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해당화 열매 따면 7년 이하 징역?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2] 영광 법성포에서 함평 돌머리해수욕장까지

등록 2010.10.12 10:14수정 2010.10.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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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날 아침,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여행의 백미는 백수 해안도로다. 산허리를 이리 저리 감아 도는 해안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더 멋진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백수 해안도로에 서 있는 이정표

법성리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얼마 안 가 굴비 상점이 늘어서 있는 도로 끝에 백수 해안도로 이정표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정표가 어찌나 큰지 이정표 때문에 허구헌 날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백수 해안도로는 도로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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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도로 가는 길의 풍경. 바다 건너가 법성포 ⓒ 성낙선


시내를 벗어나 조금 더 가다 보면, 또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좁고 거친 시멘트 도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도로가 차로라기보다는 농로에 가깝다. 처음엔 좀 의아했다. 그 유명한 백수 해안도로가 이런 시멘트 소로였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정표가 분명히 이 길이 맞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딴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

한동안 그 시멘트 길을 오르내린다. 계속해서 언덕이 나타나는 걸 보면, 해안도로가 맞기는 맞다. 얼마간 그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아스팔트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백수해안도로까지는 1.5km를 더 가야 한다고 표시되어 있다. 주인공 얼굴 한 번 보기 쉽지 않다.

백수해안도로를 가는 길에 바다 너머로 법성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제 막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고깃배들이 좁은 만을 지나 법성포로 돌아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에서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의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면대불상을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 볼 수도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풍경이다.


백수해안도로는 영광군의 구수리에서 시작해 백암리까지 이어지는 17km 길이의 도로를 말한다. 해안 절벽 위를 위태롭게 지나간다. 이 도로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서해안을 대표하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당연히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느니,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열매를 채취하면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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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열매 ⓒ 성낙선


도로가에 해당화가 피어 있다. 지금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분홍색 꽃보다 꽃이 열렸던 자리에 붉게 맺힌 열매가 더 탐스러워 보인다.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열매를 심하게 탐했던 모양이다. 해당화 꽃밭 안에 아주 센 경고문이 붙어 있다. '열매를 채취하면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단다. 심하다. 손대기조차 두렵다.

백수해안도로에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뒷짐을 진 한쪽 손에 비닐 포대와 집게가 들려 있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사흘에 한 번씩 이렇게 도로에 나와 쓰레기를 줍는단다.

도로가 깨끗해 보인다 싶더니, 누군가 쓰레기를 따로 줍는 사람이 있었던 거다. 그래도 요즘은 피서철이 지나서 그나마 쓰레기가 덜하지만, 차들이 한창 많이 지나다닐 때는 진짜 '겁나게' 버린다. 사정이 어떤지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못 볼 걸 보게 될 때가 많다.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달아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길가 눈에 빤히 보이는 데 버리고 가는 사람은 양반에 속한다. 더러는 수풀 속에 던져 넣거나, 절벽 아래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지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전국의 도로를 더럽히고 있다. 도로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당연히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다.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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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정에서 내려다 본 백수해안도로 ⓒ 성낙선


백수해안도로에 들어선 이후로 길은 끝없이 굽어 돈다. 올라가는가 하면 내려가고, 내려가나 하면 다시 올라간다. 곧은 길, 평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엄한 해안절벽과 한없이 푸르고 넓은 바다와 하늘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독히 고되고 힘든 길이 됐을 뻔하다. 힘들만 하면, 한 번씩 자전거를 멈춰 세우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 나타난다. 너무 자주 쉬어 가는 바람에 나중엔 이러다 언제 백수해안도로를 벗어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잔잔한 바다, 그 바다 위에서는 그물을 걷는 어부들조차 그저 세월을 걷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마치 느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 모습에서 고된 노동으로 찌든 삶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부라서 바다를 닮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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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도로 고기 잡는 어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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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도로. 산책로를 걸어 절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 성낙선


바닷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간 바위들이 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가 보이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새끼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 새끼 거북이가 엉뚱한 데 가서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자리를 얼마나 오래 맴돌았는지 그만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서,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전설과 드라마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곳, 백수해안도로다.

