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한문교육 시킨 가친께 '엿 먹어라'?

서당 열어 고집불통 자식 놈 가르치신 고마움에 평생 감사

등록 2010.11.01 10:27수정 2010.11.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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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님은 우리 집 사랑방에 글방(서당)을 차리고 독선생(獨先生)을 모셔 나에게 천자문부터 한문 글공부를 시작했다.


'완범아! 한문(漢文)공부를 1년만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네 일생에  큰 도움이 될 게다.…'

나는 그때 아버님께서 이르시는 말씀의 진의를 알 리가 없었다. 내 한문 글공부 진도가 궁금하신 아버님은 내 글방에 자주 들러 훈장 할아버님께 한문 학습 태도를 확인하셨다.

"완범이 저 놈, 보기보다 고집불통입니다. 공부에 게으르면 자주 회초리질을 매우해야 할 겁니다."

아버님은 노인이신 훈장님께 회초리로 매우 쳐야(때려야) 공부를 할 거라며, 공부에 게으르면 토막(나무 베개)에 올려 세워 종아리를 치게 하셨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나는 워낙 한문공부를 싫어해, 훈장님은 자주 회초리질을 하셨다. 그때마다 서당 선생님이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으니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니, 언재호야(焉哉乎也)를 하시독(何時讀)고?'이었다. 나는 그 당시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새겨듣지 못했고, 단지 서당 훈장님이 하도 외우시던 말씀이라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그 말씀이 맴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니, 언재호야(焉哉乎也)를 하시독何時讀)고?' 이 말을 풀이하면 천자문의 맨 앞줄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 동안 읽으니, 천자문의 맨 뒷장의 마지막 문장인 '언재호야(焉哉乎也)'를 언제 읽은 것인가?'하는 뜻으로 천자문의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나는 그 말씀이 나에게 한문을 가르치신 훈장님이 지어낸 말인가? 했더니, 인터넷에 올려보니 조선시대 이문원(李文源)이란 사람의 일화에 나온 문장이었다.

내가 얼마나 한문공부를 게을리 했으면 훈장님이 그 주문을 회초리질 할 때마다 외워대 지금도 내 귀속에 박혔을까? 한문 공부에 대한 반항심이 극심했던 나는 회초리 질하는 훈장님께,

"왜, 때려! 재미없는 한문도 공부라고, 밤낮 읽고, 쓰고, 외우라고 호통치며… 제길할… "

노인이신 훈장님께 차마 여기에 적을 수 없는 모욕적인 심한 욕지거리를 하며 대들었다. 화가 치밀어 참다 못한 훈장님이 아버님께 고자질을 하면 아버님은 나를 장작개비로 호되게 다스리셨다. 아버님의 매에 못 견뎌 두 손 싹싹 빌고 울며 또 한문 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하늘 천, 땅지, 가물 현, 누루 황(天地玄黃)…' 주야로 재미없게 같은 글자, 같음 문장만 몸을 흔들어 대며, 계속 읽고 써대니 한문공부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단일 과목인 한문공부만 주야로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웃집 다른 동창 애들은 교복에 중학생 배지를 달고, 영어 알파벳을 외우고 다니는데 주야로 사철 방구석에 틀어 박혀 한문만 외워대니 친구들에게 창피했고, 공부 자체가 얼마나 재미없었으면 그렇게 반항을 했을까?

아버님에게 하도 심하게 매질을 당한 어느 날은, 매를 맞다가 논길로 도망치며 아버님에게 두 팔을 오려 걷어붙이며, 아버님을 향해 '엿먹어라' 외치며 '제 에미 X할, 중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초등학교 2학년도 못 댕겨(다녀) 무식해 가지고…' 하며 아버님에 욕설을 퍼 붙고 내달음질쳤다. 그러나 '구척장신'의 아버님에게 금방 붙들려 정말 다리몽둥이 부러질 만큼 호된 매질을 당했다.

'…아버님, 그 때 일, 정말 죄송합니다.… 그 때 아버님의 가장 아프신 상처를 건드린  불효를 용서하소서…'

지금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에 아버님의 심경을 생각하니 눈물이 솟구친다. '참새가 어찌 봉(鳳)의 뜻을 알리오.' 그 때의 아버님의 큰 뜻을 이제서 알듯하다.
아버님은 어린 시절에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초등학교의 월사금이 밀려 퇴학을 당한 신세이셨다. 그 아픈 속을 건드렸으니 그날 맞아 죽지 않기 다행이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서양 속담과 같이 그 시절 내가 하도 한문공부를 싫어하니 1년간 억지 한문 공부를 시키고 다음해엔 중학교에 진학을 시켰다. 한문을 배우고 중학교에 입학하니 한문 과목은 오히려 한문 선생님  못하지  않은 실력이었고, 국어도 만점, 독해능력이 뛰어나니 다른 과목의 성적도 뛰어났고, 학습 성적이 뛰어나 그 후 도시의 명문 고등학교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나는 한문 수학 1년 만에 중국의 사마광이 지은 역사서인 '통감(通鑑) 초권'까지 공부했으나 하도 엉터리 공부를 해, 실력이 달려 어디 가서 '한문 수학'을 했다고 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천자문 뒤에 배운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첫 줄인 '天地之間 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니라'를 겨우 외우고, 지금도 천자문 책을 보아도 훈(訓)을 모르는 한자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훈장 어른이 늘 내 귀에 대고 외치던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니, 언재호야(焉哉乎也)를 하시독(何時讀)고?'는 그때처럼 뇌리에 생생하다.

우리말의 어원 7할(70%)이상이 중국 한문에 근원을 두고 있다. 한 예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말이 한문에 어원을 두고 있음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야단법석은 원래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야외에서 베푸는 설법(說法)을 말하는데, 법당에서 엄숙한 가운데 조용히 해야 할 설법을 야외에서 하니 주위가 산만해 떠들고 소란한 상태를 이른다.

어린 시절에 한문 공부를 해두면 장래 학습에 큰 명약이 됨을 내가 체험적으로 배워 안다. 평생의 어문(語文)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한문공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억지로 한문공부를 시켰고, 고등학교 교사생활 시절엔 학생들에게 한문 보충 수업을 열심히 시켜 그 때의 제자들이 늘 고마워한다.

중앙 언론사에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영어엔 서툰 나지만 그래도 어줍지 않은 한문 실력으로 체신을 지켰다.

'저승에 계신 아버님! 못난 이 자식을 용서하시고, 막심한 불효를 이제서 용서를 빕니다.'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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