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가 끓인 수제비, 그 맛이...

세월이 담긴 어머니의 수제비, 나는 잠자코 먹기만 했다

등록 2010.11.24 10:46수정 2010.11.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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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둘 있는데 하나는 꽁치 통조림 냄새고 다른 하나는 수제비 끓는 냄새다. 꽁치 통조림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근처에서 재수학원을 다니며 혼자 자취할 때 상한 꽁치 통조림을 먹은 탓에 설사와 복통 곽란이 며칠 동안 계속되면서 부터다. 수제비는 역사가 더 길고 내력은 깊다.


그 수제비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맛으로 만나게 된 때가 4년여 전이다. 그때까지 내 코 끝에 걸려있는 수제비는 시큼한 신 김치 냄새부터 풍기는 것이었다. 김치에서 우러난 벌거레한 국물이 입맛을 싹 가시게 하던 수제비는 여름이 시작되는 늦 봄부터 시작 해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소년의 허전한 뱃속을 채워내는 일용할 식단이었다. 그러고 보면 반세기 가까운 세월 저 건너편이다.

수제비 그릇을 앞에 두고 숟가락만 만지작거리면서 입술을 쑥 내밀고 불퉁하게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안 쳐 묵을 꺼면 쳐 묵지 마라. 배때지가 부릉께 지랄이지 수제비 몬 뭉는 사람도 쌔고 쌨다."

순식간에 내 수제비 그릇이 압류 당하면 으앙 하고 울어 제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표시였다. 밥상 앞에서 우는 거는 죽은 사람 앞에서나 하는 짓이라면서 부지깽이를 높이 치켜들고는 골목 밖으로 나를 내쫓는 게 어머니 고유의 역할이었다.

도시에서 여차저차 건강식이 어떠니 별식이 어떠니 하는 무리들과 섞여 어쩔 수 없이 우리밀수제비 집에라도 갈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화인과도 같은 그때 그 시절의 수제비. 그것을 일컬어 나는 '어머니표 수제비'라 한다. 내 유년 시절과 시골의 농가, 가난한 집안의 살림을 맡았던 우리들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함께 스며있는 고유명사다.


4년 여 전 어느 날이었다. 그때 역시 솜털구름 같았던 봄날은 자취를 감추고 후끈한 한낮의 기온이 여름을 예고하는 때였다. 전문특허와도 같았던 '어머니표 수제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홀출했다. 어머니가 직접 끓이시고 어머니가 직접 감자 토막을 만들었다. 상도 어머니가 차렸다. 저작권으로 따져도 어김없는 '어머니표 수제비'가 맞다. 저작자는 같되 작품의 질은 전혀 달랐던 수제비.

당시, 치매와 고관절 수술로 10여년 이상 방 안에 들어앉아 해 주는 밥만 받아 자시던 어머니가 손수 밥상을 차리신 것인데 그게 수제비였다. 마루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진 밀가루봉지와 도마, 칼, 물 그릇, 죽염, 마늘, 풋 호박 등.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어머니가 흐트러진 기억과 어줍은 손놀림으로 옛 영화를 재연하듯 수제비를 만드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시도를 하는 중이었다.

도열한 군속들을 장악한 장군처럼 어머니는 호기롭게 팔뚝을 걷고 앉았다. 어머니는 거침없이 일을 시작하셨다. 밀가루 반죽부터 하셨다. 떠다 드린 대야 물에 손을 씻으신 어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면서 실타래처럼 풀어내신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도마 위에 올려놓은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 때였다.

"뭉뚱하게 밀믄 안돼. 미룽지 처럼 얄푸락하게 밀믄 입에 넣고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에서 잡아땡기는지 그냥 미끄름 타득끼 넘어가삐는 기라."
"보리타작하기 전에 그때는 먹을 끼 있어야지. 수제비 떠서 신 김치 넣고 푸욱 끓이믄 내금이 온 동네에 퍼져서 지나가던 사람도 '항그럭 주소' 하고 오고 앙 그랬나."

50년 60년 전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또렷한 기억력으로 말씀도 또렷하게 또렷한 눈빛까지 곁들여 치매3급 노인답지 않는 음색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놓으셨다.

육수 물을 부엌에서 만들어 와 마루에 놓인 휴대용 버너에 큰 냄비를 얹고 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감자를 썰어 냄비에 넣으셨다. 어떤 조각은 깍두기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얇기가 절편 같았다. 냄비에서 감자 익는 냄새가 나자 어머니는 "감자가 살짝 물크러져서 국물이 잠방잠방할 때까지 불을 더 때라"고 하셨다. 나는 아궁이에 나뭇가지 더 밀어 넣듯이 불을 키웠다.

