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아, 첫번째 생일 축하한다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⑦] 까꿍이의 돌잔치

등록 2011.01.12 18:49수정 2011.01.12 21:1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돌잔치 준비


양가 부모님들만 모셔 조촐하게 열기로 한 까꿍이의 돌잔치. 우리가 예정한 돌잔치 시각은 오후 3~4시 경이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산청에서 소 사료를 주고 올라오시면 그 정도 되기 때문이었다. 어디 서울과 산청이 가까운 거리인가. 까꿍이 돌잔치에 참석코자 먼 길 올라오시는 두 분께 감사드릴 따름이었다.

아이가 화상을 입은 탓에 당일 아침 예약해 두었던 스튜디오에서의 돌 사진 촬영은 다음으로 연기시켰다. 아내는 웨딩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돌 사진 역시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며 그냥 집에서 찍자고 했지만, 내가 돌 사진만은 스튜디오에서 찍어야 한다고 고집부린 터였다.

웨딩사진이야 당사자인 나와 아내 모두 반대했기에 생략해도 상관없지만, 돌 사진은 그래도 아이가 주인공이지 않은가. 물론 그 모든 것이 허황된 과소비일지 몰라도, 사람들 불러 돌잔치도 못했는데 사진만은 스튜디오를 고집하고 싶은 것이 아빠 마음이었다.

a

아이의 한복 아내가 손수 준비한 ⓒ 정가람


돌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데 오전 내내 시간에 쫓겨야 했던 우리 부부. 나는 집에서 돌잔치를 하는 터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청소를 해야 했고, 아내는 아이를 위해 직접 만든 한복이며 돌띠, 색동굴레, 클레이 상화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집에서 돌잔치를 하기 때문에 신경을 덜 써도 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한 오산이었다. 나야 아내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현대의 돌잔치란 이 모든 과정을 간편하게 하고자 돈을 주고 위탁하는 것인데, 아무리 간소화한들 어찌 집에서의 돌잔치가 더 간단할 수 있겠는가. 


a

전통 돌상 정성스럽게 마련한 ⓒ 정가람


얼추 돌상을 차리고 아이에게도 한복을 입혀놓고 보니 또 하나 걱정되는 건 돌잔치의 순서였다. 다른 이들의 돌잔치에 초대되어 가보면 기억나는 건 결국 사회자의 시끄러운 멘트와 돌잡이, 그리고 상품 추첨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회자도 없고, 손님도 없고, 상품 추첨도 없다면 무엇을 해야지? 딸랑 돌잡이 하나 하고 끝나는 건가?

이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얼마나 빈약한 기반을 토대로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인스턴트 돌잔치에 익숙해진 현대인. 과연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기껏해야 돌반지에 들어가는 금값이 얼마나 올랐고, 돌잔치 축의금으로 얼마를 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작금의 모습인 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과거, 아이의 돌아온 1년을 진심으로 기뻐하던 선인들의 마음을 이 시대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전통 돌잔치의 순서를 숙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산청에서는 그래도 전통 돌잔치가 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인터넷을 통해 그 순서를 찾아봤다나.

돌잔치

a

과연 그녀는 가만히 있을까요? 처음 보는 물건에 매우 신난 까꿍이 ⓒ 정가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당도하셨고 곧이어 어머니, 아버지도 도착하셨다. 어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까꿍이의 화상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한 소리들 하셨다. 눈치를 보아하니 더 크게 꾸중하실 것을 좋은 날인지라 참으시는 듯.

아이는 자신만 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었다.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터뜨려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까꿍이. 그나저나 저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데 까꿍이는 돌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과연 녀석은 돌잡이를 무사히 할 수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아이는 한복을 입고 돌상 앞에 앉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포즈를 잡았다. 화상 때문에 붕대로 꽁꽁 매놓은 팔을 의자 턱걸이에 올려놓은 채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자랑하며 그렇게 늠름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다들 대견하게 쳐다보는 어른들.

a

마님의 포스 포즈잡는 아이 ⓒ 이희동


아이가 갑자기 얌전해진 건 의례의 힘인 듯했다. 종교사회학에서 지적하듯이 아이는 갑작스레 펼쳐진 격식과 의례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평소 보지도 못한 옷을 입고 화려하게 차려진 상 앞에 앉았는데 어른들까지 예전과 달리 근엄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아이가 어찌 주눅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종교란 것도 이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곧 그 분위기가 적응되었는지 방실방실 웃으며 제 앞에 놓인 국수가락을 집어 입에 넣기 시작했다. 돌잔치고 뭐고 자신은 우선 먹고 봐야겠다는 듯이 막무가내로 고집 피우는 아이. 그래, 그게 너답다 까꿍아.

a

역시나 적응하자마자 손이 간다 ⓒ 이희동


a

돌떡 쏘기 액운아 가라! ⓒ 이희동


아이와의 사진을 찍은 뒤 아내는 아버지께 화살에 돌떡을 꽂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활을 쏘아야 한다고 했다. 아마 액운을 없앤다는 뜻의 의식인 듯했는데 도시의 아파트에서 그런 행위를 하자니 조금은 우스웠고, 동시에 서글프기도 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공간과 전통의 조합. 다음은 장모님과 어머니가 아이의 목에 명주실을 거는 의식이었는데,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겠지.

드디어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시간. 아이의 앞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관직을 뜻하는 마패에서부터, 손재주를 의미하는 바늘방석, 무병장수를 뜻하는 명주실, 공부를 뜻하는 붓과 서책, 다재다능함을 의미하는 오방색지, 장군님을 뜻하는 활과 화살(예전에는 남아들만 올렸다는데 요즘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그리고 부귀를 뜻하는 엽전까지.

a

그녀의 선택 오방색지 ⓒ 이희동


자, 까꿍아 집어라. 우리 아이는 무엇을 집을까? 엄마, 아빠는 돌잡이 때 붓을 들어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마는, 그래도 네가 다른 아이처럼 엽전을 집는 건 싫구나. 아빠는 다른 돌잔치 가서 제일 보기 싫은 게 부모들이 자식에게 지폐 고르라고 옆에서 부추기는 거란다.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많거든.

아이는 엽전, 마패, 바늘방석, 활, 붓, 오방색지를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결국 그 중에서 오방색지를 번쩍 들었다. 현대 버전으로 하면 연예인쯤 되는 다재다능함을 의미한다는데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서는 연예인도 과히 권할 직업이 못 된다는 것이 아빠 생각이었다. 뭐, 어쨌든 네가 원하는 길로 열심히 정진하기를.

돌잡이를 끝내고 예약해 놓은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까꿍이의 돌잔치는 끝났다.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보여주기로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이가 그래도 기특하게 이만큼 커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까꿍아,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a

가족사진 네 식구 ⓒ 이희동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돌잔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