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분양' 이명박의 "소망을 빌어봐"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빛과 그늘③] 현대아파트가 태동시킨 '소망교회'

등록 2010.11.19 16:44수정 2010.1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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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부동산의 강남불패 신화를 탄생시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아파트가 처음 분양된 지 35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0년대에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탄생하면서 강남 특권층, 부동산투기, 8학군 및 위장전입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현대아파트 35년을 맞아서 압구정동으로 대변되는 강남개발의 역사, 이 지역의 부동산 실태, 현대아파트 재건축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김준희, 최육상 두 명이 공동 작성, 총 4편으로 구성했으며 각각 교육문화, 사회, 정치, 경제를 중심으로 접근했습니다.... 기자주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강북 옥수역에서 강남 압구정역으로 한강을 건너며 바라본 압구정 현대아파트. 바로 옆은 동호대교. ⓒ 최육상


'아, 예전에는 정말 깨끗하고 멋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낡았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던 웅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의 흔적은 현대아파트에도 어김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비까지 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페인트가 다 벗겨진 아파트 외벽은 음습한 기운을 뿜어냈다. 아파트 창문에 더덕더덕 조그맣게 붙어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압구정동에 대한 나(최육상)의 첫 기억은 1985년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남구 논현동에서 살던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강남에서 다녔다. 그때 친구들은 집이 먼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논현동, 신사동, 반포동, 대치동, 압구정동 등에 살았다. 친구들은 규모가 큰 단독주택에도 많이들 살았지만 상당수는 아파트에 살았다.

어느 날 놀러간 친구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 안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아파트 내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정확하게 몇 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내가 본 아파트 중에서는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첫 기억이다.

부와 개발의 상징이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공개하라', '현대그룹 기업공개촉구' 등을 1면에서 전하고 있는 <경향신문> 1978년 8월 12일자 기사 ⓒ 경향신문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75년 3월 제 1차 사업을 시작한 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중반 강남의 아파트 분양과 투기 열풍을 이끌었다. 1970~80년대 강남에서 이루어진 개발성장의 왜곡된 단면을 보여주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일컬어지던 '현대건설 이명박 대표이사'(1977~1988년)의 건설 역정과도 궤를 같이 한다.

1978년, 현대아파트는 특혜분양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향신문> 1978년 9월 2일자 기사를 보자.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 2차 수사를 펴온 서울지검 특별수사부(도태구 부장검사)는 2일 2차 수사대상 6백 55가구 가운데 ▲ 2채 분양자 1명 ▲ 전매자 1백 41명 ▲ 임대 35명 등 투기성 분양대상자는 모두 1백 77명으로 밝혔다.

검찰은 당초 사원에게 분양된 2백 91가구분을 제외하고 특혜분양된 것으로 알려진 3백 64가구분에 대해 수사를 폈었다. 검찰은 이번 조사결과 특혜분양을 받지 않았는데도 특혜를 받은 것처럼 잘못 알려진 공직자가 16명이라고 밝히고, 조사 대상자 중 1백 87명은 실수요자로 밝혀졌다."

현대아파트 사건은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인 한국도시개발이 무주택 사원용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정·관계, 검찰, 언론계 인사 등에게 특혜 분양해 1978년 7월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한국도시개발은 1977년 6월 현대아파트 1512가구를 건설해 952가구를 사원용으로 특별 분양한다고 해놓고는, 정작 사원들에게는 291가구만 분양하고 나머지는 차관급 1명, 전직 장관 5명, 국회의원 6명 등 고위공직자 150명과 회사 간부의 친인척들에게 안겨줬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당시 현대건설 이사 신분으로 현대아파트를 특혜분양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7년 7월 19일자 <서울신문>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및 친·인척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의혹 상황도'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자세하게 전하기도 했다.

2007년 7월 19일자 <서울신문>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및 친·인척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의혹 상황도'를 자세하게 보여줬다. ⓒ 서울신문


"한나라당 이명박(66) 대선 경선 후보와 그의 친형 이상득(72) 국회 부의장, 장인 김모씨 등이 1978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77년 분양 당시 대상자가 아니었음에도 무주택 사원용으로 할당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이 후보는 이 아파트에 전입한 적이 없었고 대신 이 후보의 재산 관리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처남 김재정(58)씨의 아내 권모(50)씨가 전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후보는 93년 국회의원 재산공개 직전 이 아파트를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아파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성장한 '소망교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람들 입에 숱하게 오르내린 '소망교회'이다.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라인'의 중심축을 맡은 소망교회는 현대아파트 맞은편 성수대교 남단의 신사동에 소재하지만, 교회의 역사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비롯됐다.

