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하'... 내 공무원 면접점수표 까봤더니

[7급시험 불합격기] 탈락자도 납득할 수 있는 투명성 아쉬워

등록 2010.12.03 14:18수정 2010.12.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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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있었던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 문제지. 과목별로 틀린 문제의 개수와 평균을 계산한 낙서가 보인다. ⓒ 원석연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고 좋은 직장이 줄어들면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5급 공무원은 예전부터 출세와 신분상승의 길이었지만 요즘은 7급이나 9급 공무원 자리도 어지간한 대기업 취업 못지않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엔 각종 공무원 시험 최종 합격자가 결정되고 그들은 이따금 '합격기'를 남깁니다.
올해 4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공무원 시험을 몇 번 봤습니다. 지난 10월, 충청북도 일반행정직 7급 필기시험에 붙었는데 그만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최종 선발인원은 1명이었고 필기시험 성적순으로 뽑힌 2명에 포함되어 면접을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흔히들 쓰는 합격기 대신 이렇게 '불합격기'를 씁니다.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면접시험 불합격기' 입니다.


11월 12일 면접시험날. 잘 봤다고 생각해 내심 합격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면접을 잘 봤다고 왜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2대 1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제 경쟁자가 저보다 면접을 잘 봤으니 제가 떨어졌겠죠.

많이 실망했고 기대와 다른 결과에 약간 당황했지만, 결과를 부정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면접 전 그리고 면접에서 떨어진 후 주위에서 들려 온 이야기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도청에 아는 사람 없니? 잘 봐달라는 청탁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일단 네가 시험 본다는 사실을 알릴 사람을 찾아봐라.'
'면접관이 누군지 알아봐라, 지역사회는 다 연이고 줄이다.'  
'정부시책에 부정적인 내용은 절대로 말하지 마라. 무조건 정부 만세, 공무원 만세, 해라.'
'평소 네 생각 그대로 말하면 당연히 떨어진다. 무조건 반대(?)로 말해라.'

'왜? 네가 뭐가 부족해서 떨어지냐? 뭔가 있는 거 아냐?'
'뻔해, 뻔해, 너 들러리 선거야, 바보야!'
'내가 뭐랬어,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알아보랬잖아!'
'지역사회는 다 줄이고 '빽'이야, 이 순진한 놈아'

이런 말들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 또 저를 위로하는 마음에 세속적인 단어들을 과장해 마구잡이로 사용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 시험'은 어떤 과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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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모습으로 면접에 임하고 있는 학생들. ⓒ 취업정보센터


실망스런 마음을 추스른 후, 면접시험 채점표를 확인하기 위해 충북도청 총무과를 찾았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저의 불합격에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비록 불합격했지만 특별한 결격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합격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했다는 의례적인 말로 대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채점표 확인이 왜 안 되는지 묻고 '혹시라도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하거나 별도로 정보공개 신청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확인을 허락했습니다. 귀찮고 번거로운 청을 들어준 담당 공무원께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막상 채점표를 확인하니 불합격 사실을 확인했을 때보다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고 몇 가지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처음 봤기 때문에 공무원 면접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충북의 경우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1월 12일 충북도청의 면접시험을 복기해보면 이렇습니다. 면접일 전에 몇 가지 서류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시험 당일 사전조사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전조사서 질문은 봉사활동 경험 여부와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 그리고 공무원 조직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었습니다.

기억에 의존한 거라 약간 착오가 있을 수 있으나, 면접에서 자기소개서나 사전조사서와 직접 관련된 질문은 없었습니다. 면접은 한 사람씩 개별 면접으로 진행되었고 한 명당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세 명의 면접관에게 열 개가 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식을 묻거나 응시자의 의견과 판단을 묻는 것이었지요.

대부분 잘 대답했다고 '착각'했습니다. 특별히 부담스러운 질문이 없었고 당황하거나 말을 더듬은 적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야 된다는 생각에 다소 장황하게 말한 면이 있습니다. 영어 질문은 세 개 있었는데 질문자의 의도와 최종 질문은 알아들었지만 복잡한 생각을 영어로 능숙하게 표현할 실력은 없었기에 간단히 한 문장만 영어로 대답하고 보충설명은 우리 말로 얘기했습니다.

이미 20일 정도 지난 일이라 약간의 착오와 누락이 있겠지만 면접관들의 주요 질문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학 전공 관련 질문으로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를 설명하라', '본인 대리인 이론을 설명하라', 영어 질문으로 '공직자로서 필요한 자격요건은 무엇인가', '한미 FTA 관련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미국 소고기 수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고위 공무원으로 짐작되는 면접관으로부터는 '공무원으로서 어떤 포부가 있는가', '충청북도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알고 있는가', '충청북도 남부 지역과 관련해 추진할 정책과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가', '공무원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면접시험을 좋게 말하면, 전문적 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면접관들이 응시자를 평가하고 선별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절차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객관적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면접관의 개인적 성향과 편견이 주관적으로 난무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면접관들의 의견이나 평가가 있어야 할 평가표는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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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찾아낸 면접시험 평정 요소. 실제 충청북도에서 사용한 채점표는 내용과 형식상 큰 차이 없지만 표의 형태는 조금 다르다. ⓒ 인터넷 갈무리


채점표의 평가항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국가직 면접시험 평가항목을 찾았더니 다섯 항목이었습니다.

