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중소기업 상생 구호, '쇼'였나?

정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 발표... 전문가 "실효성 없는 대책"

등록 2010.09.29 14:05수정 2010.09.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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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에 대한 브리핑이 이뤄지고 있다. ⓒ 선대식


"이번 대책은 대기업 규제 강화나 중소기업 보호로 접근한 것이 아니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상생이라는 말 대신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썼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시혜적으로 바라지 말고,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 브리핑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이번 대책이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이라는 사회적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납품단가 인하(후려치기)' 문제 등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근절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했고, 이명박 정부도 지난 7월부터 '상생'을 강조하며 이에 화답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회의'에서 이번 대책을 발표했다. 최경환 장관은 "오늘 회의에서 동반성장이 기업 성장, 일자리 창출, 공정한 사회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납품단가 인하, 어떻게?] 협동조합에 조정 신청권 부여

'납품단가 인하' 문제는 현재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원자재 값이 많이 오르는데도 대기업들이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거나 오히려 깎아, 많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4월 현재 원자재 구매가격이 2009년 1월보다 18.8% 상승했지만 납품단가는 1.7%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많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맺은 관계 탓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8개 중소기업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제품 가격 반영 결과를 물어본 결과, "모두 반영됐다"고 답한 곳은 3.9%에 불과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가조정 협의를 개별 중소기업이 아닌 중소기업협동조합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해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조정신청 기피 현상을 해소시키겠다"고 밝혔다.

정호열 위원장은 "(원자재 값이 일정 수준 이상 등락하면 자동적으로 납품단가에 반영되도록 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것은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있지만 아직 1년 5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밖에 ▲납품단가 조정실적 우수기업 인센티브 확대 ▲표준하도급 계약서 보급 ▲중소기업 기술 보호 강화 ▲2차 이하 협력사에 대한 하도급법 적용 확대 및 원활한 대금 지급 ▲ 대형유통업체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를 통해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책 효과는?] 중소기업 요구사항 외면, 대기업 주장만 되풀이

부도가 난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의 모습. ⓒ 선대식


정부의 납품단가 인하 개선 대책은 중소기업에 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을 부여하면서도 협상권은 개별 중소기업에 국한시켰다. "단체협상처럼 되면,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결국 대기업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는 것은 개별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정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번 대책의 실무 담당자인 신동열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개선과장은 "조합에 조정협의 신청권을 부여한 것이 조정신청의 급증을 유발해 정상적인 거래를 방해할 수 있고, 반대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을 우려도 크다"며 "일몰제(3년 후 자동 종료)로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서 중소기업이 요청했던 대책은 빠지고 대기업 쪽의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져 논란은 한층 더 거셀 전망이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요구에 대해서 정호열 위원장은 "반시장적이기 때문에 도입할 수 없다"며 대기업 쪽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를 할 경우, 징벌적 손해 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중소기업 쪽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동열 공정거래위 과장은 "징벌적 손해 배상을 시행하는 곳은 미국을 비롯해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소송을 남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인력·기술연구실장은 "집단교섭권 없이 조정협의 신청권만 부여된다고 하면 실효성이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 적절한 균형이 이뤄질 수 없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와 관련해,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 기업에 대한 확실한 제재가 없다면 불공정 거래는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대책은?] 중소기업 보호, 경쟁력 강화? "MB정부의 쇼였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자생력 강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효과 없는 일회성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민간 주도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과 품목을 설정함으로써,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 자제와 사업 이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업조정제도 등을 통해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포스코 등 5개 기업이 2012년까지 1조 원을 출연해 '동장성장 프로그램' 기금을 만들어, 협력 중소기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도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대책 수립, 외국인 근로자 도입 쿼터 확대, 기업별 동반성장지수(win-win index) 공표를 통한 우수기업 포상 등의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해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처럼 사업조정제도나 민간 주도로는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가 불가능하고, 대기업이 돈을 출연해 기금을 만드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책"이라며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구호는 '쇼'임이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중소기업 상생 #납품단가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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