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제 결과 통보의 의미

서로 신뢰 형성하는 것이 우선

등록 2010.07.27 19:09수정 2010.07.2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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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도 없이 진행된 교원평가제는 본교에서는 교과부의 지시에 따라 순조롭게 시행되었습니다.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는 일도 했습니다. 저 역시 중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저는 평가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야 우리 학교처럼 수업공개의 날을 미리 정해 알려주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고 그래서 잘 모른 상태에서 아이 말만 믿고 평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별로 만족도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 교과에 대한 학부모만족도 결과는 매우 우수에 51.32%, 우수에 26.22%가 나왔더군요. 그리고 자유반응식 설문에 기록된 것은 '스스로 참여하는 수업에 만족해 함'이라는 단 한 문장뿐이었습니다. 아이의 의견을 참고하여 평가하신 것을 알 수 있었죠. 학부모들의 평가 결과야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만족도 결과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교장실에서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만족도 평가결과를 보여주면서 평가문항별로 등위를 매겨서 전체 교사중의 등위를 알려주시더군요.

( 만족도조사지 A=매우 그렇다, B=그렇다, C=보통이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A(매우 그렇다)의 등위가 낮다는 식으로 그것만 언급하시면서 학생들을 불러서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라고 하시더군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학생들은 고객이니 만족도를 더 높이라는 것일까요. 저는 기분이 몹시 상한 채로 그냥 나왔다가 다시 찾아가서 A(매우 그렇다)의 등위만 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보통이상을 긍정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적어도 A+B의 합에 대한 등위를 갖고 말씀하셔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를 했습니다.(교사를 서열화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학생들의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평가의 척도나 기준도 모호한 상황에서 전체 평균이 만약 90에 걸쳐 있다면 무작정 묶어서 그걸 서열화해서 어쩌자는 것일까요. 저의 경우 각 문항의 A+B의 합을 계산해봤더니 평균 80은 다 넘어 있더군요. 그런데 이 점수로는 학생들을 만족 못시키는 교사인 것처럼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저는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나중에 자료를 받은 수학선생님 것을 봤더니 A의 등위가 저보다 더 낮게 나왔더군요.

 

이렇게 교사들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해서 교사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마치 약점이라도 잡은 듯이 말하는 것이 교과부가 말하는 교원평가의 헛구호처럼 교원능력이 개발되고 전문성이 신장되며 학교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것일까요. 교원평가는 교원의 승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교원근무평정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교사들의 능력개발에 도움을 주기 위한다는 취지에서 시행한다는 제도입니다.

 

다음은 교과부의 학부모용 홍보 리플렛에 있는 내용입니다.

 

결과
처리․활용
▸교원 : 평가결과에 따른 자율연수 등 자기능력개발계획 작성․이행
▸학교장․교육감 : 능력개발 연수 프로그램 제공 및 예산지원
▸교육과학기술부 및 교육청 : 교원 ․연수제도 개선 및 능력개발 지원계획 수립․시행


목적이야 그럴 듯 하지요. 하지만 완장 채워주니 사람 잡는다고 다른 원칙들은 편법으로 운영하면서  경쟁만을 부추기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부화뇌동하는 것도 문제지만 평가의 결과를 서열화시켜 이를 교사간 상대평가로 이용하는 관리자의 행태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나중에 교장선생님 평가결과도 교육청에서 등수를 매기고 하위 해당자는 불러서 몇 등이다 알려주고 성과급에 반영하겠네요. 교육감이나 교과부장관, 대통령도 교육의 책임자들이니 모두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만족도 결과는 이미 개인별로 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죠. 교장실로 불러 확인시키고 싶었던 것은 오직 전체교사중의 등위(당신 등수가 하위권이다 분발해라는 식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별로 애들이 서술형으로 작성한 자유반응식 설문응답 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더군요. 아무리 애들을 서열화시켜 평가하는 것이 일상화된 학교라 해도 다른 변인들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교사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아 무능한 교사로 골라내고 연수시키겠다는 발상이 좀 너무 단순하고 유치한 일이 아닌지요.

 

 그리고 개인별로 칼질해서 주는 것 자체가 이미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참고로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는 중국형 모델을 베낀 것이더군요. 다른 나라는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학생들이 교사의 정치사상까지 평가하고 교사는 교장을 평가하는 중국이 선진국형인 모양이죠.

 

저는 교단에 선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 등위가 기재된 표를 받아들고 허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교사들의 능력과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의도보다는 이를 빙자하여 관리자들은 교사들을 서열화하고 근무의욕을 오히려 꺾어버리는 이런 교원평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평가결과를 개인에게 통보해줘야 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 학교에서의 교사 개인 등위를 알려주라고 한 것인 셈이죠.

 

연초에 교과협의회 석상에선가 저는 교장선생님께 교사집단은 수평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애들 다루듯이 서열화시켜서 당근 주고 채찍을 드는 식으로 하기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료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것은 신나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출발점이며 그러한 배려가 적극적인 동기부여와 시너지효과를 만들고, 개인과 조직 모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선진국이라는 핀란드처럼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는 교육철학을 실현할 수 없는 무한경쟁의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 또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함양하기보다는 개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협력과 역할 분담보다는 서로간의 경쟁에 집중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평가 또한 교사 개인의 능력개발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본래의 목적이 변질되고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자에 대한 교육은 물론 방법과 내용상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관리자는 구성원들이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인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교원평가의 결과로 교사를 서열화시켜 평가하겠다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관리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등위를 매기고 구성원들을 섣불리 재단하는 일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리더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리더십 자체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듯, 교육현장에서도 서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첨부파일
만족도(종합).xls
2010.07.27 19:09 ⓒ 2010 OhmyNews
첨부파일 만족도(종합).xls
#교원평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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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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