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또 다른 '전태일', 이주노동자

등록 2010.11.24 17:55수정 2010.11.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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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회는 전례력으로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간 모든 영혼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그 길이 어느 길인지 상기시킨다.

 

이러한 때에 얼마 전 어느 부고 소식을 접했다. 10월 29일, 베트남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건물 2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꾸안씨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단속을 피하려다 의류공장 2층의 4미터 높이 창틀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사한 것이다. 이날 다른 노동자 2명도 붙잡혀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었고 이 중 1명은 강제출국 조치되었다. 여기저기 온통 G20에 대해 모든 미디어가 동원되고 있을 때 꾸안씨 사고는 아주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0년대 송출국이었던 한국이 88년 이후 유입국이 되면서부터 많은 아시아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희망을 안고 들어왔으나 대부분 '불법 체류자', '실업증가의 주범'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쓴 채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마저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꾸안씨 역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2002년 8월 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서 결혼도 하여 생후 4개월 된 아이를 두고 있으나 이들 부부 모두 미등록 신분이어서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실정이다. 꾸안씨가 꿈꾼 코리안 드림은 피지도 못하고 스러지고, 기회의 땅은 절망의 땅으로 변하고, 이제 남겨진 부인 응웬씨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이다.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약 74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 중 꾸안씨를 포함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8만~19만 명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국내외의 지탄을 받던 '산업기술 연수생제도'가 종식되고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났으나 이 역시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노동자 대부분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습적 임금체불 및 폭행과 차별, 열악한 환경노동에 처하는 것은 노동자를 생산수단의 일부로만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좀 더 잘살기 위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하는 순간 '미등록=불법체류자=범죄자'라는 인식을 받으며 무차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꿈의 땅, 기회의 땅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고된 노동과 따가운 시선, 강제출국의 큰 두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이곳이 그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고단한 생활,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이루어질 희망의 꿈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해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이름, 그들이 바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이다. 노동자의 기본권리마저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이 시대의 또 다른 전태일이다.

 

G20이라는 국익이 우선시되는 반인권적 단속 만능주의로 인해 젊은 이주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린 꾸안씨의 경우는 또 다른 전태일의 죽음이다. 범죄자도 노동기계도 아닌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이곳이 과연 꿈의 땅이라 불릴 수 있을까? 이들의 슬픈 현실에 우리 사회가 삶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의식과 태도는 다분히 반 인권적이다.

 

꾸안씨의 죽음을 인권의 문제로 본다면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제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방치될 경우 사회로부터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G20으로 국가의 선진사회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국제적 인권규범 준수의 위상까지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꾸안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한국인의 의식 변화가 요구된다. 차별이 하루아침에 근절되지는 않겠지만 만리타향 머나먼 곳에서 자신의 가족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던 그들의 희망과 꿈이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가 희망과 용기의 손길을 내밀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싹이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꾸안씨의 명복을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김영미(엘리사벳) 님은 천주섭리수녀회 소속 수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1.24 17:55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영미(엘리사벳) 님은 천주섭리수녀회 소속 수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이주노동자 #소수자 #미등록 #강제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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