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찾는 여인이 떠난 뒤에

하루가 영화처럼, 소설처럼 취한 듯이 지나갔다

등록 2010.08.03 10:25수정 2010.08.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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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낯선 여인이 나를 방문하셨다. 흔치는 않아도 가끔 있는 일이다. 이것도 다 인터넷 문화가 내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드넓은 백사장이 있으면서도 고추와 가지가 자라는 밭과 논이 있고, 우렁이와 송사리가 고물고물한 방죽이며 고랑이 멀지 않은 곳에서 꽃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정착한 이후 참 많은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방문 목적이야 당연히 각자가 다르다. 이번에 방문하신 여인의 방문 이유는 지극히 평이했다.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와 더불어 500평도 넘는 마당을 텃밭도 아니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떻게 꾸며놓고 어떻게 사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그녀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미친 도깨비'처럼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탔다는 것이다.

 

 아, 기차여행, 기차라면 아무래도 수인선 협궤열차 있을 때 그것 타고 달릴 때의 서정이 최고였는데 없어져서 아쉽다는 둥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기차 이야기가 아마 폭포수처럼 쏟아졌을 것이다. 그 바람에 시간이 금방금방 가 버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모기들이 음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반복적으로 앵앵거리는 모기들의 극도로 단순한 음악을 배경으로 술을 마셨다. 두 달 전에 마당의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따서 담근 술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될까요, 정말로?"

 

 요절한 김소진의 어떤 소설을 이야기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느닷없이 혼잣말로 별 타령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별도 안 보이는데 그녀는 어디의 무슨 별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소녀처럼, 소년처럼, 동화책이라도 읽듯이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나마 별을 찾아보고자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울지 않아요, 나는 울음을 몰라요'하는 듯이 견결하게 정갈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을 할 때도 흡사 복화술이라도 하는 듯이 그 입술은 거의 열리지를 않는 것 같았다. 다만 술을 마실 때, 그때만 붕어처럼 잠깐 열렸다가 도로 얼른 닫혀진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모기소리만이 아닌, 마당에서 들리는 풀벌레들 소리만이 아닌 사람의 소리가 그것도 다른 사람의 소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진도의 무녀 김대례 선생의 구음이 수록된 시디 한 장을 컴퓨터에 넣었다. 춘향전의 귀곡성은 저리 가라로 애간장을 훑어내는 그 소리에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녀가 마치 죽기 싫다는 듯이, 살아야겠다는 듯이 푸우, 하고 길게 숨을 토해내더니 술 한 잔을 꿀꺽 털어넣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랬어요. 보물을 찾아다녔어요."

 

 이 말이 아마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보물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 나는 보물이란 무엇일까 하는 그런 헛된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보물에 관한 정의를 새롭게 세우지 않고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몇 살의 무슨 이름을 쓰는 여인인지 하는 그런 기초적인 자료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 한 헤어지기 직전에 이르러서도 나는 아마 그런 기초적인 질문 같은 것은 하지 않을 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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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남기고 떠난 그녀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잠시 졸았던 흔적 ⓒ 김수복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남기고 떠난 그녀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잠시 졸았던 흔적 ⓒ 김수복

 