1. 공무원으로서의 정신자세
2.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3. 의사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4. 용모 예의 품행 및 성실성
5. 창의력 의지력 기타 발전가능성

앞의 네 가지는 충청북도에서 이용한 항목과 약간 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 항목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제가 바로 그 항목에서 면접관 세 명 모두에게 '하'를 받아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이렇습니다. 두 사람이 면접시험을 보았을 때, 경쟁시험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점수를 매겨 더 높은 점수의 사람이 합격합니다. 면접 채점표를 확인하기 전에는 저도 제가 조금 낮은 평가를 받아서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채점표의 내용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평가항목 중에서 세 명의 면접관 모두가 저의 창의력, 의지력, 기타 발전가능성을 '하'로 평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명의 상대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면접응시자가 단 한 명이었다 하더라도 불합격했을 겁니다. 왜냐면 창의력, 의지력, 기타 발전가능성을 면접관 모두가 '하'로 평가해 결격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충북도청 소속 공무원으로 받아들이기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얘깁니다.

곰곰 생각해 봅니다. 면접관들은 30분 동안에 나의 창의력과 의지력과 발전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 평가항목과 관련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눈빛과 태도와 표정에서 창의력과 의지력과 발전가능성 부족을 어떻게 알아챘을까? 물론 제가 창의력도 많고 의지력도 강하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 가지 항목 중에서 '하'로 평가 받은 것은 그 항목이 유일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 항목은 '상' 아니면 '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면접관에 따라서는 '상'으로 평가한 항목이 더 많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명의 면접관 모두가 제일 마지막 항목인 의지력, 창의력, 발전가능성 항목을 똑같이 '하'로 평가해 저는 탈락했습니다.

곰곰 생각해봅니다. 혹시 30개월 이상의 소고기 수입은 조금 신중히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 대답이 거슬렸을까? 공무원 노조는 일반 사기업체의 노조활동과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전제 하에서라면 공무원 노조의 활동에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는, 나름대로 조심한 대답이 거슬렸을까?

이미 30대 후반인 나이를 생각했을 때 고위공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따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이 발전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줬을까? 제 나이가 조금 많은 편이지만 면접 결과와 나이는 상관 없을 겁니다. 왜냐면 저와 경쟁해서 합격한 분의 나이가 저보다 한 살 더 많았으니까요. 곰곰 생각해 볼 문제는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면접시험 채점표는 한 장이 아닙니다. 각 항목별로 상중하를 평가해서 표시하는 첫 장 뒤에는 비슷한 양식의 다른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일종의 보조 평가표인데 각 항목별로 면접관이 상중하 점수를 부여한 근거나 이유 등 특이사항이나 참고사항을 적을 수 있는 여백을 가진 표입니다.

처음에는 채점표를 보여준 총무과 공무원이 그 뒷장을 안 보여 주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보자고 해서 그 뒷장도 확인했습니다. 항목별로 상중하 점수만 표시된 채점표와 달리 보조 평가표에는 제가 수긍하고 참고할 수 있는, 면접관들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가득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보조 평가표는 깨끗했습니다. 뭔가 참고할 만한 면접관들의 의견이나 평가가 거의 없더군요. 그저 몇 문장이 연필로 혹은 볼펜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면접관 세 명이 모두 '하'로 평가한 항목과 관련해서는 단 한 글자의 추가적인 설명이나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탈락자도 납득할 수 있을 투명하고 정교한 과정 아쉬워

결과를 부정할 생각도 없고 부정할 방법도 없습니다. 필기시험에서 영어 90점 받은 사람보다는 영어로 의사소통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필기시험 성적이 높은 사람을 뽑기 보다는 다양한 면접기법을 통해 그 사람의 잠재력과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공무원 시험에서 갈수록 면접시험 비중을 강화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충청북도의 경우 단 한 명을 뽑는 일반행정직 7급 시험에 529명이 지원해 필기시험 응시자가 200명 조금 넘습니다. 필기시험 합격선은 87.21점이고 제 점수는 90.857점입니다. 시험 공고에서 면접시험은 필기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실시되며 면접시험 성적 결과만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보다 면접시험을 잘 본 분이 최종 합격했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분신할 수밖에 없고 망루와 고공철탑에 올라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조건에서 일하려고 어떤 사람들은 6년 넘게 길거리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공무원 면접시험 한번 떨어졌다고 징징대기엔 머쓱한 세상입니다.

다만, 조금 실망스럽고 서운합니다. 올해 본 세 번의 공무원 시험 중에서 유일하게 필기시험을 통과한 시험이자 가장 합격을 원했던 시험이었습니다. 국가직 공무원이나 서울시 공무원, 국회 공무원이 아닌 충청북도 공무원이 되어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거든요. 그게 어떤 일인지 정색을 하고 얘기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면접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필기시험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21세기에 맞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지만, 그 과정과 절차가 탈락자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하고 정교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시험'의 일부분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 #면접시험 #평정요소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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