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세트 배달이 왜 이리 늦었냐고요?
500원 벌이에 욕먹는 나도 속상합니다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다 ①] 택배운송노동자 최학렬씨..."난 노동자이자 사장"

등록 2011.01.13 12:50수정 2011.01.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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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 누구는 '위장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하는 일은 노동자인데 법적으로는 사업자인 사람들.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 배달원, 대리운전자, 화물차운송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에서 배제돼 왔다 <오마이뉴스>는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시리즈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살펴보고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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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대한통운 광주지부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분주하게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 최지용


"택배 왔습니다."

온라인쇼핑몰에서 고른 새 옷이 '언제 도착할까?' 설레는 사람부터, 홈쇼핑에서 산 먹음직스런 갈비 세트를 상상하며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 군대 간 애인에게 보낼 간식을 한 상자 준비해 놓고 초인종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지금도 택배기사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편리하게 간단한 인터넷 검색이면 주문한 물건이 어디까지 왔는지 쉽게 알 수도 있다. 발송자가 언제 택배를 보냈고 어디 물류센터를 거쳐 지금 누가 배송을 하고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나온다. 급한 사람들은 전화를 걸어 독촉하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은 너무 늦은 배송에, 잘못 오거나 파손된 물건 때문에 택배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그런 시비는 조금 줄어들 것이다. 택배기사들에게는 '몇 시간 뒤에 가져다 달라', '조금 일찍 갖다 달라'는 우리의 '사소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계약서에 없는 분류 작업도 택배노동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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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렬씨가 자신의 트럭에 당일 배송할 물품을 싣고 있다. ⓒ 최지용


게으른 겨울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고 눈이 내린다고 예고된 하늘은 평소보다 어두웠다. 지난 5일 아직 깜깜한 밤 같은 오전 7시, 광주 남구 송하동 대한통운 광주지부 앞이다. 대전물류센터에서 광주지역으로 분류된 배송품을 실은 컨테이너 화물 트럭 두 대가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1톤짜리 택배 트럭들이 라이트를 반짝이며 그 뒤를 쏜살같이 쫓는다.

길 맞은 편에 있는 컴컴한 야산을 지켜보고 있을 때, 한 트럭이 멈춰 섰다. 건너편 야산은 지난 2009년 대한통운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택배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싸웠던 박종태(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씨가 스스로 목을 맨 곳이었다. 트럭에는 이날 하루 동안 진행될 동행취재에 응해준 최학렬(57)씨가 타고 있었다. 그는 제대로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기자를 태우고 자신의 자리로 가서 차를 세웠다.


그가 차를 세운 곳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막 돌아가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품들이 벨트를 타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위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상자부터 제주 감귤, 어린이 도서전집, 어른 키만 한 '황토매트' 등 다양한 물건들이 올려졌다.

분류 작업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30여 명의 기사들은 자신의 담당구역 이외에도 양옆에서 작업 중인 동료들의 것도 함께 분류했다. 각자가 자기 담당만 분류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물건을 벨트에서 내렸다. 기자도 일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낯선 동네 이름을 잘 외우지도 못했고, 오랫동안 해온 일에 요령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두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비워질 때까지 택배기사들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겨우 숨을 돌리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가서야 최학렬씨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모자 밖으로 흰머리가 비죽 빠져나온 그는 대한통운 광주지부에서 일하는 기사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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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렬씨는 운전 중에도 한 손에 배송장을 놓지 못했다. 일일이 확인을 하면서 배달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 최지용


"오늘은 물건이 많지 않네. 어제(4일)는 192개를 했어요. 화요일이 물건이 제일 많아요.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니까. 트럭이 하나 더 들어오겠지만 오늘은 많지 않은 편이에요."

택배가 가지 않는 주말 사이 인터넷쇼핑과 홈쇼핑 등의 주문이 월요일에 몰리는 탓에 화요일만 되면 물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는 "물량이 많은 날은 말할 시간도 없다"며 애초에 화요일에 하기로 한 취재 일자를 하루 뒤로 미뤘다.