 그녀가 굳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뭐라고나 할까, 어쨌든 자신의 이력서 따위를 내게 보여주기 위함은 분명 아닐 것이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것, 알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구태여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따위 매뉴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떤 것이 그녀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것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털어내고 있었고 나는 시를 읽듯이, 상형문자를 해독하듯이 바싹 긴장한 채로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보물을 찾아다녔다는 얘기 이후 그녀는 침묵을 택하고 있었다. 가끔 술잔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할 뿐 마시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문득 보면 잔이 비어 있었다. 마치 술잔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어서 들었다가 놓는 순간에 내용물이 빠져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빈 잔을 채우는 내 머릿속으로 이창호던가, 천재기사로 유명하던 시절의 그가 장고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이 지나갔다.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옆모습이 그녀의 얼굴에 겹쳐지기도 했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졸다가 퍼뜩 눈을 떴는데 그녀 역시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깨워서 제대로 자자고 해야 하나, 어쩌나, 잠깐 고민을 하다가 배게만 하나 등에 받혀주고 말았던가 어쨌던가. 하여튼 잠깐 엄벙덤벙 어떻게 하다가 도로 앉은 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세상에, 10시도 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는 보물찾기에 실패했다는 말이라도 하듯이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녀를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녀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절한 때가 되었다 싶은 어느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뭐랄까, 일종의 약속된 사라짐인 셈이었다. 이러한 무언의 약속은 내게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익숙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무덤덤하게 평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사람이 다녀간 뒤의 공기는 어제의 그것이 아니기 마련이다. 동쪽을 봐도 서쪽을 봐도 낯설고 내가 나 같지가 않다. 잠이나 자고자 해도 이런 날에는 잠도 제가 먼저 알고 외출 중이기 십상이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한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한참이나 그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집착이다. 무엇에 대한 무엇의 집착이라 말할 것조차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내가 내 감정을 못 잊어서 존재하지도 않는 그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잡으려고 헛된 몸짓을 해보는 것이다.

 

 나를 잊거나 버리는 방법으로는 영화보기가 제일이다.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허락도 없이 빌려다가 내 안에 집어넣고 본래의 나를 추방하는 이 전략은 누구에게 권할 것은 못 된다 해도 내게는 썩 잘 맞는다.

 

 모딜리아니를 골랐다. 두 번인가 아니 세 번째다. 시작은 다소 가벼운 익살과 농담이었으나 끝은 준엄한 사랑 이야기다. 자유는 이 사랑 속에 내재돼 있다. 자유한 영혼이 준엄한 사랑을 잉태한 형국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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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영화 포스터 ⓒ 영화사

모딜리아니 영화 포스터 ⓒ 영화사

가난뱅이에 바람둥이 모딜리아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없다. 소질이 있어 그림물감을 만지작거리는 하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에게 그나마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유다. 그것도 관념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유라는 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는 근원적 자유다. 이런 형태의 자유는 거의 모든 가난뱅이들의 특징이면서 또한 바람둥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딜리아니는 그 둘을 다 갖췄으니 그야말로 자유하다 하겠다.

 

 시끌쩍한 어느 모임에서 원없이 실컷 잘난 체를 하는 모딜리아니, 이런 자리라면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한 여학생이 그를 지켜보고, 그 또한 그녀를 본다. 그리고 한 마디.

 

 "내 작업실로 와 주면..."

 

 어쩌고 저쩌고 뻔한 미끼가 던져지고, 그녀는 그게 미끼인 줄 알면서도 문다. 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던진 미끼는 실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그리하여 그녀 그에게로 가고, 그는 그녀의 초상을 그리는데 눈이 없다.

 

 "왜 눈은 안 그리셨어요?"

 "너무 멀어서 그릴 수가 없었소."

 

 여자는 웃고,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본다는 핑계로 다가서고, 이 세상 모든 화가들의 직업적 특징이라 할 만한 해부학적 절차가 끝난 뒤에 그녀는 임신을 하는데 아이를 갖게 되기 전 모딜리아니의 한마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눈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의 이 한 마디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딜리아니는 알고 있었을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영혼을 알게 된다는 것의 엄중함을?

 

 영화는 이제 종교적 숭고의 색채를 띠게 된다. 굳이 영혼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녀의 혹은 그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고 만져지는 듯하고 느껴진다. 그 어떤 절대적 존재도 상정해본 적이 없는 모딜리아니에게 그녀는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신이 되고 그 밖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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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영화 속 한 장면 ⓒ 김수복

모딜리아니 영화 속 한 장면 ⓒ 김수복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두 손으로 가만히 끌어안고 뒤로 약간 기대는 듯이 앉아 있는 여자의 얼굴에 흐르는 행복한 슬픔을 놓치고 만다면 그는 그녀의 남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픔이 슬픔의 껍질을 깨고 행복으로 전이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체험한 그는 마침내 그녀의 눈을 그리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그녀의 영혼을 보고 나니 그녀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

 

 아니 그것은 그녀에게 해주는 뭔가라기보다 모딜리아니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것을 부르주아들의 놀음 정도로 생각해 왔던 남자, 그가 이제 결혼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시청으로 달려간다. 자기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은데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입으로 사랑 어쩌고 하는 것도 마음에 차지를 않고 뭔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겠는데 그것이 결혼증명서라 여겼던 것.

