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요?

[정치 톺아보기] 민주당의 완패로 끝난 7.28 재보선

등록 2010.07.30 13:42수정 2010.07.3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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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이 28일 밤 영등포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7.28 재보선 개표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이번에도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 달라"며 '미니 총선'으로 규정했던 7.28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정 대표는 30일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다른 지도부의 만류로 보류된 상황이다.

2000년대 들어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선진국민연대 및 영포 라인 출신의 국정 농단 의혹,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사건,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망언 등 여당에 불리한 악재들이 줄줄이 쏟아졌음에도 5:3으로 졌다. 민주당의 완벽한 참패다.

이명박 정권의 거듭된 실정과 실언 그리고 선거 악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패배한 것은 반(反)MB 정서에 기대어 연명해온 '반사이익 정당'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개그콘서트>를 패러디한 누리꾼의 한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이렇게 될 줄 다 예상했잖아요. 예상 못했으면 시민이 아니잖아요. 민주당 지도부지."

민주당의 안일한 선거전략과 맥 빠진 연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무사안일한 선거전략과 무기력한 공천 그리고 막판 초읽기에 몰린 맥 빠진 야권 연대로 패배를 자초했다. 국민이 차려준 밥상조차 민주당이 차버렸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선거 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EAI-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이번 재보선에 대해 '중간평가'(44.8%)보다는 '지역일꾼 뽑는 선거'(51.2%)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2009년 4.29 재보선 당시에는 '지역일꾼 뽑는 선거'(42.6%)보다 '중간평가'(50.6%)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인 6.2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그만큼 바뀐 것이다. 유권자들은 지난 6.2선거에서 이미 현 정권을 심판했는 데도 야당은 여전히 심판론에만 매달린 것이다.


6.2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의 원천은 '연대'였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야당 및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소극적이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진화된 연대의 감동을 주지 못했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선거 이틀 전에 단일후보를 확정함으로써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지도 못했다. 연대는 승리의 기본일 뿐 만병통치약은 아닌데, 민주당은 어떤 식으로건 막판 단일화만 이뤄내면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줄 것으로 착각했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 패배로 당분간 선거 책임론에 휩싸인 가운데 9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대는 민주당이 집권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반면에 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이번 재보선처럼 구태의연한 선거전략과 식상한 인물구도, 그리고 짝짓기식 연대로 이뤄진다면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도부의 총사퇴를 주장한 박주선 최고위원이 "이번 선거는 6․2지방선거 이후 '자만의 덫'에 빠져 변화와 혁신을 포기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의 무서운 회초리"라면서 "민주당은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번 전당대회를 통하여 제2 창당의 각오로 반성하고 쇄신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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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5일 서울 은평을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장상 후보가 정세균 대표, 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본질은 차기 총선 공천권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

민주당은 현재 '책임론', '쇄신'과 '연대'를 둘러싸고 시끄럽다. 당권에서 소외된 비주류는 '쇄신연대'라는 연합군을 구성해 재보궐선거에 패배한 당권파를 압박하고, 당권파는 "쇄신은 평소에 하는 것이지 전당대회를 앞두고 급조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방어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쇄신 논쟁이지만 본질은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다.

민주당의 세력 판도는 크게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중립파로 3분된다. 주류는 정세균 대표를 정점으로 그의 뒤를 받치는 이른바 486 세력이 주축이다. 비주류는 당권에서 배제된 정동영-천정배-추미애 등 반정(反丁) 연합군이 주축이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쇄신연대'에는 가담했지만, 출범식에서 조짐을 보인 '파벌정치'와 '세몰이'에는 반대한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민주희망쇄신연대'라는 이름의 반정 연합군은 지난 7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출범식을 하고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선 바 있다. ▲당의 정체성 확립 ▲민생정책의 개발과 실천 ▲당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전면적 시스템 개편 등을 결의한 그럴싸한 출범 명분에도 불구하고, '3천 결사'의 세 과시는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전형적인 퇴행정치다. 대중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결사는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당권파의 대응도 협량(狹量)하기 짝이 없다. 재보선 승리가 최고의 선이라는 승리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비주류의 요구를 못 들은 척해왔으나 재보선에 패배한 지금은 비주류의 요구를 외면할 구실이 없다. 6.2지방선거 패배 직후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것과는 딴판이다.