여기저기 물량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택배기사들 이외에 분류 작업을 하는 다른 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대학생 정도 나이의 젊은 청년 세 명이 작은 물품이 든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 벨트 위에 올리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분류 작업은 원래 계약에는 없지만 우리가 하고 있어요. 이게 늦어지면 배송도 늦을 수밖에 없는데, 회사는 사람을 쓰려고 안 해요. 우리는 다 분류돼 있는 거 딱 가지고 가서 전달만 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 분류 작업이 늦어지면 배송을 나가는 것은 오전 11시 경이다. 물건을 다 나누고 난 후에는 배송에 들어갔다는 걸 알리기 위해 배송장 바코드를 휴대폰 스캐너로 일일이 찍어 전송해야 했다. 최씨는 자신이 배달해야 하는 물건을 배송순서에 맞춰 다시 분류한 후에 트럭에 차곡차곡 실었다.

"평일에 집안 경조사 일어날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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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택배노동장 최학렬씨가 무거운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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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렬씨는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면서도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놓지 못하고 있다. ⓒ 최지용

최씨는 올해로 택배를 시작한 지 6년째를 맞았다. 그 전에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름이 제법 알려진 유명한 회사의 부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왔고, 들어간 회사에서 광주로 발령을 받아 내려온 것이 지난 1987년이었다. 그는 "IMF 이후 퇴직해 작은 사업을 했지만 잘 안 됐고, 몇 년 고민을 하다가 택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아주 뛰어난 택배기사가 돼 있었다. 나이는 많았지만 운동을 꾸준하게 해 와서 체력도 좋았고 동네 지리도 밝았다. 일을 하는 동안 허리 높이 정도 되는 트럭 운전석에서 100여 번을 내렸다 올랐다 해야 하고, 계단도 수없이 올라야 하지만 그는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그의 트럭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었지만 어디 한 곳을 헤매지도 않았다. 각 가정에 도착하기 전, 전화를 걸어 택배 수취가 가능한지를 묻는 목소리에도 친절함이 배어 있었다.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임아무개씨는 최씨의 전화를 받고 1층까지 내려와 있었다. 물건을 전해 받은 임씨는 "최씨 아저씨가 오시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뭘 주문할 때도 배송업체를 고르게 되면 대한통운을 고른다"라고 말했다. 업무 효율도 높고 고객들에게도 인정받는 기사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너무도 짜다. 한 달에 3000건 정도의 물품을 배달해 3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지만, 특수고용노동자인 그는 기름값에 벌과금, 차량 유지비, 휴대전화 요금까지 일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직접 내야 한다. 모든 것을 제외한 월소득은 150~200만 원 정도, 주 6일 근무에, 병가나 휴가도 따로 없다. 이 때문에 최씨는 "누가 평일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집안 경조사가 평일에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한다"고 말했다.

좁은 골목길을 운전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사고가 나거나 다칠 위험도 높지만 산업재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날도 쌓인 눈이 녹지 않아 곳곳이 빙판이었고 트럭도 가끔 미끄러졌다. 조심스럽게 운전해도 어려울 판에 그의 왼손에는 배송장 다발이 들려 있었고 배달을 재촉하는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최씨가 양손에 짐을 들고 왼쪽 어깨와 머리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고 빙판길을 걸을 때는 정말 넘어지지는 않을까 위태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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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렬씨가 아파트 앞까지 내려온 고객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 최지용


"작년에 골목을 가는데 자전거를 탄 아이가 갑자기 튀어 나와서 사고를 한번 냈어요. 천천히 가고 있어서 아이가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합의금하고 치료비까지 다 내 돈으로 했지요. 눈 왔을 때는 물론이고 젖은 대리석 바닥 같은 곳에서 많이 넘어졌어요. 연초에 눈이 많이 와서 조심조심 다녔는데도 아 지난 월요일(3일)에 물건을 주고 나오다가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져서 뒤로 완전히 자빠졌다니까."

그는 "꼬리뼈 있는 곳이 아직도 아프다"며 손으로 엉덩이를 감싸 쥐었다. 최씨는 차에 오르며 담배에 불을 붙였지만 이내 다음 배달하는 곳에 도착해 비벼 끌 수밖에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레미콘 기사 등 4개의 특수고용직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사측과 본인이 절반씩 부담)을 허용했다. 올해는 택배와 퀵서비스 등에도 산재를 확대할 방침이지만 본인 부담이 절반이나 되는 제도가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큰 벽이다. 먼저 시행된 4개 특수고용직도 지난해 12월까지 산재 가입률이 약 11%밖에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문제 해결이 열사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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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렬씨 트럭에 붙어 있는 '택배분회' 스티커. ⓒ 최지용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최씨는 식사를 챙겨 먹을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차를 오르내리며 배달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내릴 때마다 함께 내려 배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공복에다가 오후가 되자 완전히 지쳐버렸다.

