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강행처리는 위법...무효는 아냐"

헌법재판소 "헌재, 국회 정치적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등록 2010.12.28 18:22수정 2010.12.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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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8일 한미FTA 비준안 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에 결집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출입을 저지당하자 야당 의원 보좌진들이 안에서 걸어잠근 문을 열기 위해 해머로 문을 내리치고 있다. ⓒ 남소연

2008년 12월 18일 한미FTA 비준안 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에 결집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출입을 저지당하자 야당 의원 보좌진들이 안에서 걸어잠근 문을 열기 위해 해머로 문을 내리치고 있다. ⓒ 남소연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면서도 미디어법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해 비난을 받았던 헌법재판소가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사건에 대해 위헌·위법하다면서도 무효청구는 또 기각해 논란이 될 전망이다.

 

헌재 "강행처리, 국회의원 심의 표결권 침해"

 

헌법재판소는 28일 한나라당 단독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가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음을 확인해 달라며 민주당 문학진 의원 등이 외통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을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헌재는 그러나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회부행위에 대한 무효확인청구는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정리하면,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외통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회의장을 폐쇄하며 한나라당 단독의 강행처리가 야당 국회의원들의 의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은 맞지만, 그 위헌·위법 상태를 제거하는 것은 외통위원장과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몫이라며 공을 다시 국회에 넘겼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정치적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미디어법에 대한 판결 당시 헌재의 논리가 '술을 마신 것은 인정되나, 음주운전은 아니다', '훔친 것은 맞지만, 도둑놈은 아니다'라는 등의 비판을 받은 바 있어 이번에도 논란이 예상된다.

 

2008년 12월 16일 외통위원장은 이틀 뒤인 18일 오후 2시에 국회 본청 401호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포함한 6개 법안에 대해 회의를 개의한다고 국회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그런데 외통위원장은 회의 개의 전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국회 경위로 하여금 의장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회의 무렵 회의장 주변에서는 경위들과 민주당·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당직자, 보좌진 사이에 물리적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회의장 출입문이 폐쇄돼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했으나, 외통위원장은 한나라당 소속 위원 11명만 출석하고, 회의장 출입문이 폐쇄된 상태에서 회의를 개의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고,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했다.

 

그러자 문학진 의원 등 야당의원 7명은 2008년 12월 21일 "이 같은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회부행위로 인해 헌법 및 국회법에 의해 부여된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며 국회의원 권한침해 확인과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회부 무효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먼저 외통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의 적법 여부에 대해 "상임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은 상임위원회에서 위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안건이 원활하게 토의되게 하기 위해 발동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외통위원장이 회의 개시 무렵부터 종료 시까지 회의장 출입문 폐쇄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회의의 주체인 외통위 위원들의 회의장 출석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상임위원회 회의의 원활한 진행'이라는 질서유지권의 목적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써, 질서유지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상정·회부행위의 위헌·위법 여부에 대해서도 "외통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의 행사로서 회의 개의 무렵부터 종료시까지 회의장 출입문 폐쇄상태를 유지한 행위는 위법하므로, 회의의 주체인 청구인들의 출입이 봉쇄된 상태에서 회의를 개의해 이루어진  상정·회부행위는 헌법 제49조의 다수결의 원리, 헌법 제50조 제1항의 의사공개의 원칙과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국회법 제54조, 제75조 제1항에 반하는 위헌, 위법한 행위"라고 밝혔다.

 

아울러 상정·회부행위의 권한침해와 관련, "외통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의 위법한 행사로 회의가 개의할 무렵부터 종료할 때까지 회의장 출입문 폐쇄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청구인들은 회의에 출석할 기회를 잃어 비준동의안 심의과정(대체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며 "따라서 청구인들은 외통위원장의 위헌·위법한 상정·회부행위로 인해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동의안의 심의권을 침해당했다"고 판시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임위 상정·회부 무효확인은 기각

 

헌재는 그러면서도 무효확인을 구하는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희옥, 민형기, 송두환 재판관은 먼저 "이 사건 상정·회부행위는, 국회의원의 조약비준동의안 심의·표결의 전제가 되는 회의장 출석 자체를 봉쇄함으로써 의안 심의권의 내용을 이루는 대체토론권을 침해한 잘못이 있고, 그러한 절차상의 하자는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비록 이 사건 상정·회부행위가 청구인들의 동의안 심의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하자를 지니고 있지만, 그 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회의를 진행해 동의안을 원안대로 가결했고, 그를 토대로 외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동의안을 가결·선포했다는 사후의 진행경과, 현재 이 동의안이 본회의에 회부돼 계류 중인 상황이어서 상정·회부행위에 존재하는 하자가 본회의 심사에서 치유될 가능성 등을 감안해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기각 의견을 낸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정치적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이 사건 상정·회부 행위가 청구인들의 동의안에 대한 심의권을 침해했다고 확인한 이상, 외통위원장과 국회는 위 권한침해확인 결정의 기속력에 의해 처분의 위헌·위법 상태를 제거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게 되고, 다만 그 제거의 방법만은 외통위원장을 포함한 국회의 자율적 처리에 맡겨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공현 재판관도 "입법절차의 하자를 다투는 권한쟁의심판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처분의 권한 침해만을 확인하고, 권한 침해로 인해 야기된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은 외통위원장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이 사건 동의안의 상정·회부행위에 대한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함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김종대 재판관은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절차로써 무효선언 내지 취소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렇게 나아가야 할 타당성도 없어 청구인들의 무효확인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0.12.28 18:2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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