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없는 배수지 짓겠다고 이 난리 친 거야?"

[2003년 성미산지키기 톺아보기 6]거리규탄을 시작으로 공청회 열기까지

등록 2010.08.05 18:04수정 2010.08.06 10:0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0년 7월 29일 폭력 사태...
그러나 우리는 천 그루 나무가 잘려도 성미산을 살려낸 사람들이다

왜? '2003년 성미산 싸움' 이야기인가? 지금 성미산은 커다란 위기에 있다. 홍익재단이 성미산의 가장 아름다운 남사면 숲을 훼손하고 그 자리에 홍대 안에 있는 홍익초중고를 이전시키겠다며 학교건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미산 주민들은 서울시가 홍익재단에 대체부지를 마련해주어 교육권을 보장하고, 성미산은 서울시민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며 두 달이 넘도록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먹고 살고, 자식 키우고 자기 계발하며 살기에도 너무 바쁜 서울 도심에서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2003년 성미산 싸움의 승리'에 대한 자부심과 그 자부심을 이어서 아름다운 성미산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나름의 사명감이다. 2003년 성미산 싸움을 경험한 필자가 당시를 회상하며 기록한 이 글은 홍익재단에게 '불의와 불법 단체'라는 딱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 도심에서 생태와 대안적 삶을 실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찬사를 받는 성미산마을공동체와 그들의 2010년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a

성미산 정상의 큰 나무들이 벌목된 직후, 정상에 설치된 철야농성 텐트는 120여 일 동안 자리를 지켰다. ⓒ 환경운동연합


성미산 싸움을 담은 비디오, 거리서 틀고 규탄발언

2003년 당시 3·13 성미산 대첩과 3·14 이명박 시장 기습 면담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도할 수가 없었다. 승기를 잡았을 때 확실한 매듭을 지어야 했다.

2003년 3월 15일 망원역으로 나갔다. 3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망원역에서 촛불 시위를 하기로 한 터라 13일, 14일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13일의 상황을 담은 영상을 비디오로 틀어놓았다. 망원역을 지나가는 주민들은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소리에 놀라 들여다보고는 이런 있었냐며 놀라워했다. 아이들도 한참 동안 비디오를 보고는 저마다 안타까운 마음과 의견을 쏟아 냈다. 


"산이 불쌍했어요."
"울 것 같았어요."
"깡패들이 잔인했어요."
"트럭(포클레인)을 부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죽는 거(다치는 것)를 보니까 슬펐어요. 그리고 숲속을 부수니까 너무 속상했어요."

이날 망원역 보고회에서 중학생 신나라의 엄마 아빠는 나라와 경빈이가 2월 20일 1차 공사 강행이 있던 날 써서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을 대신 낭독했다.

"공원은 살아 있지 않지만 성미산은 살아 있어요. 콘크리트는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지만 성미산은 봄이면 새싹들이 피고 진달래가 피지요. 아파트에서는 뛰어 다니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지만 성미산에서는 마음껏 뛰놀 수 있지요. 공원은 자연이 없으니까 자연을 흉내 내서 만든 것입니다. 돌로 밥을 짓고 풀로 반찬을 만들면 소꿉놀이 세트와 비교도 안 되지요. 한 번 사라진 자연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년 신나라)

"성미산을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해 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이용하는 성미산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미로 같은 길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요. 성미산이 사라지면 성미산에 살포시 놔 주었던 그 벌레와 풀피리 부는 나무들은 어떻게 되나요? 갈 곳 잃은 동물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나요?" (초등학교 6학년 최경빈)

갖은 고충 겪은 후에 드디어 마포구청장 면담

a

주민들은 서울시가 잘라낸 성미산의 나무를 며칠 동안 조각하여, 성미산대장군과 성미산여장군으로 부활시켰다. (김성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산이야> 캡처) ⓒ 성미산대책위


우리는 3월 19일 저녁 7시, 마포구청장을 만나러 구청 대회의실로 갔다. 이번에는 주민 150여 명이 함께 갔다. 회의실이 꽉 찼다. 얼마만인가. 철야농성한 지 50여 일. 주민 10여 명이 깡패들에게 맞아서 다치면서, 이 사실이 MBC 뉴스에 나간 후 성미산 주민들은 출근 중인 서울시장을 지하철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나고 나서야 주민 150여 명은 구청장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참 힘들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여기서 마포구청의 공사 중단 요청과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하는 검토 기구를 만들 것을 한 목소리로 요청했다.

먼저 짱아(짱아는 내 아내다. 나는 짱가, 아내는 짱아가 마을 별명이다)가 말문을 텄다.

"상수도본부와 마포구청은 1년 8개월 동안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공사 강행을 추진함과 동시에 대안을 가져오면 검토해 보겠다는 식의 주민을 무시하는 행정을 보여 주었다"고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다음은 한슬 아빠 차례.

"주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일하라고 있는 것이 구청장인데 주민더러 연구해서 대안을 내놓으라 하면 내가 구청장을 하겠다" 고 말했다.