백수해안도로를 내려 와서는 77번 국도를 타고 대전리까지 직행한다. 중간에 해안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길이 뚜렷하지 않고, 자칫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닐 가능성이 높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선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태해지는 건지 영악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6000원짜리 푸짐한 밥상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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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백반 정식. ⓒ 성낙선


어쨌든 그 덕에 운 좋게도 대전리의 한 식당에서 전라도식 밥상을 마주한다. 백반인데, 어제 법성포에서 대한 굴비정식과는 다른 맛, 또 다른 분위기다. 1만원짜리 굴비정식과 비교해 맛과 정성에서 뭐 하나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넘치는 인심까지. 배가 불러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까지 부르다. 밥값 6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밥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다.

백바위 해수욕장에서 길을 잃다

대전리에서는 다시 해안 길로 들어선다. '백바위'라는 독특한 이름의 해수욕장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규모가 작아 보이는  해변이다. 해변에 맷돌을 지그재그로 겹쳐 올린 형태의 계단을 쌓았다. 해변 오른쪽에 하얀 소금산을 쌓은 것 같은 바위가 있다. 멀리서 보기엔 금방 무너져버릴 것 같아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차돌같이 단단하다. 그 바위가 바다 쪽으로 길에 뻗어나가 있고 그 끝에 정자를 올려 세웠다.

백바위해수욕장을 나와서는 한동안 제방 길을 달린다. 그러다 그 길이 다시 농로로 접어들면서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참 오래 헤맸다. 할 수 없이 길을 물어 겨우 77번 국도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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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바위해수욕장 ⓒ 성낙선


77번 국도가 지나가는 길에 설도항이 있다. 작은 어시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부둣가를 어슬렁거리며 가을 햇살에 바짝 말라가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다 이제 곧 해가 질 때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급해진다. 요즘 밤길을 달리는 일이 잦은데,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밤새 해야 할 일은 또 좀 많은가?

서둘러 설도항을 떠난다. 오늘 저녁 가능하면, 영광군을 벗어나 함평군의 돌머리해수욕장까지 가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 향화도항에 잠시 들른 후, 중간에 838번 지방도로를 타고 안악해변까지 간다. 안악해변에 섬마을선생 노래비가 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노래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할 형편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다.

갈등이 생긴다. 이곳에 머물지, 아니면 계속 밤길을 달려 돌머리해수욕장까지 갈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요행히 하늘이 맑아 별빛이 반짝인다. 별빛에 비친 도로가 희미하기는 하지만, 차선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안악해변으로 길게 산책로가 있다. 하지만 밤길에 해안선 가까이 붙어 있는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할 수 없이 해변을 떠나 811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속도를 늦춘다. 도로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건너편 차선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비추는 전조등에 눈이 부실 때가 많다. 가까이 다가왔을 땐 몇 초간 눈을 뜨지 못한다. 차가 지나갈 때까지 멈춰 섰다 다시 가기를 반복한다. 자동차들 중엔 밤길을 가는 자전거가 위험해 보였던지 더 느리게 지나가는 차들도 있다. 그냥 빨리 지나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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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의 안악해변 ⓒ 성낙선


안악해변에서 돌머리해수욕장까지 생각 외로 긴 거리다. 초행길인 데다 밤길이라 더 길게 느껴지는 게 분명하다. 가도 가도 해수욕장이 나오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길을 묻는다. 그렇게 더딘 밤길을 달려 돌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 30분, 해가 진 뒤로도 무려 2시간 가까이 달렸다.

돌머리해수욕장 가까이 민박을 들고 나서 짐을 푸는 데 온몸이 뻐근하다. 백수해안도로를 넘으면서 지치기 시작한 몸이, 초긴장 상태로 밤길을 더듬어 달리느라 녹초가 되어 버렸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90km, 총 누적거리는 1540km이다.
#백수해안도로 #돌머리해수욕장 #백바위해수욕장 #설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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