역할을 맡기 때문이에요. 씨름의 경우, 젊은이들 모임에서 43년째 주최했어요. 2002년 월드컵에 엄청난 국민들이 참여했듯,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면 그 문화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강릉단오제 기간에는 수많은 의식과 행사들이 남대천을 비롯한 강릉시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펼쳐진다. 굿을 비롯한 각종 제례, 농악, 씨름, 그네, 투호, 줄다리기, 윷놀이, 팔씨름, 창포 머리감기, 신주빚기, 수리취떡 만들기, 한시백일장, 시조경창, 청소년가요제 등등 모든 의식과 행사들은 강릉의 시민과 단체들이 주최하거나 주관한다. 주점 등 330여 개에 달하는 난장들을 꾸려가는 것도 대부분 강릉시민의 몫이다.

이렇게 수많은 행사들을 진행하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는 것일까. 김 상임이사는 "돈으로 행사를 치르려면 100억 이상이 있어도 안 된다"며 강릉단오제만이 가지고 있는 비용체계를 설명했다.

"텐트, 무대 등 시설비가 3~4억, 공연단 초청 등 공연에 8억… 전체적으로 약 10억에서 15억 정도 들어요. 정부지원금과 난장 분양비 등이 있지만 대부분은 시민들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씨름을 예로 들면, 전체 예산이 약 3천만원인데 위원회가 8백만원 정도 지원해주면 주최단체에서 2천만원 가량을 내 놓습니다. 각 단체별로 단오제 행사를 스스로 작동시키는 거죠. 시민들이 돈 내고, 행사 주최하고, 봉사하고…. 100만에서 150만명의 관광객이 오는데 돈으로 행사를 치를 순 없죠. 돈 떨어지면 행사 안 되고… 그러면 생명력도 끝인 거죠."

유네스코 "이 지구상에 아주 원시적인 형태로 이어 온 축제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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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가 열리는 동안 강릉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단오제 장소인 남대천을 벗어난 곳임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 최육상


강릉단오제는 민관(民官)이 함께 추진하는 지역축제이지만, '관'이 깊숙이 개입하거나 주도하지 않는다. 단오제위원회 역시 '민'이 주최하고 주관하는 각종 행사들을 조율하며 해외 공연단을 초청하는 등의 일을 맡을 뿐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이는 다른 지역의 축제들과 분명히 비교되는 점이다.

"단오제에는 특별히 정해진 개막식과 폐회식이 없어요. 신을 모셔오면 시작하고 신을 보내면 끝나는 거죠. 그래서 시장, 국회의원, 기관장 등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몰라요. 하하. 단오장 주변의 교통을 일주일간 통제하는데 어느 누구 하나 항의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어요. 강릉시민이 단오제 건드리면 큰 일 납니다. 하하."

최 위원장의 말마따나, 단오제가 열리는 동안 강릉은 모든 시민과 단체들이 단오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부터 객지 사람들을 반갑게 단오장으로 안내한다. 단오장 곳곳의 즐거움은 말 할 것도 없다.

"유네스코에서 심사하러 온 외국 사람들이 단오제를 둘러 본 뒤, '지구상에 아주 원시적인 형태로 이렇게 이어 온 축제는 처음 본다'고 감탄했어요. 유네스코가 세계에 알린 단오제의 성공사례가 있는데 '청소년들의 참여가 압권'이라는 겁니다. 단오제 기간 중 하루는 초등학교가 휴교하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 손잡고 단오를 구경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어요. 강릉에서는 '단오 구경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 됩니다. 하하하."

"관노가면극, 무녀, 악사... 각종 기능들의 전승에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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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관령휴게소 뒤편으로 1km정도 들어간 산자락에 위치한 '대관령국사성황사(왼쪽)'와 '산신당(오른쪽)'. 이곳에는 각각 '범일국사'와 '김유신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강릉단오제는 이곳에서 제례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 최육상


강릉시민들은 성황신(범일국사)을 모시고 각종 굿을 하며 제례를 올리는 단오제가 불교, 무교(巫敎), 유교 등이 뒤섞여 있어도 이것을 종교의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고 주민들 건강을 빌며 신을 즐겁게 하는 의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강릉단오제의 오랜 생명력은 바로 이런 열린 시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릉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최 위원장은 강릉 지역의 '학산 오독떼기' 보존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12년간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시의장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5년 전 단오제위원회가 강릉문화원에서 나와 사단법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원장직을 맡았다.

최 위원장은 '진짜 전통문화를 했던 사람이 위원장을 맡았다'는 항간의 기대 속에 성공한 축제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임기 마지막 해, 그는 깊은 시름을 꺼내놓으며 말을 맺었다.

"관노가면극, 무녀, 악사… 각종 기능들의 전승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합니까? 옛날로 말하면 '천민 중에 천민'이 무당과 백정인데…. 농악이나 학산 오독떼기 등도 전승자가 없어요. 젊은이들이 단오제 때 공연하려면 한 달간 준비해야 하는데 누가 나와요? 위원회 직원도 대부분 석․박사 출신들인데 고급인력을 헐값에 부려먹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요.

전통문화 학자들은 한결같게 '전통문화에 일대 위기가 왔다'고 말해요. 맞는 말이지만 고실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인력기근을 탈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경비를 지원하는 등 자금지원과 여러 제도를 마련한다면, 지역에서 전통문화를 지킬 수 있는 젊은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강릉단오제 #단오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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