최씨는 조금 쉬었다가 하라는 기자의 말에 "쉬엄쉬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라며 "물건을 찾는 전화가 계속 오니까 밥을 먹어도 편하지 않고,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하도 바쁘게 움직이는 탓에 취재에 필요한 인터뷰 몇 마디도 쉽지 않았다. 차에 올라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 잠깐 이야기를 나눌라 하면 그는 또 차에서 내려야 했다. 그래도 박종태씨에 대해 물었을 때만큼은 잠깐 차를 세우고 말을 끝까지 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택배분회) 상조회장도 해서 왔다 갔다 하며 본 적은 있지만 말도 한번 제대로 안 해봤죠. 우리 계약해지 된 다음에야 자주 봤는데…. 제가 솔직히 더럽고 기분 나빠서 이거(택배) 더 안 하려고 해도 열사에게 진 빚이 있으니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열사가 단지 우리 72명 때문에 목숨을 던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릇이 작은 분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우리가 잘 따라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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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도로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최학렬씨 ⓒ 최지용

최씨는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대한통운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금호그룹의 마크가 새겨진 옷 대신 '화물연대',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택배지회'라고 쓰인 옷을 입었다. 그의 트럭에도 대한통운을 표시하는 그림이나 마크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09년 대한통운 광주지부는 920원이던 건당 운송수수료를 30원 인상하기로 택배기사들과 합의했지만, 이후 본사에서 40원을 깎으라는 방침이 왔다며 합의를 깨뜨렸다.

이에 운수노조 택배지회 조합원들이 배송을 거부하고 나서자, 대한통운은 이들과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복직(계약) 투쟁이 두 달여 진행됐고 진전이 없자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은 3월, 회사 앞 야산에서 노동자들의 복직을 촉구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그는 이어 "우리(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아무리 회사랑 싸워봤자 소용 없다"며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지만 가능한데,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9년 11월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법안'을 입법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법안은 근로기준법 등에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도록 명문화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산재와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특수고용 둘, 비정규직 하나, 정규직 하나... "대한민국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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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둘러 앉은 최학렬씨와 김성룡, 해룡 형제. ⓒ 최지용


최씨의 배송 업무가 종료된 시간은 오후 7시였지만 다시 회사로 들어가 배송장을 제출하고 나서야 진짜 퇴근이었다.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사로 들어온 그를 맞이하는 대한통운 직원들은 모두 "웬일로 이렇게 일찍 끝났느냐"며 놀라워했다. 

평소보다 물량이 적은 탓도 있었지만, 일을 빨리 마치고 먼 길 가야 하는 기자와 소주 한잔해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나 보다. 일을 시작한 지 13시간이 지나서야 그와 함께 밥상 앞에 앉았다. 동료인 김성룡(44)․해룡(41) 형제도 자리에 함께했다. 두 사람은 최씨보다 10년 이상 택배 경력이 많은 고참들이다. 김성룡씨는 '박종태 열사 투쟁' 당시 택배분회 분회장을 맡기도 했다.

"우리는 노동자이면서도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출근 시간도 정해져 있고 지키지 않으면 벌과금도 내야 해요. 물건이 늦거나 해서 손님이 인터넷에다가 글이라도 올리면 그때도 벌과금을 냅니다. 그러니 어디 맡겨 놓으라는 식의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갖다 달라고 하면 갈 수가 없어요. 왔던 곳을 다시 가면 그 뒤에 남은 배달이 다 밀리게 되는 데 어떻게 합니까?"

담배 한 대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면서, 밥도 챙겨 먹지 못하면서 뛰어다녀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최씨는 서러움을 내비쳤다. 그는 "택배회사는 물건에 이상이 생겨도 아무 책임이 없다"며 "물건이 잘못된 거면 발송자 책임, 그렇지 않으면 배송한 우리들 책임이 된다"고 말했다.

"제가 딸이 둘 있는데 둘째가 학원 강사로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 큰 애는 유치원 교사라서 정규직이고요. 제 부인도 지난 열사투쟁 때 집에 수입이 없으니까 어린이집에 조리교사로 들어갔어요. 비정규직이죠. 그래서 우리 집에는 특수고용노동자 두 명, 비정규직 한 명, 정규직이 한 명입니다."

최씨는 이어 "우리 집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것 같다"며 "저 아이들이 컸을 때는 그런 차별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옆에는 해룡씨의 어린 남매가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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