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요리책, 절임배추... 국어공부 합시다

'도구' 없거나 부족한 글쓰는 사람, 환골탈태 아니면 미래 없다

등록 2010.10.21 09:50수정 2010.10.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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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1-영부인 요리책>
'나랏돈 1억원 들여 영부인 요리책 발간' 제목의 국정감사 보도기사가 화제(話題)다. 필자는 도대체 '누구의 영부인'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부인(令夫人)'은 '귀부인' '영실(令室)'처럼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단어다.

연결된 기사를 읽어보니 1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 명의로 요리책이 발간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문 등 언론에서 일하는 이들이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일지 못하고 쓰는 경우 중 하나다. '영부인(領夫人)'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영부인께서 이번에 요리책을 발간하신다면서요?"라는 식으로 면전(面前)에서 남의 부인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얘기하는 것이 '영부인'의 바른 사용법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를 부르려면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맞다.

더 존경한다면 '부인님'을 쓰거나, '폐하'를 붙이는 것이 어법상 정확하다. 폐하(陛下)는 '섬돌 아래'라는 뜻으로, 계급을 표시하는 대궐의 섬돌 아래에 꿇어앉아 하늘같은 황제나 황후(皇后)를 우러르며 부르짖는 말이다. 시대적, 정치적으로 적합한지의 판단은 다른 문제다. 또 새로운 요리의 패러다임이 제시되는 것이겠다. 생활문화에 변화의 폭풍이 부나?

<상황 2-일갈>
"한국이 G20 의장국 된 것은 신의 뜻"···하버드대 최고 교수 '일갈'
내로라하는 한 경제신문이 10월 13일 인터넷 판에 올린 머리기사의 제목이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한국이 G20 의장국 된 것이 그렇게 크게 꾸중을 들을 일인가? 일갈(一喝)은 '큰소리로 한번 꾸짖다' 또는 그런 꾸중을 뜻하는 말이다.

제목에 링크(연결)된 기사를 찾았다. 이런 내용을 그런 제목으로 묘사한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것은 신의 뜻"이라며 "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의제로 삼아 적극적으로 국제적 공조를 이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계지식포럼'이라는 자기 신문사 행사에 참석한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이 이번 세계적인 이벤트 G20에서 해야 할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서너 번을 읽어도 한국을 질책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신문의 기자와 편집자들은 무슨 뜻으로 '일갈'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그 단어 속에 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모습의 문맹(文盲)이 늘고 있다. 지식인(?) 사회까지도 그렇다.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들의 크고 작은 차이를 무시한다.

예상(豫想) 예측(豫測) 예견(豫見) 예정(豫定) 예기(豫期) 예언(豫言) 예감(豫感) 예지(豫知) 예단(豫斷) 예고(豫告) 예후(豫後) 예시(豫示), 1타(打)나 되는 이 단순한 단어들의 뜻을 구별해 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말로 먹고 사는 전문가들이, 뉘앙스가 갖는 '언어생태의 뉘앙스'를 잘 모른다. 군인에게는 총, 기자(언론인)에게는 말이 무기다. 연장이다. 연장이 없거나, 좋지 못한 이들은 얼른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상황 3-절임 배추>
김장철, 절여진 배추를 시장에서 산다면 김장 일의 절반은 끝낸 것이다. 요즘에는 산지(産地)에서 아예 절여서 택배로 보내준다. 그런데 이를 신문과 방송에서 '절임 배추'라고 쓴다. 뛰어가는 사람을 '뜀 사람'이라 하지 않고 '뛰는 사람'이라 하듯, 절여진 배추는 '절인 배추'가 옳을 터다. 아니면 '배추 절임'으로 쓰던지.(국립국어원 해석 참조)

한 기자는 "모두 그렇게들 쓰던데요"란다. 어떤 이는 "상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사소한 문제일까?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진실 또는 사실일까?

'세상에서 많이 쓰는 말'이 적합한 언어 아니냐며 융통성을 발휘해 그냥 넘어가자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기자나 학자들까지 이런 부분에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요즘 상황이다. 모두 국가 대사와 같은 '큰 일'에 바쁘시겠지.

소통(疏通)이 누구에게나 화두(話頭)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트위터 하느라 본디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도 한다.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소통을 위한 기본 도구인 자신의 언어가 얼마다 적절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말이 적확하지 않으면 소통에서의 간극(間隙)이나 에러 또한 커진다. 말은 더 모호해 진다. 귀하는 국어사전과 얼마나 친한가?

덧붙이는 글 |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린 글입니다.
#영부인요리책 #절임배추 #일갈하다 #지식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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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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