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껏 따라 부르지 못했던 '통일의 노래'

김대중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등록 2010.08.12 19:34수정 2010.08.1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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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발목을 잡게 될지 몰랐습니다. 행사 시간 전에 넉넉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폭우가 쏟아지고 거의 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겨우 잡아탄 택시가 목적지를 착각하고 역방향으로 내달리는 소동까지 겪으며 행사 시작 1시간이 경과할 즈음에야 겨우 행사장(그랜드 힐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있었던 <김대중 자서전> 출판기념회 얘깁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다행이 행사는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김근태, 박지원, 손학규, 안희정, 정동영, 정세균 등 민주당 주요 인사와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김무성, 이재오 등 여권 인사 그리고 브라이언 맥도날드 주한 EU 대표부 대사, 정치를 접은 박찬종 전 의원과 박승 등 시민사회 대표들 이런 자리가 아니면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숙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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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은 총재 고인의 일대기를 회상하고 있다. ⓒ 이래헌


현장에서 만난 한 지인은 "(이희호) 여사님 인사말씀하실 때는 눈물을 쬐끔 흘렸습니다. 좀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걸..."이라며 분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연단에선 박승 전 한은 총재가 나서 탄압받던 정치인에서 제도권 대통령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화해의 물고를 트는 등 파란만장했던 고인의 일대기를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대충 흘려 보아도 자서전에 수록된 많은 사진들은 그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 그 질곡의 역사를 한 눈에 보는 듯 숨이 턱턱 막혀 옵니다.

고인의 서거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와 그 후 급속하게 진행된 민주주의의 역주행, 서민과 중산층의 몰락, 남북 대화의 단절 등 역사의 퇴행을 목도하면서도 눈앞의 작은 이익을 다투느라 제대로 항거의 대오조차 갖추지 못하는 민주세력의 한계를 절감하자니, 질기고 질긴 질곡의 세월을 넘어서 끝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고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단호한 신념과 국가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지도력 그리고 수 십 년간 단절된 채로 상대에 증오를 키워오던 남북관계를 대화와 화해 모드로 이끈 포용력이 새삼 그리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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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호여사 내빈들과 함께 케익을 커팅하는 모습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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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전 의원 고인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군부 독재 시절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씨 병을 얻은 것으로 알려저 안타까움을 더한다. ⓒ 이래헌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준비된 소년 합창단의 공연 역시 짙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고운 목소리로 들려준 주옥 같은 노래들은 모두의 가슴을 촉촉하게 했지만 역시 압권은 마지막에 들려준 통일의 노래였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은 천사들의 노래가 공간에 울려 퍼지며 '우~웅' 낮은 울림이 이어졌습니다. 아주 작지만 분명하게 참석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노래는 입 안에만 웅얼거릴 뿐 끝내 크게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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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합창단 고운 목소리로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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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모두 함께 부르지 못한 통일의 노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사람들은 끝내 큰 목소리로 함께 부르지 못한채 눈시울을 적셨다. ⓒ 이래헌


고인이 문을 활짝 열은 민족화해와 남북 공존이 교착 결렬되는 것도 모자라 쌍방이 서로를 향해 위협을 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대결의 시대로 돌아선 까닭 때문일까요? 며칠 전 서해상에서는 우리 군의 대규모 훈련이 전개되어 북한을 압박했고 행사가 있기 직전에는 북한이 대대적인 포대 사격으로 화답해 오기도 했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금강산을 관람하고 개성을 왕래하며 살아생전 통일 한국의 장한 모습을 볼 수도 있으리란 희망을 품기도 했던 것 같았는데, 정말 우리에게 그런 아름다운 꿈을 그려보던 시절이 있기는 있었던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출판기념회 #이휘호 #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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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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