 

 우여곡절 끝에 결혼증명서를 받아든 모딜리아니, 아, 이게 그것이란 말이냐? 조금 싱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다. 미칠 듯이 좋다. 이렇게 좋은데 어찌 그냥 갈 수 있는가. 술집으로 들어가서 일단 자축을 해야지.

 

 그런데 이게 한 잔을 마셔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두 잔을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다. 그래서 한 잔 더, 한 잔 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하고 마셔대는데 드디어 취하기 시작한다. 술이란 취하면 적당히 포장된 나는 사라지고 저 바닥의 내가 얼굴을 내미는 법. 쓸데없는 자랑도 하고 싶어지고 뭐 그러는 법.

 

 술이 취한 모딜리아니에게 최고의 자랑거리는 역시 결혼증명서, 그것을 손에 들고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것이 이렇다.

 

 "이봐 주인. 나 오늘 부자가 되었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이게 뭔 줄 아나? 보물이야 보물, 보물이라고."

 

 그 종이쪽지의 정체야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오직 모딜리아니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 종이쪽지와 큰소리를 두 명의 강도 예비자들이 멀리서 지켜본다. 저게 뭘까? 글쎄, 오늘날로 말하자면 무기명양도성채권증서 뭐 그런 것쯤 되려나? 그러면 얼마짜리? 일억? 십억? 아니야 그 정도로 저렇게까지 미쳐버릴 수는 없지. 맞아. 저거 우리 것으로 만들자.

 

 곤들만들 완전히 취해버린 모딜리아니, 그래도 결혼증명서는 여전히 최고의 보물이라 손에 꽉 쥐고 비틀비틀 아내에게로 가는데 뒤를 따르던 예비 강도들이 드디어 강도로 돌변을 한다. 때리고 걷어차고 밟아도 결혼증명서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래서 그야말로 죽도로 얻어맞아야 하는 모딜.

 

 그리하여 그는 정말로, 정말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내에게 기어가서 그녀의 품에 안겨서 죽는다. 죽어버린다. 그에게는 최고의 보물이었으나 강도들에게는 휴짓조각밖에 안 되는 결혼증명서를 손에 쥐고서 말이다.

 

 보물, 보물이란 무엇일까. 많은 보물찾기 이야기가 있다. 그 많은 보물찾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보물은 열이 하나같이 금이거나 보석이거나 채권이거나 그런  따위들이다. 보물 하면 이런 물리적인 것부터 떠올려야 하는 우리의 이런 지독한  관념은 태어나면서부터 영혼에 찍혀 있었던 것일까. 꼬리뼈처럼?

 

 나를 찾아와서 하룻밤 새고 가는 이들이 내게서 무엇을 얻어가는지는 나도 모른다. 알고 싶다 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겠지만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바로 그것을 가져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보물인지도 모른다는, 이런 이야기까지는 차마 내가 할 소리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오랜 세월 보물을 찾아다녔다는 그녀는 내게로 와서 하루를 새고 갔다. 그리고 나는 그 후유증으로 하루를 꼬박 취한 듯이 보내게 되었다. 이 상태는 그 옛날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졸다가 또 영화를 보다가 졸다가 그렇게 하루를 완전히 보낸 뒤에 비틀거리며 극장을 나서던 시절의 어떤 날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다시 이십대의 시절로 돌아간 것인가? 푸르고 붉은 청춘의 그 시절로? 결국 그녀는 내게 보물을 주려고 왔던 셈이다.

2010.08.03 10:25 ⓒ 2010 OhmyNews
#낯선여인 #보물찾기 #모딜리아니 #생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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