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92년 대선 TV 토론 거부는 잘한 일"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식에서 대선 비화 털어놔

등록 2010.10.06 16:39수정 2010.10.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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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특별 초청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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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김영삼 전 대통령이 92년 대선 당시 후보자 간의 TV토론을 거부한 것에 대해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 초청연설에서 92년 대선 당시의 일화를 소상히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해 9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1979~90년)가 <동아일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당시 만찬에서 대처 전 총리의 권유로 TV토론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다.

김 전 대통령(YS)에 따르면, 당시 두 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대처 : 한국도 미국처럼 대선 TV토론이 있느냐?
YS : 우리나라에는 없는데 이번에 처음 하려고 한다. 김대중씨가 하자고 하는데 내가 더러워서 하려고 한다.
대처 : (데이비드 라이트) 주한 영국대사로부터 보고받으니 YS가 8% 앞서고 있다고 한다.
8% 앞선다면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데 무엇 때문에 토론을 하나? 토론은 지는 쪽에서 이기는 사람을 흥분하게 해서 실수를 유발하게 하려는 건데 왜 하나?

YS는 "가만히 듣고 보니 그 여인의 말이 맞더라. 그래서 내가 이튿날 국회에 가서 김중위 의원(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 정무보좌역)에게 (TV토론을) 안 하도록 해버렸다"고 말했다.

1987년 대선에서 후보자들의 금품 대량살포에 대한 비판이 높았던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은 저비용으로 후보자들의 인물됨과 식견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로 각광받았지만, 1992년 YS의 거부로 97년 대선에서야 제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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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DJ가 하자던 TV토론회, 대처가 거절하라고 조언" ⓒ 오대양


"비판 많았지만 막상 선거 시작하니 국민들 다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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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특별 초청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YS는 "내가 참 비판을 많이 받았다. 모든 (신문의) 사설에 두들겨 맞고, 1면 톱에 왜 대선 TV토론 안 하느냐고 썼다"고 떠올렸다. YS는 "대처 얘기를 들은 것 때문에 내가 참 괴롭더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그 여자 말이 참으로 훌륭하고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상 선거 시작하니까 국민들이 그걸 다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 초점이 가더라. 내가 200만 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지 않았나? 러시아에서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별명 지어줬는데 역시 '철의 여인' 답더라. 내가 그 여자 말 들은 것을 참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청중 웃음)"

YS의 발언은 "정치적 득실을 놓고 볼 때 TV토론을 거부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득이었다"는 계산을 담고 있는데, 대통령 자질에 대한 국민들의 검증 기회를 기피했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YS는 연설에서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 문민정부의 업적을 나열하면서도 97년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지금은 다음 정권들에 의해 매도당한 바가 많이 있다. 그러나 언젠가 역사가 이를 바르게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이각범 카이스트 교수도 YS의 연설이 끝나자 "(문민정부가) 일방적으로 매도당한 것은 YS가 97년 대선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며 "변화와 개혁 정신을 이어받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관여하지 않은 것이 문민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YS를 거들었다.

이는 "YS가 97년 대선에서 임기 후 방패막이가 되어줄 여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아서 외환위기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게 됐다"는 논리이지만, 당시 여야 후보들이 인기없는 문민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YS가 대선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고 특정후보를 지원했다면, 오히려 해당 후보가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YS는 대북 관계에서도 "대통령 취임 직후 대북 화해 조치로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노인의 북송 등을 결정했지만 북한의 전략적·이기적 전략 때문에 큰 시련을 맞았다"며 "화해란 햇볕정책과 같이 일방적인 양보와 뒷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고 각을 세웠다.

올해 83세의 YS는 연설 시작 전 주최측이 연단위에 책상과 의자를 준비하자 "연설은 서서 하는게 옳지 않냐? 나는 전혀 서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데 (앉아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정정함을 과시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리에 앉아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YS는 '보상'을 '배상'으로, '아시아 금융위기'를 '러시아 금융위기'로 원고를 바꿔 읽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최형우·문정수·유성환·김현규 전 의원 등이 참석해 구 상도동계의 친목모임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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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무총리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김영삼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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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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