최대한 버티는 지도부와, 지도부를 흔들어 과실을 따먹으려는 비주류의 당권 다툼으로 비치는 현재의 민주당은 주류든 비주류든, 국민은 안중에 없고 계파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당사자들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들 보기에는 그렇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그들만의 리그'로 감동 줄 수 있을까

그나마 꽉 막힌 경색의 숨통을 틔우는 세력은 중립파이다. 중립파는 원내외에서 주요 당직을 맡고 있으면서 당권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 그리고 정 대표와 가까우면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운신의 폭을 넓혀온 손학규 전 대표 등이 주축이다. 손 전 대표 역시 당권 도전을 앞두고 있다.

각각은 차별성을 내세우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정세균 대표나 정동영 의원은 물론, 손학규 전 대표도 한두 번씩 당대표나 당의장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정동영-손학규 2인은 대권후보 경선에도 나섰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치 지도자들이 아직도 당권을 밑천 삼아 뭔가를 도모하려는 것은 민주당이 쇄신해야 할 구시대적 정치행태다.

혹여 대권 4수 끝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3전4기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러 번 당권과 대권 후보를 하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지금은 김 전 대통령이 치열한 민주화투쟁의 구심점으로 민주당의 오너십을 가졌던 과거 반독재 민주화투쟁 시대와 다르다. 음지에서 고생하느라 변변한 공직을 맡지 못했던 안희정 전 최고위원이 도지사에 당선된 것도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세대교체는 변화를 두렵게 한다. 주류가 한번 잡은 당권을 놓지 않으려 하거나, 비주류가 또다시 당권을 잡으려고 집착하는 것은 권력에서 한번 물러서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직업으로서 정치의 가장 좋은 점은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버리면 얼마든지 기회는 온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손학규가 그 모델이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권에서 물러나 아예 춘천에서 닭을 쳤지만, 최근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보듯 그는 당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장 지지율이 높은 유력 후보다. 그로서는 버렸기 때문에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빅3'(정세균 정동영 손학규)만 경쟁하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감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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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원들이 4일 오후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민주희망쇄신연대' 출범식에 앞서 민주당의 쇄신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 이경태


당권-대권 분리와 지도체제, 차기 지도부 임기 문제

이번 전당대회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당권-대권 분리와 지도체제 문제 그리고 차기 지도부의 임기 문제다.

당권-대권 분리에 대해서는 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문제는 임기와 연관이 돼 있다는 점이다. 당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이번 9월에 선출되는 지도부는 2012년 9월까지가 임기다. 다음 총선과 대선의 중간지점이다. 다음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전당대회를 앞당길 수는 있겠지만 총선에서는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차기 당대표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 여세를 몰아 대권 주자로서 유리한 지위에 서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립파의 제안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권 경쟁에서 승자 독식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박지원 원내대표는 순수집단지도체제를, 김효석 원장은 관리형 대표 체제를 제안했다. 차기 당대표의 임기를 단축함으로써 당권 투쟁의 본질인 '공천권'을 배제하자는 게 핵심이다.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집권비전을 담은 '뉴민주당 플랜'을 구현하는 지도부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주류는 기득권을 최대한 연장시켜 '당권'이라는 무기로 대권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당권을 버리고 개인의 정치력으로 승부해야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비주류 역시 최대한 판을 흔들어서 당권을 잡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밥그릇 싸움으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밥상을 뒤엎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밥그릇 싸움에 실망한 국민이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먼저 전대의 지도부 선출방식 변화를 통해 환골탈태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민주당 전대는 100% 대의원이 뽑는 체육관 선거다. 여론조사 20%를 가미한 한나라당보다 더 폐쇄적이다. 쇄신연대가 모든 국민에게 민주당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은 '전 당원 투표제'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전 당원 투표제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경험한 '종이당원'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반 국민이 100% 참여하는 '완전 국민참여 경선'을 고려할 수 있다. 방식도 직접은 물론 모바일, 인터넷 등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 연후에 전열을 가다듬어 정부여당의 실정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전 국토를 거대한 토목공사장으로 만들고 있는 4대강 공사판이 그 시험대다.

새로 구성될 민주당 지도부에게 '최고의 선'은 2012년 대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민주당의 모든 시계는 2012년에 맞춰야 한다. 지금은 밥그릇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그때 가서도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이렇게 될 줄 다 예상했잖아요"라는 조롱을 듣지 않으려면.
#김효석 #정세균 #손학규 #정동영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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