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나무

등록 2010.11.02 10:36수정 2010.11.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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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20여 년에 걸친 고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는 고향으로 귀향하셨습니다. 밭농사는 물론 뒷뜰 텃밭에 온갖 과실 나무와 버섯, 더덕, 도라지, 꿀벌, 심지어는 미꾸라지까지 키우시며 농촌 생활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의 일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사과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 이게 웬 사괍니까?"라고 하자, "재작년에 몇 나무 심어 봤는데 올해 좀 열렸구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 전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상경할 즈음, 아버지의 땀과 한이 서려 있는 과수원밭을 처분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으셨는지 귀향 후에도 사과나무만큼은 심지 않으셨는데. 한 그루 한 그루 세어 보니 다섯 그루의 사과나무에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것들도 있었지만, 두어 그루에는 추석 무렵 제삿상에 올려도 될 법한 제법 빛깔좋은 놈들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아버지, 진작에 심지 왜 이제서야 심으셨어요?" 물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아버지께서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꼬, 안 심으려다가 재미삼아 몇 나무 심었는데, 내년에는 몇 나무 더 심어봐야겠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늘상 푸념으로 하는 표현이지만 그날 아버지의 그 한 마디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원래부터 농삿일에는 재주가 없었던 아버지였던 만큼 홀로 귀향을 결정하고 농삿일을 다시 하시겠다라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 이메일, 블로그를 배우시겠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아니 그거 배워 봐야 방문자 한 명도 없을 텐데 괜한 고생하지 마시라"고 가족 모두가 쌍수를 들고 만류하였지만 고집을 굽히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인터넷과 이메일, 포토숍까지 보란듯이 배우고 블로그까지 운영하며 즐거운 촌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일평생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당신인데, 내 손으로 노년의 즐거움을 찾아드리지 못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경진대회와 포토숍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타시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동료 친구분과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블로그를 꾸미고,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으로 통한다며 자랑하시는 아버지. 그래서 술도 자주 얻어 먹는다며 "야 이놈들아...너그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나는 한다. 내가 이 지역에서는 최고다, 최고..."하며 좋아하시는 아버지.

일평생 저렇게 유쾌하고 행복해하고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그 즐거움을 누릴 시간이 그렇게 많지만은 않다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울컥해집니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즐겁고 유쾌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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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버지의 한과 땀이 서려 있는 사과나무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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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들녘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초여름 들녘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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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 홀로 오른 아버지 2009년 여름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 홀로 오른 아버지 ⓒ 김영길

#아버지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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