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아, 화상 이만하길 다행이다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⑥] 돌잔치를 둘러싼 갈등과 화상

등록 2010.12.28 14:17수정 2010.12.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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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를 둘러싼 갈등


찬바람이 부는 11월. 어느덧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달이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돌잔치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기 시작했지만 난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11월이 다되도록 아직 돌잔치를 해야 하는지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첫째 아이를 갖고 나서 내게 강력하게 이야기 했었다. 남들처럼 시끌벅적하게 돌잔치를 하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행사 자체가 과소비도 과소비일뿐더러, 요즘 같은 돌잔치는 초대 받은 이들에게 기쁨이기보다는 부담이며,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무리한 행사일정 때문에 돌잔치 이후 한 번 크게 아픈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아내의 말은 구구절절 모두 옳았다. 나 역시 의례적인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 했던 터라 아내의 과소비 지적에는 동감할 수밖에 없었고, 지인들의 돌잔치에 초대받을 때마다 부담스럽던 것이 사실이기에 우리 아이 돌잔치에 지인들을 초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내의 말에 뚜렷이 반박할 수 없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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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직접 만든 한복 백일때 몇 번을 접었던 한복이 꼭 맞다 ⓒ 정가람


그러나 그럼에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돌잔치에 대한 나의 미련은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그냥 쿨하게 아내의 이야기에 동의했지만 점차적으로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우선 여기저기 돌잔치를 돌아다니며 쏟아 부었던 축의금이 떠올랐다. 친하든 말든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건넸던 봉투가 모두 얼마였던가. 물론 돌잔치의 의의를 축의금에 둘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전 생각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나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도 조카들 돌잔치를 가면서 꽤 많은 부조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축의금보다 더욱 걸리는 것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돌잔치에 관해선 우리 부부더러 알아서 하라고, 오히려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시는 듯했지만 역시나 시간이 갈수록 아쉬워하셨다. 늦게 얻은 첫 손주의 돌잔치를 싫다고 하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는 몰라도 아버지는 분명히 지인들에게 손주를 자랑하고 싶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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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내 정성스럽게 한송이 한송이 지점토 꽃을 만들고 ⓒ 이희동

마지막으로 나를 흔들리게 만든 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결혼을 하고 곧 아이를 갖게 되면서 얼굴 보기 힘들어진 사람들. 결국 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곤 누군가의 결혼식 혹은 돌잔치 그것도 아니면 장례식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의 돌잔치가 아쉬울 수밖에. 만약 돌잔치를 열게 되면 어쨌든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거니.

하지만 끝끝내 아내는 초심을 잃지 않았고, 결국 나 또한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돌잔치를 열지 않기로 했다. 돌잔치를 열어야 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역지사지, 돌잔치의 부담은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때문에 다른 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까궁아, 조금은 아쉽지만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너의 첫 생일을 축하하자꾸나. 할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수놓아 온 병풍을 펴고, 엄마가 밤새 너를 위해 만든 한복을 입고, 또 밤새 만든 지점토 꽃을 꽂고 돌잔치를 열자꾸나.

돌을 앞둔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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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직전의 아이 그나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으니 다행이다 ⓒ 정가람


아이의 돌잔치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막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엉엉 울어대며 알아듣지도 못할 외계어를 남발하는 아내.

우선 안내를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내가 기절할 듯이 울면서 말을 이었다. 아이가 뜨거운 물을 덮어썼다는 것이다. 수화기 옆에서 세상 떠나갈 듯 우는 아이. 순간 멍해졌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조심하라던 그 화상이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인가.

그러나 내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아내의 안위였다. 둘째를 품고 있는 아내. 놀라서 애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그 다음 궁금한 건 아이의 화상 부위였다. 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만난 화상 때문에 크게 일그러진 사람들의 얼굴. 그것은 천형이었다. 지금의 성형수술로도 쉽사리 고치지 못하는 것이 화상이라지 않는가.

천만다행으로 아내는 아이의 화상 부분이 오른팔이라고 했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면서 콩나물을 데치고 있는데 아이가 뒤로 와 아내를 뒤로 끌었고, 그 때문에 콩나물 데친 뜨거운 물이 아이의 팔에 쏟아졌다는 것이다.

놀란 아내는 우선 아이의 팔에 찬물을 들이 부은 뒤 옷을 벗겼다고 했다. 화상을 입으면 피부 껍질이 벗겨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찬물을 부은 뒤 옷을 입힌 채 병원으로 가야했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내는 옷을 벗겼다. 그 때문에 피부조직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뒤 곧바로 119에 연락하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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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흉터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열흘이 지난 상처 ⓒ 정가람


허겁지겁 병원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나는 스마트 폰으로 화상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끔찍한 사진들. 세상에 이렇게 많은 화상 환자들이 있었던가. 제발 아이가 무사하기를.

포털 검색을 마친 결론은 하나. 화상전문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통증은 차치하더라도 화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끔찍한 흉터가 남는다는 사실인 바, 이를 끝까지 관리하려면 화상전문병원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때마침 전국에 얼마 되지 않는 화상전문병원 중 한 곳이 집 근처에 있었다.

마침내 응급실에 도착. 아이는 팔 한쪽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고, 워낙에 많이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찢어지는 가슴. 저 어린 것이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황망해 하던 아내는 내 얼굴을 보자 그나마 마음이 놓였는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종합병원 응급실의 불친절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응급실이 화상에 대해 전문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119 응급차를 타고 오면서 구조대원끼리 화상전문병원을 갈 것인지 대학종합병원으로 갈 것인지 설왕설래 했는데, 자신이 대학종합병원을 택했노라며 후회하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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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러운 아이 그 작은 몸에 너무 큰 붕대 ⓒ 정가람


우리는 다시 차를 몰라 화상전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은 대학종합병원 응급실과 달리 한산했고, 그만큼 의사의 설명은 친절했다. 우리처럼 대학종합병원 응급실을 갔다가 이곳으로 오는 이들이 많은데 응급치료는 모두 비슷하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정확한 진찰은 다음 날 아침에 전문의한테서 받으라는 의사.

집에 오는 길에 산부인과를 들렀다. 너무 놀란 아내는 밑에서 피가 조금 비친다며 걱정했지만, 다행히 초음파 검사 결과 산들이는 무사했다. 엄마가 놀라거나 말거나 엄마 뱃 속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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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냥 좋은 아이 다행히 화상에 통증은 뒤따르지 않는다 ⓒ 정가람

다음날 아침 월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화상전문병원으로 갔다. 워낙에 많은 화상환자를 접했기 때문인지 의사는 우리가 궁금한 요점들만 정확하게 꼬집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2도 화상이지만 다행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고 초기 대응이 빨랐던 터라 상처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란다. 흉터는 2년 정도 있으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연해질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

의사는 우리에게 태아보험을 들었는지 묻더니, 우리가 들었다고 하자 마음 놓고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화상에 대는 특수 거즈 한 장이 80만 원 정도 되는데, 아이가 보험을 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 비싼 가격의 거즈를 권유하기가 참 머뭇거려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태아보험의 필요성.

아이는 붕대를 풀었을 때는 세상 떠나가듯 울더니 붕대를 다시 묶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똥말똥했다. 다만 자신도 오른팔 쓰기가 불편한지 조심조심하는 아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또 마음이 아파왔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자책하면서 괴로워했는데 그 마음이 어서 풀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까꿍아. 우리 돌을 앞두고 액땜 제대로 했구나. 이제 그 상처를 보면서 조심, 또 조심하면서 살자꾸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돌잔치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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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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