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의 심장을 꿰뚫는 장면을 그리다

[영웅 안중근 24] 셋째 마당 - 침략자의 심장을 꿰뚫다

등록 2010.10.23 12:31수정 2010.10.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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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결행장소로 택한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역의 현재 모습 ⓒ 박도


안중근 행장 (15)

1909년 10월 24일 아침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 네 사람은 김성백 집에서 아침밥을 들고 8시에 집을 나섰다. 하얼빈 역으로 가는 길에 제홍교가 있었다. 거기에 서서 하얼빈 역 구내가 멀찍이 내려다 보였다.

"잠깐 이곳에서 하얼빈 역 구경이나 하고 갑시다."

안중근은 앞장 선 유동하에게 잠시 멈추기를 부탁했다. 안중근은 거기서 하얼빈 역 플랫폼을 내려다보며 가슴 속에 품은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꿰뚫는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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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홍교에서 내려다본 하얼빈 역 ⓒ 박도


하얼빈에서 남행 열차를 타다

그날 하얼빈 역 대합실과 플랫폼은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후초프가 이토 방문에 앞서 이날 오전 중에 도착하기 때문에 의장대가 하얼빈 역 앞에 집합하여 매우 혼잡했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는 하얼빈 역 대합실로 들어섰다. 조도선이 열차매표소로 가서 물었다.

"가족을 맞이하러 가는데 어느 열차에 탔는지 알 수가 없어 그럽니다. 창춘(長春, 寬城子) 하얼빈 간 상하행 열차가 모두 반드시 정차하는 역까지 가고 싶은데 어느 역으로 가야 하오?"
"그렇다면 삼협하로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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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당시의 하얼빈 역 ⓒ 눈빛출판사

조도선은 러시아 역원으로부터 하얼빈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삼협하까지 가는 차표 석 장을 샀다. 하지만 안중근이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이토 히로부미가 창춘을 25일 오후 11시에 출발한다는 신문기사의 신빙성이다.

혹 이토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상륙하여 포브라니치나야를 경유하여 하얼빈으로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중근은 유동하를 불러 은밀히 일렀다.

"우리는 이제부터 가족을 맞이하러 남쪽으로 갈 거네.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전보로 우리가 있는 곳을 자네에게 알리도록 하겠네."
"무엇 때문에 전보를 칩니까?"
"하얼빈에 오는 일본 고관 일행 가운데 나의 오랜 친구가 있어. 꼭 만나서 인사라도 나눠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고관 일행이 하얼빈에 도착하는 일시를 묻는 전보를 칠 것이네. 자네는 러시아어 신문을 확인하여 곧장 나에게 그 내용을 전보로 쳐 주게."
"잘 알겠습니다."

안중근은 전보료로 4원을 유동하에게 건넸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세 사람은 유동하를 하얼빈 역에 남긴 채 9시에 하얼빈을 출발하는 남행 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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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얼빈 시가지 ⓒ 박도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역에서 내리다

하얼빈을 출발한 창춘행 열차는 쉬엄쉬엄 달렸다. 열차 안에서 우덕순이 무료함인지 객차 밖 승강대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안중근도 우덕순을 따라 나갔다. 승강대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중근은 안주머니에서 작은 천으로 감싼 총탄을 우덕순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덕순은 그것이 총탄임을 알고서는 안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안중근이 나직이 말했다.

"탄두에 십자가를 새겨 두었어."
"그래?"
"이것을 덤덤탄이라고 하는데 명중했을 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지."
"나도 이걸로 교환하겠네. 이걸로 이토의 심장을 꿰뚫어야 할 텐데."

우덕순이 혼잣말처럼 답했다. 두 사람의 권총은 브로우닝 8연발로 같은 총이었다. 두 사람은 객차 안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12시 13분, 열차가 도착한 지야이지스고 역에서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 조도선이 플랫폼에 있는 역무원에게 물었다. 그는 상하행선 모두 이 역에서 30분 정도는 정차한다고 했다. 조도선이 하얼빈에서 산 삼협하까지 차표를 역무원에게 보였다.

"삼협하에서는 정차하지 않는 열차도 있어요."

역무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침 상행 열차가 지야이지스고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때 안중근이 결단을 내렸다.

"우리 여기서 기다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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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역, 옛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버드나무 고목은 그날을 알고 있을까. ⓒ 박도

제1결행 장소

안중근은 지야이지스고 역을 제1결행 장소로 정했다. 안중근은 지야이지스고 역을 나온 뒤 조도선에게 부탁하여 하얼빈에 남아 있는 유동하에게 전보를 쳤다.

'지야이지스고 역에서 기다린다.'

지야이지스고 역 대합실 매점 안쪽 식당에는 40대 러시아인 부부가 매점과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지야이지스고 역 일대는 드넓은 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으로 안중근 일행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식당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식당 주인 세미코노프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손님들이오?"
"친구 가족이 멀리서 오는데, 이 역에서 기다리기로 하였소."

조도선이 대답했다.

"어느 열차로 오는데?"
"글쎄, 그걸 잘 몰라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플랫폼에서 가족이 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판이오."
"객차 앞에서 뒤까지 세 사람이 달리기를 해야겠군."
"그래야 할 거요."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디서 잘 거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그렇다면 여기 머물러도 좋아. 좁긴 하지만."

유동하의 전보

세 사람은 일단 숙소 걱정은 잊게 되었다. 저녁 무렵 하얼빈의 유동하로부터 전보가 왔다.

'내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온다.'

이 전보는 안중근과 우덕순을 고민케 했다. 그렇다면 <요동보>에 실린'25일 오후 11시 관성자 출발'은 오보라는 말인가? 안중근은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골똘히 거사 계획을 세웠다.

1909년 10월 25일, 세 사람은 아침을 지야이지스고 역에서 맞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을 불러 식당 밖으로 나가 산책하면서 밤새 세운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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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린(옛 하얼빈)공원에 안중근 유묵을 돌에 새겼다. ⓒ 박도

"이렇게 된 이상 두 패로 나눌 수밖에 없네. 나는 하얼빈으로 돌아갈 테니 자네와 조도선은 여기 남아 거사를 치러주게. 중도역과 종착역에서 습격할 기회를 두 번 엿보는 것은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야."
"알겠네. 그런데 조도선에게는 뭐라고 말할 건가?"

"부족한 여비를 마련하러 간다고 둘러댈 참이야. 이참에 사실대로 말해 버릴까?"
"자네가 떠나면 우리 두 사람만 남지. 그 일은 나에게 맡겨주게. 차짓하면 일을 그러 칠지도 몰라."
"고맙네. 자네는 언제나 심지가 깊어."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114쪽~120쪽 발췌 요약정리
- 나명순 ․ 조규석 <대한국인 안중근> 50~57 발췌 요약정리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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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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