그 말 뒤에 구청장이 호기 있게 "한 번 해보라"고 했고 그러자 한슬 아빠는 벌떡 일어나 주저 없이 구청장 쪽으로 걸어갔다. 구청장은 당황하며 들어가 앉으라 하여 회의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2시간여의 열띤 토론 끝에 주민들과 구청장은 몇 가지를 합의했다.

첫째, 주민 대표와 전문가를 포함하는 검토 기구 구성을 위해 우선 '조정위원회'를 만든다.
둘째, 구청장은 상수도사업본부에 서면으로 공사 중단을 요청한다.
셋째, 다음 주 초 대책위와 구청장이 다시 만난다.

이렇게 세 가지를 약속하고 우리는 구청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사소한, 그러나 굉장한 의문···'배수지가 꼭 필요한가?'

a

3월 30일 성미산 주민들은 나무가 잘려진 성미산 정상에 나무를 심고 숲속음악회를 했다.(<우리 산이야> 캡처) ⓒ 성미산대책위


언젠가 짱아가 내게 '배수지를 꼭 더 지어야 하는 걸까?'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필요하다잖아."
"그게 꼭 필요 없을 수도 있잖아. 확인해 봐야지."

맞다. 그동안 우리는 배수지 자체를 반대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님비로 몰릴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책위 사람들도 짱아의 문제 제기를 그리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배수지는 인정하되 좀 더 친환경적인 방식, 즉 산도 살리고 원활한 급수도 해결하는 방식을 전문가와 함께 검토할 것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짱아의 의문대로 배수지가 필요한지부터 근본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예림아빠 권규대 변호사가 상수도사업본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본 건데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상수도사업본부가 틈만 나면 되풀이한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자료가 바로 그들의 손에서 나왔다.

결론은, 이미 충분한 배수 시설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필요도 없는 배수지를 짓겠다고  이 난리를 친거야?"
정말 흥분되면서도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우리의 공청회 개최 요구는 순식간에 탄력을 받았다. 이 정도 자료라면 관계 전문가들도 충분히 우리의 입장을 거들어줄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공청회에서 우리 측 입장을 대변해 줄 교수들에게 자료를 보내고 참여 의사를 물었다. 예상대로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답이 날아들었다.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 쟁점은 '친환경적인 배수지의 가능성'이 아니다. '성미산에는 배수지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추가로 배수지를 건설하지 않아도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장해 온 쟁점을 재빨리 옮겨야 했다. 구청의 중재 아래, 상수도사업본부 측과 우리 측 대책위는 공청회 진행 방법과 양측 발언자의 선정을 합의하고 공청회 날짜를 5월 17일로 잡았다. 

2년 만의 공청회, 그리고 또 한걸음

a

5월 17일, 2년 동안 줄기차게 요청해온 주민공청회가 드디어 경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수많은 지역주민들의 관심 속에서 열렸다. (<우리 산이야> 캡처) ⓒ 성미산대책위


2003년 5월 17일 토요일 오후 3시, 공청회 개최를 요청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공청회가 열렸다. 엄청난 주민들이 경성고등학교에 모여들었다. 약 1,000여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제법 여름 같은 날씨 속에 주민의 열기가 더해져 강당 안은 후끈했다. 상수도사업본부측은 구청의 통반장과 관변 단체의 조직망을 이용해 많은 주민들을 동원했다.

우리 역시 얼마를 기다려 온 공청회인가. 그것도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치르고 나서 말이다. 마포구에서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라며 참석한 어르신들이 놀라워했다. 드디어 양측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먼저 상수도사업본부 측이 발표했다. 발표자로는 상수도사업본부의 유재용 부장 등 실무자들이 나섰다.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성미산 배수지 건설이 필요하다. 배수지 위에 복토하여 조경을 하면, 미관도 좋고 훌륭한 공원을 만들 수 있다."

2년 동안 해 온 이야기의 복사판이었다.

녹음기마냥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도 새로운 정보와 논리 없이 발표하기 민망했는지 영 자신이 없어 보였다. 한심하다 못해 안타까웠다. 반대 측 발표자로 나선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잘 정리된 파워포인트로 발표를 시작했다.

"성미산 배수지 계획은 서울시가 10년 전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과다하게 계획한 배수지 중 하나이며 2002년 말 현재 서울시 배수지 용량은 합계 214만 톤으로 환경부가 권고하는 8시간 분을 넘어 12시간 분이 이미 확보돼 있다.

마포구의 7개 동을 포함한 서북 지역의 경우에는 서울시 평균을 넘는 15시간 분이 건설되어 있으며, 2002년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서울시는 향후 계획된 100만 톤 중 50만 톤 이상의 배수지 계획을 축소, 폐지하기도 했다."

발표가 이어지는 내내 찬성 측, 반대 측을 막론하고 많은 주민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공청회를 지켜본 대다수 주민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이미 확인한 것이다. 3시간 반에 걸친 양측의 주장은 공방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이렇게 2년 여에 걸친 성미산 배수지 건설 반대 투쟁은 그 끝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었다. 그 끝의 향방을 점차 또렷이 암시하면서 말이다.
#성미산 #성미산마을 #2003 성미산싸움 #성미산지키기 #홍익재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3. 3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