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못 참겠다, 용감한 무중구가 될 테다"

[홀로 떠난, 6개월의 아프리카 탐험 18 ]

등록 2010.12.20 20:45수정 2010.12.2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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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국경에서 이동했던 버스 좌석이 없지만,단거리 이동하는 부족사람들을 태워주기도 한다. ⓒ 박설화

▲ 케냐 국경에서 이동했던 버스 좌석이 없지만,단거리 이동하는 부족사람들을 태워주기도 한다. ⓒ 박설화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로 케냐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선진국 아니었어? 난 케냐가 다른 나라보다는 부자인줄 알고 도로 상황이 이럴 줄 몰랐지! 변두리는 그렇다 치고, 나이로비에서도 어쩌면 이래…. 여긴 사람들 많이 다니는 시장인데도, 이렇게 진흙밭이야~. 발이 푹푹 빠지네."
"너, 생각해봐. 돈 있으면, 너 같으면 길 깔겠니? 주머니로 넣어야지~"


현 상황을 비꼰 말이지만, 대부분의 서민들 심정일 게다. 물론 다운타운 안은 국제적인 회사들이며 빌딩들로 아프리카 도시 같지 않은 위용을 뽐내기도 하는 나이로비다. 그러나 케냐의 국경마을인 모얄레부터 나이로비까지의 도로 상황은 '동아프리카에서 최악(worst road in east Africa)'이었. 경험했던 요르단부터 남아공까지 내려오며 이용하던 길 중,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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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어가는 버스 주변 옥수수 및, 물과 다른 군것질거리들을 팔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 박설화

▲ 잠깐 쉬어가는 버스 주변 옥수수 및, 물과 다른 군것질거리들을 팔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 박설화

길 때문에 차가 튀어서, 머리가 차 천정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가뜩이나 운전기사들은 운전 실력을 뽐내느라 속도를 줄일 생각도 없다). 가장 괴로운 것은 창 밖의 어딜 봐도 돌만 굴러다니는 황량한 사막이란 점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것이 가장 괴로웠다. 타고 가는 버스 또한 공간이 넉넉치 않은지라 여자인 나도 차렷 자세로 앉아있는 상태인데 키가 더 큰 남자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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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에 뽀뽀하는 아기 이집트 기차 안에서 만난 아이가 풍선을 받아들고 좋아하고 있다. ⓒ 박설화

▲ 풍선에 뽀뽀하는 아기 이집트 기차 안에서 만난 아이가 풍선을 받아들고 좋아하고 있다. ⓒ 박설화

잠도 잘 수 없고, 창 밖을 봐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돌 사막이 이어질 무렵, 사람들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옆 쪽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이동하는 듯한 젊은 부부의 큰 아이가 바락바락 울어대고 있었다. 엄마아빠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울어대는 큰 아이를 번갈아가며 달래 보지만 부부는 계속되는 아이 울음에 지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승객들 모두 상황을 알기에 젊은 엄마, 아빠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 또한 괴로웠다. 점점 여유를 잃고 피폐해지는 걸 느낄 무렵, 안되겠다 싶어 내가 외국인인 것을 백 분 이용하기로 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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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 시내의 버스 케냐의 첫 인상은 바로, '힙합버스'다. 현란한 그래피티가 돋보이는 버스들. ⓒ 박설화

▲ 나이로비 시내의 버스 케냐의 첫 인상은 바로, '힙합버스'다. 현란한 그래피티가 돋보이는 버스들. ⓒ 박설화

"실례합니다(Excuse me)"를 외치며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 통로를 운전기사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악을 쓰며 울어대는 젊은 부부의 큰 아이에게 서서 비장의 무기를 선보였다. 길다란 풍선과 휴대용 공기주입펌프, 풍선으로 강아지 만들기 재료들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부랴부랴 동영상으로 배웠던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날이 오늘인 것이다.


차이니즈 같은 여자 '무중구(스와힐리어로 외국인이라는 뜻)'가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아이가 두려움으로 더 울기 전, 나는 재빨리 풍선의 변화를 시도했다. 쑥쑥 길어지는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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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사 뭄바사 박물관 근처의 성벽과 해변. 아직도 16C의 건물들이 존재한다. ⓒ 박설화

▲ 뭄바사 뭄바사 박물관 근처의 성벽과 해변. 아직도 16C의 건물들이 존재한다. ⓒ 박설화

아이는 풍선의 변화를 눈물이 가득 담긴 큰 눈으로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물론 그 순간 아이 울음은 뚝 그쳐 버스 안은 평화를 되찾기 시작했다. 온 승객들의 시선은 우리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풍선 안의 공기를 배분해 예쁘장한 강아지를 만든 후, 완벽한 서비스 정신으로 아이에게 강아지 소리까지 "멍멍~!" 냈을 무렵, 버스 안에는 완벽한 평화의 기운이 돌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쑥스러움을 동반한 채,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때, 본인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는지 얘기하던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얘기했다.


"Very good girl(베리 굿 걸, 참 착한 아가씨군)~, very good girl!"


그렇다. 몰랐지만 나는 '베리 굿 걸'이었던 것이었다. 삼십 분 후, 바람 빠진 풍선을 가지고 고쳐달라고 자꾸 나에게 찾아올 줄은 더더구나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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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무 섬 이슬람 문화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라무 섬의 골목들. ⓒ 박설화

▲ 라무 섬 이슬람 문화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라무 섬의 골목들. ⓒ 박설화

이 길을 세 번을 다녔으니, 케냐에서 일종의 침체기를 겪은 것이 아닌가 싶다. 케냐에서 돌아다니던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운 섬 쉘라(라무)에서 가장 힘들어했다. 그 아름다움을 혼자 받아들이기가 아쉬웠던 것일까, 연신 3일 내내 내리는 비로 인해 나는 다시 에티오피아로 올라가야겠단 결정을 내렸다. 초록이 너무 그리웠다. 물론 그 마음은 차를 타자마자 후회를 하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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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라 섬에서 만난 정겨운 이름 멍텅구리꼼장어. ⓒ 박설화

▲ 쉘라 섬에서 만난 정겨운 이름 멍텅구리꼼장어. ⓒ 박설화
2010.12.20 20:45 ⓒ 2010 OhmyNews
#아프리카 #아프리카 종단 여행 #케냐 #뭄바사 #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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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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