'공감대 높은 차분한 설교' '교수만 2백명, 장년층 95% 대졸' 등 '소망교회'의 급성장 내용을 전한 <경향신문> 1986년 2월 7일자 기사 ⓒ 경향신문


1986년 2월 7일자 <경향신문>은 소망교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소망교회 신도들은 외형적으로 무척 화려하다. 우리나라 교회 중에서는 1급의 교육수준을 토대로 현직 장관·국회의원 15명, 대학교수 2백 명에 달한다. (중략) 소망교회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외부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설왕설래가 싫기 때문이다.

소망교회는 77년 현대아파트에 사는 한 신도의 집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주변에 교회가 없었기에 신앙의 갈증을 느끼던 몇몇 신도들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생겼다. (중략) 78년 현대종합상가 3층에 교회를 마련했고 81년에는 이 교회 신도인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의 노력으로 현재의 교회당이 완공됐다. 처음 10여 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놀라운 속도로 쾌주해 온 셈이다."

현대아파트 맞은편 신사동에 위치한 소망교회의 십자가가 높이 뻗어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들의 현재 소망은 무엇일까. ⓒ 최육상


현대아파트가 들어선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 현대아파트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단지 내 몇몇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48평형 이상은 60~70대 노인들이 실제 거주하는 비율이 높지만, 48평형 이하의 절반 정도는 젊은 부모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전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30여년 전, 현대아파트 분양 열풍과 함께 투기 대열에 동참했던 30~40대는 이제 노후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들은 강남의 땅값과 아파트값을 올려놓은 장본인이었지만, 이제는 큰 이득보다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 번 쌓은 부를 놓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래서 '강남보수층'을 대변하는 이들의 정치성향은 극단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계급의 보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난 6월 2일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강남보수층의 현실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개표 막판 '강남표'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따돌리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오세훈 후보는 208만6127표(47.43%)를 얻어 205만9715표(46.83%)를 얻은 한명숙 후보를 불과 2만6412표 차이로 이겼다.

오세훈 후보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중구, 용산구, 영등포구, 강동구 등 모두 6개 구에서 한명숙 후보를 앞섰으면서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여기에는 이른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역할이 컸으나, 그 중에서도 돋보였던 건 단연 강남구의 선전(?)이었다. 강남구의 주민들은 오세훈 후보에게 13만8390표를 몰아주며 7만9094표에 머문 한명숙 후보와 5만9296표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 이는 두 후보 간 총 득표수 차이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현대아파트 속의 새로운 강남 보수층

현대아파트 53평 도면. 침실이 모두 5개인데, 주방 옆에 딸린 조그만 침실이 눈에 띈다. 이곳은 1970~80년대에 식모방·가정부방으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 부동산114

최소 평수인 30평대 매매가가 12억 원을 넘나들고, 최대 80평대가 40~50억 원을 호가하는 현대아파트에서 살아갈 수 있는 30~40대는 그리 많지 않다. 단지 내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평수 대별 주거민 분석을 종합해 보면, 현대아파트에서 나고 자랐을 30~40대는 어느덧 결혼을 해서 이곳의 부모님 곁을 많이들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현대아파트와 소망교회에서 인맥을 쌓으며 강남 8학군의 교육열을 빌려 신분상승을 꾀하는 또 다른 30~40대가 파고 든 듯하다. 아마도 이들 새로운 30~40대는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을 모두 풍요롭게 만끽할 수 있는 강남보수층으로 변신하며 아래와 같은 꿈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아파트 대형 평수에 살며, 아빠는 고위공직자로 일하러 가고, 엄마는 현대백화점에서 명품을 쇼핑하고, 아들과 딸은 현대고등학교로 등교하고, 대학생인 큰 아들은 오렌지족이 되어 로데오 밤거리를 찾는 삶과 같은 꿈.

혹, 이들의 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대기업 대표이사에 올랐던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아파트를 바탕으로 소망교회를 오가며 '성공 신화'를 쓴 것처럼 말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동호대교(왼쪽)와 성수대교를 끼고 한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동호대교 아래쪽에 현대백화점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아래에는 소망교회가 있다. ⓒ 네이버지도

#압구정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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