한참 후 됐다 싶었는지 어머니가 수제비를 떠 넣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보릿대를 집어넣으면 가랑잎처럼 금방 발등에까지 불이 기 나와서 고무신은 눌어붙지, 연기는 또 어찌 매운지 눈을 뜰 수가 있나. 등에 업은 아는 울지. 큰 놈은 배고푸닥꼬 몸빼 바지 붙들고 칭칭거리지."
"등에 업힌 놈이 오줌을 싸서 등짝이 뜨끈뜨끈 하고 그기 허벅지로 흘러내려도 옷 치낄 새가 오댄노."

이때 내가 추임새를 넣었다.

"어무이. 누가 오줌 쌌어요? 누가 어무이한테 업혀서 오줌 싼는대요? 나는 아니죠?"

혐의를 벗고자 한 어리석은 내 시도를 간파했는지 어머니는 좀 잠자코 이야기나 들으라는 식으로 힐끗 나를 쳐다보시기만 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너가부지는 마루에 앉아서 빨리 밥상 가져오라고 소리는 지르지. 수제비 떠 넣다 튀는 국물에 손등이 데이고 콧물인지 눈물인지 솥에 떨어져도 옷소매로 코 닦을 새도 없어따 아이가."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장사익 선생이 부른 노래 '삼식이'도 비슷하지 않은가. 소낙비는 내리고, 업은 애기 보채고, 허리띠는 풀렸고, 광우리는 이었고, 소꼬뺑이는 놓쳤고, 논의 뚝은 터졌고, 치마폭은 밝히고, 시어머니는 부르는데 똥마저 마렵다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나무 숟가락으로 냄비의 수제비를 저었더니 이를 놓칠 새라 어머니의 작업지시가 떨어졌다.

"살살 저서. 안 뭉치고로 살살 저서라. 뭉치 삐믄 올라 붙어서 떡이 되는 기라."

냄비가 뻑뻑해져서 수제비 그만 넣었으면 했는데 남겨 두기 어중간하다고 어머니는 반죽을 다 떼어 넣으셨다. 그때마다 나는 계속 물을 한 컵씩 냄비에 더 넣어야 했다. 간장을 가져다 드렸더니 어머니는 뚜껑도 열지 않고 "이거는 맛대가리 없는 기라. 집 간장 엄나?"고 하셨다. 내가 "조선 간장요?"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어머니 레퍼토리가 달라졌다. 메주 띄워서 간장 담그는 이야기로 넘어 간 것이다. 우리는 한참 동안 간장을 담았다. 우리는 수제비도 만들고 간장도 담는 추억의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몇 번 간을 보신 어머니가 "먹자"고 하셨다. 아쉽게도 '어머니표 수제비'는 여기서 끝났다.

이렇게 만든 수제비를 내가 먹지만 않았어도 내 기억 속 궁핍의 상징이었던 수제비는 화려한 변신을 해서 아름다운 건강식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우리는 큰 대접에 수제비를 퍼서 먹었는데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을 때다. 완전히 소금 덩어리였다. 밀가루와 똑같이 생긴 죽염가루를 얼마나 넣으셨던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입을 딱 벌린 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안중에는 내가 없었다. 후후 불어가며 수제비를 연거푸 입에 떠 넣으셨다. 국물 하나 없이 한 그릇을 싹 비우신 어머니는 한 그릇 가득 또 퍼 담았다.

이런 판국에 내가 어쩌랴. 그동안의 불효를 만회한다는 심정으로 나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목구멍이 저린 듯 했지만 어쩌겠는가. 십 수 년 만에 자식 밥상을 차린 어머니 앞에서 세상 자식 그 누구라도 나와 같았으리라.

"맛있재?"

어머니 말씀을 처음에는 못 들었다. 인생의 짠맛에 정신이 홀라당 빼앗긴 나는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맛있재? 우리 내일도 수재비 끄리묵자."

내일도 수제비 해 먹자는 말에 비로소 내 귀가 열렸다. 아니, 내일도 소금국에 밀가루 반죽 익혀 먹자고요? 아니 되옵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차마 맛있다는 거짓말은 할 수가 없고 내일도 이토록 짜디짠 인생의 맛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때 그 시절 김과 연기와 눈물 콧물이 자욱한 수제비 솥 위에 엎드렸던 어머니처럼 나도 근 반세기만에 부활한 '어머니표 수제비' 그릇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때 그시절 어머니가 잠자코 일만 했듯이 나도 잠자코 먹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대학교 '맛기행' 단행본에도 실릴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주대학교 '맛기행' 단행본에도 실릴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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