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장소, 낙조대? 이건 아니잖아

선운사 단풍에 취하다 놀란 가슴

등록 2010.11.11 10:34수정 2010.11.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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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단풍 ⓒ 조인환


늦가을 하늘은 푸르고 들판엔 오곡이 영글어가며 산과 봉우리는 오색의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풍요와 아름다움의 계절에 고창 선운산을 찾았다.

선운산은 인근의 내장산, 변산, 두승산, 모악산 등과 함께 전북의 이름난 산행 명소로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탄닌 성분이 많아 검은 빛을 띠는 도솔천을 따라 단풍나무 숲을 지나는 평탄한 산책코스를 따라 도란도란 걷다 보면 시름을 잊고 평상심을 찾을 수 있어 좋다.


수백 년을 도솔천과 함께 했을 단풍나무, 느티나무의 뿌리를 드러낸 모습이 이채롭고, 단풍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은은한 산란광이 선운산을 찾는 이의 심신을 위로하는 듯하다.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녹음과 물들어가는 단풍이 여유와 쉼의 시간 속에 녹아드는 곳이다. 도솔천에 수북이 쌓이고 흘러가는 붉은 단풍잎은 이른 봄의 동백꽃이 그러하듯 땅에 떨어져서도 붉은 빛이 선연하다.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까지 이르는 코스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천연기념물인 장사송이 세인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녹차밭과 꽃무릇 군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어 산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늦가을이어서,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한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일명 상사화(꽃무릇)의 꽃은 지고 새순같은 초록잎만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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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계곡 일원 ⓒ 조인환


도솔암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볼 수 있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상도솔이라 불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이른다. 내원궁 우측 암벽을 조금만 오르면 구름 위에 오른 듯한 느낌의 시원한 수직암벽 평바위가 계곡들 사이로 솟아, 단아하면서도 독특한 풍광이 펼쳐진다. 이곳이야말로 전국 어느 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선운산 만의 진수로 도솔계곡 일원이 2009년 문화재청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도솔암에서 낙조대-천마봉 코스로 들어서니 부안의 채석강을 산중에 옮겨 놓은 듯한 거대한 퇴적암벽 사이를 지나서 용문굴에 닿게 되는데 과연 신비한 천국문에 다다른 느낌에 잠시 '멍'하는 기분과 함께 경사를 감안하여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용문굴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아마도 수천 년 전에 이 암굴에서 사람이 거주하며 고창의 고인돌 거석문화를 일구어 갔을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고창의 산수와 고인돌 문화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발상을 하며 낙조대를 향하니 저만치 정상 부근에 턱 하니 심상찮은 암봉이 나타난다. "낙조대다!" 정상을 향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가뿐 숨과 함께 멋진 전망과 일몰을 기대하며 낙조대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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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대 ⓒ 조인환


안내문이 보인다.

<최상궁 자살장소 낙조대>

"뭣여! 이것이…."

낙조대에서 일몰 방향으로는 천길 낭떠러지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 끝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상궁의 자살 장면을 촬영하기에 적합하기도 했겠다. 하지만 안내문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자살장소>를 강조하여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 점, 낙조대(落照臺)의 형용사 격으로 인식되어 <어떠어떠한 낙조대>로 보이는 점, 낙조대의 경점(景點) 의의와 조망에 관한 안내가 전무한 점, 안내판의 관리상태가 소홀한 점 등이다.

굳이 안내문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무례한(?) 안내도 안내지만 도립공원 안내지나 포괄적인 드라마 촬영지 홍보방식으로도 충분할 것을 <석양의 공포 분위기>를 통해 아름다운 낙조대의 위상을 격하시킬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부모와 함께 어렵사리 산정에 오른 어린 아이들에게 '자살장소=낙조대'로 인식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으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꼴이다. 천마봉을 거쳐 하산하는 길에는 만월대와 선학암을 비롯하여 선운산의 아름다운 비경들이 원경으로 펼쳐지며 가을을 재촉하는 듯 물들어가고 있었다.
#선운산 #낙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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